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전용덕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삼성도 망해야 한다’는 기막힌 발상>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가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 측근이나 정부 관리의 언사나 정책을 듣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가벼워질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대통령의 한 측근은 부동산 ‘세금폭탄’이 아직도 멀었다는 내용의, 그야말로 폭탄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세금으로 가격 폭등을 막거나 투기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나 설(說)은 경제학 교과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그의 그런 말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 통제되지 않자 강남 지역의 부자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에는 서울대 폐지론이 흘러나오면서 한동안 우리 사회를 소란하게 했다. 서울대가 학벌주의의 온상이자 발원지이면서 서울대 출신이 학벌주의의 최대 수혜자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벌주의의 온상인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따지고 보면 이 주장의 밑바닥에는 ‘지식 부자’(학벌)에 대한 증오가 깔려 있다. 물론 서울대가 정부로부터 누구보다도 많은 특혜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얼마 전 청와대는 2030년까지 1600조원이 드는 장기복지정책 ‘비전 2030’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증세의 필요성을 다시 제기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대로 세금을 더 걷자면 투자가 이뤄져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기업이 늘어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한 기업인은 “경제 위기가 온다면 삼성발(發)이고, 망할 회사는 망해야 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증세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자고 하니 그 깊은 속셈을 범인(凡人)이 어찌 알겠는가.

    문제는 삼성발 경제위기 운운 하는 부분이다. 정부와 달리 기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돌보는 조직이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수요를 잘 충족시킨 기업일수록 이윤을 많이 남기고 그 결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업이 이윤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망할 수는 있지만 한 나라의 위기 원인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삼성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는데 그런 기업을 두고 경제위기 운운한 것은 부자, 특히 대기업을 겁주기 위해 꺼낸 말임이 분명한 것같다.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는 길이 투자를 활성화하는 길임을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규제 완화 차원에서도 타당한 방법이다. 그러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연구 끝에 출총제를 폐지하는 대신에 순환출자 금지와 함께 ‘일본식 사업지배력 과도집중 금지’라는 알쏭달쏭한 정책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에 삼성, 현대자동차 등 7개 기업집단이 계열 분리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출총제, 순환출자 금지, 사업지배력 과도집중 금지 등은 재벌에 대한 행동 제한 정책으로 여기에도 부자들에 대한 증오가 숨어 있다.

    앞에서 든 모든 언사와 정책에는 평등과 진보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부정적인 한 측면을 적확하게 묘사한 말이다. 그러나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이를 부(富)의 세습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환원하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의 세습을 평등과 연결지어서, 그런 부를 강제로 빼앗거나 떼를 써서 갈라먹거나 꼬투리를 잡아 훼방(소송)을 놓거나 해왔다. 더 가관인 것은 그런 일련의 도둑이나 폭력배가 함직한 일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인류 역사의 ‘진보’라고 불러 왔다는 점이다.

    서민들의 입에서 너무 어렵다는 신음이 나온 지 오래다. 대통령 측근이나 정부 관리들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책 건의를 못할망정 판을 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