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당일 아침까지도 회담 상대의 참가 여부를 확인하지 못해 마음 졸인 예가 이번 19차 남북 장관급 회담 말고 또 있었을까. 어쨌든 북한 대표단이 오긴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화위복이라고, 이번 회담이 잘 진행되어 안보 측면에서 상호 신뢰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데, 글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모호해 보여서 지레 걱정이다. 언론들이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문제삼자 서주석 청와대 안보정책수석은 '국적 없는 보도, 국익 없는 보도'라는 장문의 반박문을 지난 6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렸다. 알아서 대응하고 있는데 일부 언론이 (이를테면)'뭘 알지도 못하면서' 정부를 흔드는 보도만 한다는 요지였다.

    그것으로도 분이 안 풀린 듯 그 사흘 후엔 '안보독재 시대의 망령에서 벗어나자'는 글이 홍보수석실 명의로 역시 청와대 브리핑에 실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안보 차원의 위기'가 아니었는데도 "일부 야당과 일부 언론이 위기를 부풀리면서 정부가 야단법석을 벌이지 않는다고 삿대질을 해댄다"는 호통이었다.

    거 참…,청와대측의 기세가 너무 대단해서 할 말을 잊게 된다.

    반면에 이런 뉴스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이병완 비서실장 주재의 청와대 상황점검회의장에 들러 일본 일부 각료들의 '선제공격론'에 대한 강경 발표문 작성 계획을 듣고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한 대응이기는 하다. 다만 아직은 개인 차원의 주장일 뿐인 일본 각료들의 '선제공격론'에 대해서는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도 실제 상황인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는 어떻게 그처럼 느긋할 수 있는지 그게 좀 난해하다.

    청와대보다 더한 정보의 수집 분석 판단 평가력을 가진 기관이 나라 안에는 없을 것이다. 어련히 잘 알아서 대응하겠는가. 그렇지만 이런 생각도 비집고 든다. 미사일 무더기 발사가 북한의 정치적 혹은 상업적 퍼포먼스였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정보 분석의 결과일 뿐이지 그 자체가 진실인 것은 아니다. 뻔한 얘기지만 북한이 미사일로 현실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남한이 거의 유일하다. '남한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미국과 흥정하는 북한'이라고 해서 지나친 매도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보낸 돈이나 물자가 북측의 군비 증강과는 전혀 상관 없다고 증거를 들어 말해줄 사람이 있는가. 우리에 대한 공격력을 강화시키는 데 우리가 일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 고약한 느낌이 늘 너무 부담스럽다. 군사적 압박 혹은 위협을 통해 한 걸음 양보 받은 상대는 반드시 또 한 걸음의 후퇴를 요구한다. 그게 인류 전쟁사의 경험칙이다.

    '냉전적 사고'를 비난하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냉전 구조를 고수하고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려는 세력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행위자는 바로 북한 군부라는 사실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은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의 폐쇄적 수령유일지배체제다. 북측 겨레는 '왕조지배'와 '선군정치'의 피해자일 뿐이다. 이 뻔한 사실을 외면하고서는 어떤 논리도 주장도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지나친 낙관주의 온정주의는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에 오히려 짐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겠다. 지난 정부 때는 국가 정보기관의 중추인 국정원 원장이 대북 메신저 역할을 하더니 현 정부 들어서는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이처럼 국가기관의 역할 기능이 뒤엉켜서야 국가 안보든 민족 화해든 무엇 하나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안보를 소중한 가치로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민족 화해·재결합의 길을 닦아가고, 남북 교류 협력 확대를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방에 빈틈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정부, 특히 대통령의 최우선적 책무다. 아직도 무력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이곳에서 4800만 거대 가족의 생존권을 지켜가는 데, 이것 말고 달리 어떤 길이 있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