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편지로 해결될 일 아닌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아직 임기를 1년3개월 가까이 남겨둔 시점에서 대통령과 여당이 심각한 마찰과 갈등을 노출하고 있는 상황이 어이없고 한심하다. 하긴 “세상에 별 사람 있어?”라고 해버리면 그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신통력을 가진 초인은 아닐 것이고 열린우리당의 지도부 인사들이라 해서 저마다 의리에 목숨 내놓을 예양(豫讓:중국 전국시대 사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고사의 주인공)일 리도 없다.

    정치판에 뛰어든 까닭이야 굳이 따져 물을 일이 못된다. 재미 치고 사람 다스리기보다 더한 게 없는 모양이어서 숱한 사람들이 때로는 생명까지 걸어가면서 덤벼든다. 그 과정에서 잇속이 서로 맞으면 동지가 되고 틀어지면 정적이 된다. 많이 살벌한 표현이 되고 말았지만 그게 세속적 정치의 한 단면이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신을 무게중심으로 해서 성립됐던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상황을 목격하기가 정말 두려울 것이다. 반면 열린우리당 내 모모한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무너지는 집에 깔려버리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이미 집권해본 사람이 이제 집권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게 의리라는 계산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3년 전 민주당 고수파와 신당파 간 갈등의 재판을 보는 듯한 이 즈음이다. 노 대통령이 3일 여당 당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통합신당’ 논의 및 시도의 부당성을 지적한 데 이어 친노(親盧)파 인사들이 ‘김근태 의장 사퇴와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당을 온전히 지켜내기는 이미 틀린 분위기다. 차제에 노 대통령은 탈(脫)정치를 표방하고 차분하게 임기말 국정을 관리할 일이다. 여권 내 헤게모니 쟁탈전에 뛰어들어 리더십에 상처를 입느니 ‘차기 경쟁’에서 완전히 발을 빼는 게 자신과 정부, 그리고 국민을 위해서도 백 번 낫다.

    같은 맥락에서, 한나라당을 원망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못된다. 그는 이 편지에서 “대통령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국정 수행에 대해 한나라당이 흔들지 않는 일이 없다”면서 “여소야대, 그것도 지역 구도하의 다당제와 결합된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구도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2004년 2월18일 경기·인천지역 언론과의 합동 회견에서는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국회이면 과반수가 아니어도 성실히 국회를 존중하면서 일하고, 저도 국회로부터 공격 받을 수 있는 허물을 짓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국정을 운영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더니….

    사람의 일이라는 게 원하는 대로만 되어주기야 하겠는가만 그렇다고 늘 남의 탓이나 하는 것은 리더다운 자세라 할 수 없다. 대통령제는 여당의 의회 과반수 의석을 필수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더욱이 열린우리당은 한 때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적이 있고 지금도 원내 제1당의 지위를 고수하고 있다. 의석이 모자라 일을 못한다고 불평할 일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야당이야 ‘반대’를 존재 의의로 하는 정치집단이다. 게다가 노 대통령과 여당은 집요하다 할 정도로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조소·조롱해오지 않았는가.

    좀 늦기는 했지만, 여당만큼 야당도, ‘예’만큼 ‘아니오’도 소중함을 마음으로 인정할 때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가능해진다. 지금에 와서 친노 민중의 힘으로 다시 상황을 바꾸려 애쓸 일인가. 이는 퇴임을 앞둔 대통령으로서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설령 차기 정부 구성에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할 비책(秘策)이 있다고 하더라도 포기해야 한다. 임기와 함께 권한·역할도 물려줘야 옳다. 그게 임기직 공직자의 도리다. 다음 정부에서도 당연히 그것을 맡을 사람들이 있다. 그 때 일은 그들의 몫이다. 그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