• 노무현 대통령이 끝내 '대통령 임기 4년 연임제'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의 비율을 볼 때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긴 힘든 상황이다. 개헌논의에 일체 불응하겠다는 한나라당이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의석(127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1일 이처럼 자당이 노 대통령의 개헌 추진을 저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부각시켰다. 탄핵역풍으로 50석을 얻기도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지난 2004년 4·15총선에서 자신의 진두지휘 아래 한나라당이 개헌저지선을 확보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노 대통령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한국인포럼' 창립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해 '대한민국 선진화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로 특강을 한 박 전 대표는 "엊그제 노 대통령은 갑자기 개헌 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임기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대선 판도를 흔들어보겠다는 것"이라며 "기습적으로 개헌을 제안하는 노 대통령을 보면서 만약 지난 총선때 한나라당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 개헌저지선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지금 나라가 어찌 되었을까,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이 개헌카드에 당당히 '반대'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박 전 대표 자신의 공이 크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노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와 '대선주자들이 더 정략적'이라고 한 주장에 대해서도 특강 전 일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말의 평가는 말하는 사람의 직책과 직위에 따라 다른 것이다. 임기 1년을 남겨둔 정권 말기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맞느냐"며 "이것은 질책받아 마땅하다"고 비판했고 '야당이 개헌을 받아주면 탈당도 가능하다'는 주장엔 "그것은 주고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탈당은 노 대통령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잘라말했다. 

    현 상황은 개헌을 두고 노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상대적으로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원희룡 의원 등은 비켜간 모양새가 갖춰졌다. 노 대통령이 개헌카드를 꺼내자 당의 차기 대선주자들 중 박 전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간결한 메시지로 가장 재빨리 대응했고 그러자 노 대통령도 박 전 대표를 겨냥,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개헌을 예로들며 "자신을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이라고 즉각 받아쳤다. 개헌을 둘러싼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힘겨루기가 '노무현 대 박근혜'대결구도로 자연스레 흘러간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에선 이런 '노무현 vs 박근혜'구도가 박 전 대표에겐 플러스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읽힌다. 박 전 대표는 대연정을 의제로 노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판정승을 거둔 바 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당내에서 끊이지 않고 제기되던 '리더십 부족' '컨텐츠 부족' 비판을 영수회담으로 극복하고 당 장악력도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그래서 박 전 대표의 '개헌저지' 발언은 박 전 대표가 이번 '개헌'카드를 통해 노 대통령과의 대결구도를 다시 만들어 지지율 반등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박 전 대표를 지원하는 영남의 한 초선 의원도 개헌을 둘러싼 노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대결구도 형성에 "박 전 대표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고 캠프의 한 관계자는 "시선을 끄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박 전 대표의 강연에선 노 대통령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이 유독 눈에 띄었다. 박 전 대표는 노 정권을 향해 "국민은 모두 우측통행을 하는데 자기들만 좌측으로 가면서 국민보고 틀렸다고 이야기한다"고 비난하고 "나는 자신들만 좌측통행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거꾸로 간다고 손가락질하는 혼돈의 시대를 반드시 끝내겠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정치도박에 올인하고 있다"고도 했다. 참석자들은 박 전 대표에게 박수갈채와 함께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그는 또 '여성지도자'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영국의 대처수상 이미지를 자신에게 오버랩시켰다. 그는 "대처 총리가 취임했던 1979년 영국은 가망이 없는 유럽의 병자였다"며 "그러나 대처 총리의 과감한 개혁정책으로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나라로 새롭게 거듭났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며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청와대를 나와 18년간 자연인으로 살던 나를 정치로 불러들였던 것은 바로 나라의 위기였고 한몸 던져 나라를 다시 살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그게 바로 내가 사는 보람이라는 각오로 정치를 시작했다"며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용환 당 상임고문과 허태열 유승민 유정복 서상기 최경환 의원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