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선혈 낭자와 머리 끄덩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3년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돼 나오는 과정에서 필자는 민주당 취재팀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두 건의 조선일보 보도가 기억에 남아 있다.

    2003년 5월 12일 민주당 내에서 신당을 추진하던 신주류 으원들이 취재팀장들과 점심을 했다. 당시 신당파는 두 가지 노선으로 갈려 있어싸. 민주당 의원들을 모두 끌어안고 외부에서 플러스 알파를 수혈하자는 통합신당파와 민주당 내 구주류 의원들과 단절해서 '개혁성'을 부각시키자는 개혁신당파가 있었다. 그날 점심 모임에선 개혁신당파 의원들이 강성 발언을 했다. 한 의원은 "신당 방해세력과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 신주류가 뭔가 해보려는데 구주류가 방해하고 있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줘야한다"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신구주류가 선혈이 낭자하도록 싸워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조선일보 5면에 '신주류, 구주류와 선혈낭자하게 싸워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구주류 쪽에선 "아침 신문을 보니 신주류 의원이 선혈 낭자하게 싸우자고 했더라. 무서워서 근처에나 가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가뜩이나 골이 깊었던 신구주류 간 갈등은 '선혈 낭자' 발언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 버렸다. 구주류와 함께 가는 통합신당은 물 건너갔고 구주류와 갈라서는 개혁신당 가능성만 남았다. 필자는 선혈 낭자 발언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통합신당파 의원들로부터 "신당 창당을 방해했다"는 원망을 들었다.

    그러나 개혁신당 추진은 만만치가 않았다. 구주류와 갈라서려면 탈당을 해야하는데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의원은 열손가락 남짓이었다. 신주류 의원들은 매주말 탈당 결심을 밝혔다가 다음 주가 되면 주춤거렸다. 그러기를 몇 달이 흐르자 "민주당 신주류는 양치기 소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시간에 쫓긴 신주류는 2003년 9월 4일 신당 추인을 위한 당무회의를 소집했다. 구주류가 당무회의 육탄저지로 맞서면서 회의장은 뒷골목 싸움판처럼 변했다. 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구주류 여자 당직자가 신주류 이미경 의원 등뒤로 다가가 머리 끄덩이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현장에 있던 수십명의 사진기자 중 조선일보 기자가 이 장면을 포착했다. 다음날 아침 조선일보 1면엔 머리채를 뒤로 잡힌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의원의 사진이 실렸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9월 7일 탈당을 결심한 신주류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교섭단체 규모(20명)를 넘는 27명이었다. 이로써 신당은 중요한 고비를 넘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 의원이 머리채를 붙잡힌 것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이후 신주류 의원들로부터 "조선일보의 머리 끄덩이 사진이 신당을 도왔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원동력은 민주당 구주류와의 대립 에너지였다. 민주당에 구주류를 떨어내고 나와 이들을 호남 군소정당으로 만들어야 신당을 전국 정당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정치공학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선혈 낭자 발언도, 머리 끄덩이 사건도 그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열린우리당은 또 다른 신당을 준비하고 있다. 3년 전 신당을 만들었던 의원들이 다시 한 번 주도세력으로 나섰다. 선혈 낭자하게 머리 끄덩이 잡고 싸웠던 민주당 구주류와 재결합해서 전통적인 지역기반을 복원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2% 부족하다. 2007년 대선 승부를 위해선 노무현 정권과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신당파는 얼마 전 노 대통령에게 "우리는 탈당할 테니 (대통령은) 그대로 당에 남아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3년 전 민주당 구주류가 맡았던 구당파 역할은 이제 친노세력의 몫이 됐다. 얼마 안 있으면 "신당 방해세력인 친노와 선혈 낭자하게 싸워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