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쓴 <뷱(北) 통일전선술에 ‘동조’하는 노정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정부는 사상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특유의 오기에 찬 발언 양식으로 ‘뜰 날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마는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두고 외치는 처절한 절규처럼 들린다. 민주화 20년의 역사가 절망적인 상태에 이른 것이다.

    아직도 정착되지 못한 민주주의 규범과 통치 체제의 충돌이 기본원인이다. 민주주의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통치는 사적(私的)인 것과 공적(公的)인 것의 구별이 잘 안된 채 법치를 가미한 신가산제(新家産制)가 이 정권에 들어와서 너무도 두드러지게 표출됐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듯이, 한국 반세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오랜 비민주적 전통을 어쩌면 그렇게도 잘 답습하는지 놀랄 뿐이다. 이른바 코드인사라든지, 의회의 기능에 대항하여 흘러간 용어로 어용단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소위 시민단체들을 공금으로 지원하여 준(準) 국가기관화하는 행태라든지, 공공연히 언론기관에 공금을 지원하여 선전기관화하는 것은 그 몇 가지 예에 해당한다.

    그런 체제의 운용이 국민에게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켰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정치라서 그럴 것이라는 이해도 있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체제로 노무현 정권이 지향한 것은 혁명이었다. 그래야만 일관성이 찾아질 수 있다. 좋든 싫든 혁명을 하려면 혁명답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 그간 한국의 사정에서 혁명을 꾀한다면, 근대화의 기틀이 효력을 상실했다는 역사적 인식을 전제로 새로운 발전을 위한 전반적인 하부구조를 재창출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혁명적 과제가 도외시된 것은 이미 13년을 넘었고, 엉뚱하게도 대통령들의 개인적 야망으로 대북문제와 관련하여 혁명을 시도했다.

    그 결과로 특히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국가라는 통치조직이 필요로하는 최소한의 정당성의 근거인 안전마저 확보해 주지 못하는 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북한과의 연관에서 말한다면, 그쪽의 끈질긴 통일전선전략에 이쪽 정부가 자발적으로 동조하는 양상이 벌어졌다. 민족이란 이름으로 체제관념도 증발시킨 지는 오래돼 자유민주주의란 목표가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연관에서 지금 한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 문제, 미사일 발사 문제, 위폐 문제, 인권 문제 등에 보인 이 정부의 태도는 새삼 거론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대해서도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작금에 시끄러운 작통권 문제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에 대한 대응이며 이는 또한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바와 상통하는 것이다. 작통권을 인수한다는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완전히 한국을 배제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서도 미국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두르는 것은 모순처럼 보이나,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균형자론에 연유한 것이라 짐작된다.

    이제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인 셈이다. 뜰 날도 질 날도 없다. 이런 때 흔히 국민밖에 믿을 곳이 없다고 하지만, 그 전에 국가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권이 정신차려야 한다. 지금 정치권은 다음 대선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양상이지만, 대선도 정치의 한 장면이라 한다면, 누가 정권을 잡든 그때 부닥칠 문제의 무게를 생각하여 최소한의 정치자산을 건져내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도 하락은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중대한 사안에 대해 국회에서 그 흔한 결의안 하나 내놓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진정으로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는지 생각해 줘야 할 것이다. 특별히 지사(志士)들이 되라는 것도 아니다. 사적인 야심을 공적인 과제에 연결시키는 지혜를 요구할 따름이다. 평지에서 출발하여 산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면 세상이 어떤 풍경인지 안 보인다면 우리는 나라를 아둔한 인사들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권력을 권력답게 행사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