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는 한나라당 당권도전자들 중 어떤 후보의 당내 영향력이 가장 클까.

    7월 11일 새로운 한나라호의 선장 자리를 노리는 8명의 대표경선 후보들이 본격적인 세 과시에 나섰다. 전날 첫 TV토론을 통해 '탐색전'을 벌인 후보자들은 4일 서울·강원지역 합동연설회를 시작으로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을 상대로 표밭 다지기에 돌입했다.

    TV토론으로 잔뜩 달궈진 경선레이스는 대의원과의 공식적인 첫 접촉을 통해 최고조에 달했다. 서울·강원지역 첫 합동연설회가 열린 서울 잠실 역도경기장엔 3000여명의 대의원·당원들이 연설회장을 가득채우며 경선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실질적인 표를 행사하는 대의원과의 첫 접촉인 만큼 후보자들간 기싸움 역시 치열하게 전개됐다. 후보들은 첫 힘겨루기에서 초반 기선제압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자신의 당내 영향력을 최대한 펼쳐 보이려 노력했다.

    TV토론에서 탐색전을 마친 후보자들은 이날 바로 난타전을 벌였다. 후보들은 시작부터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집중공략했고 선배 동료 할 것 없이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상대후보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특히 2강을 형성하고 있는 강재섭-이재오 두 후보는 첫 세대결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첫 합동연설회에 자신이 갖고 있는 당내 역량을 총집결시켰다. 

    무엇보다 이날 연설회에서 눈에 띈 것은 초선이며 비례대표이자 유일한 여성 의원으로 최악의 조건을 지닌 전여옥 후보의 선전. 상대적으로 당내 세력이 가장 취약할 것으로 전망돼 온 전 후보는 생각 이상의 파워를 선보이며 상대후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반면 의원과 원외인사 114명이 참여해 만든 중도·소장 세력 의원모임인 '미래모임'의 단일후보로 출마한 권영세 후보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취약한 당내 영향력을 보여줬다.

    이날 연설회에서 나타난 후보자별 세 분포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서울 지역이 대의원이 가장 많은 지역인 만큼 큰 틀에서 후보자간 세력의 윤곽은 가늠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재오, 서울 텃밭에서 세과시
    "당의 부패 수구 이기적보수 이미지, 대표 이미지로 바꿀 수 있다"

    서울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3선 의원 이재오 후보는 텃밭에서 자신의 세를 마음껏 과시하며 기분좋은 출발을 했다. 이 후보가 연단에 서자 연설회장 분위기는 이 후보의 지역행사에 온 것으로 착각될 만큼 호응이 컸다. 이 후보는 그리 길지 않은 연설을 하고도 내내 분위기를 압도했다.

    이 후보는 "골프장에 가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전국 구석구석을 다니는 서민의 대표가 돼 당의 이미지를 확 바꿔놓겠다. 수백 개의 정책과 말보다 대표의 이미지가 당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며 "부패보수에서 깨끗한 보수로, 수구보수에서 진취적 보수로, 이기적 보수에서 열린보수로 당의 체질을 확 바꾸겠다"고 주장했다.

    이때 한 지지자는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연설회장을 크게 한바퀴 돌았고 이 후보를 지지하는 대의원들 역시 "이재오"를 연호하며 크게 환호했다. 이에 이 후보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등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계속 이끌어갔다.

    이 후보는 "전국 구석구석 노무현 정권세력을 걷어내고 한나라당에 있는 무사안일주의를 쳐내겠다. 노 정권 세력이 한나라당을 파괴하고 당의 대선후보들을 파괴하려는 정치적 음모 역시 내가 온 몸으로 막아 대선승리를 쟁취하겠다"고 외쳤고 지지자들은 "이재오"를 연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강재섭, 경쟁자 이재오 텃밭에서 만만치 않은 세과시 하며 선전
    양복겉옷 벗어 던지고 넥타이 풀고 와이셔츠 소매 걷어올리며 이미지 전환시도

    이 후보와 2강구도를 형성하며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강재섭 후보 역시 이 후보의 텃밭에서 기대이상의 선전을 거뒀다. 대구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만큼 서울에서 열리는 연설회에서 이 후보에게 많이 밀릴 것이라 예상됐었지만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하며 기싸움을 이어갔다.

    강 후보는 정권교체를 위해선 '강한 야당' '강한 한나라당'을 만들 수 있는 대표가 선출돼야 한다는 분위기를 의식한 듯 '새로운 강재섭의 리더십'을 선보이며 대의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강 후보는 "과연 어떤 대표가 필요하겠느냐. 당 대표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며 "작년에 나는 박근혜 전 대표와 원내대표로 1년 간 손발을 맞추며 취임 10여일만에 봉숭아학당이라는 한나라당을 정책정당으로 만들어 지지율을 40%로 올렸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구시대의 지시일변도 카리스마는 없지만 선후배 동료 의원들과 원외위원장들을 조율하고 화합해 한 몸으로 끌고 살 수 있는 시대에 맞는 카리스마가 있다"며 "겉으로는 유연하지만 신명이 있어야 투쟁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작년에 국가보안법 사학법 투쟁을 할 때 그 결연한 의지를 봤다. 그는 과거에 길거리에서 투쟁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신념이 있기 때문에 한 것"이라고 주장한 뒤 "누가 시대에 맞는 투쟁을 한 것인가. 강재섭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강 후보는 양복 겉옷을 벗어 던지고 넥타이까지 푼 뒤 와이셔츠 소매를 걷는 등 기존의 온화한 이미지를 벗고 강한 면모를 보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지지자들은 "강재섭"을 연호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불리한 게임 시작한 전여옥, 강재섭-이재오 틈새서 기대이상 파워 선보여
    "맨몸 맨주먹으로 노 정권과 싸워 멍들고 다쳤다. 이게 여러분의 전여옥"

    이날 연설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후보는 바로 전여옥. 각종 선거지원유세와 사학법 장외투쟁 등을 통해 연설에 강한 면모를 나타낸 전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도 특유의 카리스마를 통해 연설회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지지자들의 감성을 잘 파고들어 청취자들을 흡수하는 장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전 후보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당내 세를 연설을 통해 커버했다. 전 후보는 "여러분의 전여옥이 이 자리에 섰다.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수모를 주는 데 3년을 보낸 이 정권에서 정말 그동안 잘 버텼다. 자랑스럽고 장하다"며 대의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전 후보는 앞서 연설한 강재섭 후보가 양복겉옷을 벗어던진 것을 겨냥 "당원동지 앞에서 남성후보처럼 벗으라면 나도 벗겠다"며 "나 몸매 괜찮다. 지난 선거에서 14일 동안 밥한끼 제대로 못먹으며 전국방방곡곡을 뛰어 선거다이어트를 했다"고 말해 청중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에 지지자들은 "전여옥"을 연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전 후보는 "지난 2년 동안 나는 맨몸 맨주먹으로 싸웠고 펄펄뛰는 이 심장은 노무현 정권이 쏜 수백만의 화살에 맞았다. 열린당과의 싸움으로 멍들고 다쳤다"고 호소했다. 그는 "넥타이 풀고 양복벗어던지는 쇼나 할 정도로 우리가 이렇게 한가하냐"고 되물었다. 그는 "2년 동안 모든 것을 던졌다"며 "내게 독설가라고 하는데 나는 이 말을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하라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전 후보는 또 "싸우고 투쟁해야 정권을 빼앗아 올 수 있다. 나만큼 질긴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나는 당을 지킬 수 있다"고 소리쳤다.

    114명의 미래모임 대표 권영세, 기대만큼 세과시 못해
    "왕년에 잘했다고 지금 차범근에게 국가대표 공격수를 맡길순 없지 않느냐"

    소속 의원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57명의 의원과 원외 당원협의회장 57명 등 총 114명이 참여한 '미래모임'의 단일후보로 출마한 권영세 후보는 기대했던 것만큼의 파워를 보여주지 못했다. 매머드 급  모임규모에 미니 전당대회까지 열며 '태풍의 눈'으로 불린 미래모임은 이번 전당대회의 최대변수로 꼽혔다. 하지만 서울을 지역구로 둔 데다 지지세력 다수가 수도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 후보는 초라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 때문에 이날 합동연설회를 지켜본 당 관계자들은 '미래모임 조직이 결속력 부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권 후보는 미래모임 114명이 선택한 단일후보란 점을 내세우며 '세대교체'필요성을 역설했다. 권 후보는 "이번 전당대회는 잘못된 과거와의 결별선언이고 분열세력과의 이별선언"이라며 "버릴 것을 버리고 새로운 미래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보궐선거 지방선거를 모두 이겨놓고도 반사이익이라는 답답한 소리를 듣고있다"며 3일 모 일간지에 실린 한나라당 전당대회 기사를 소개했다. 그는 "'아무리 뜯어봐도 그 때 그 사람' '그 밥에 그 나물' 시작한 지 하루만에 왜 이런 기사들이 나오느냐"며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적당히 손질하고 적당히 수리해서 1년 반만 버티면 이긴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권 후보는 "60년대 라디오 기술자에게 최신 핸드폰 제작을 맡길 수 없고 철거전문가에게 아파트 건축을 맡길 수 없다"며 "왕년에 잘했다고 지금 차범근 감독에게 국가대표 공격수를 맡길 수 없지 않느냐"고 역설한 뒤 "미래모임 경선과정에서 보여줬던 역동성과 통합의 희망이야말로 그 동안 한나라당에게 부족했던 2%였다. 우리 미래모임과 권영세만이 당의 미래세력, 통합세력이라고 자부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대표주자' 이규택, 이재오 겨냥 맹비난
    "사학법 재개정도 못하면서 어떻게 정권을 잡겠다는 것이냐"

    경기도의 대표주자로 출마한 이규택 후보는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장외투쟁 당시 최전선에 섰던 점을 강조하며 자신의 당선당위성을 역설했다. 이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수도권 출신인 이규택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며 "나는 당이 어려울때마다 앞장서서 투쟁해왔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노 정권이 국보법을 폐지하려 할 때 나는 국가수호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박 대표와 함께 중심에 서서 싸웠고 사학법이 날치기된 뒤에는 엄동설한에 콧물을 흘리며 박 대표를 모시고 장장 57일간 노 정권과 싸웠다"며 이재오 후보를 겨냥해 "그때 어디 있었냐"고 비판했다.

    그는 "이재오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출시 박 대표와 임기를 함께 한다고 했고 원내대표가 되면 사학법을 재개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약속을 지켰는가"라며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사학법 재개정도 못하면서 당 대표로 어떻게 정권을 잡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내 최대조직 중앙위원회 수장 정형근
    "박근혜도 나를 참 훌륭한 국회의원이라 했다"

    당내 최대조직인 중앙위원회 의장을 맡고있는 정형근 후보는 노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당원들의 표심을 흡수하려 했다. 정 후보는 "이제 우리는 노 정권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세금폭탄의 주역인 김병준을 교육부총리를 시켜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교육을 완전히 거덜내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국민의 한탄이 도대체 들리지 않는가 보다"라며 "쌍꺼풀 수술을 할 게 아니라 고막 수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지지자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정 후보는 "우리 모두가 혹시 대선후보가 분열과 갈등으로 인해 당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고 이번 선거가 대선후보 대리전으로 변질될지 걱정된다"며 "나는 어느 후보보다 중립적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공정하게 대선경선을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 후보는 "최근 내가 30건이 넘는 굵직한 법안을 내놓았더니 열린당 의원들도 깜짝 놀라더라"며 "박 대표도 나를 참 훌륭한 국회의원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정 후보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절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정 후보는 이어 "백주대낮에 박 대표에게 칼을 들이댄 살인미수자의 배후를 밝혀내지도 못했는데 우리 지도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며 "북한의 공작이 도사리고 있는지, 특정정치세력이 있는 것인지 밝혀야 제2, 제3의 테러를 막을 수 있고 정형근만이 우리 대선 후보를 지킬 수 있다고 자부한다"고 주장했다.

    충청권 대표주자 강창희, 원외임에도 만만치 않은 세과시
    "국회의원 단 한명도 없는 충청권에서 지방선거 압승했다"

    충청권 대표주자로 나선 5선의 강창희 후보 역시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했다. 출마자 중 유일한 원외위원장인 강 후보는 대선승리를 위해선 충청권에 대한 당의 지지가 절실함을 강조하며 자신의 당선당위성을 강조했다.

    강 후보는 "나는 충청권을 확실히 묶어 한나라당의 집권기반을 다지겠다"며 "과거 두 번의 대선을 돌이켜 볼 때 충청권의 승리가 대선승리로 이어졌다. 충청권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만큼 이를 대선까지 이어가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단 한명의 국회의원도 없는 대전·충남·충북 지역에서 지방선거 압승을 거둔 점을 거론하며 "수도권 출신도, 영남출신도 아니지만 국회의원이 단 한명도 없는 충청권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번에도 또 해내겠다. 반드시 해내겠다"고 말해 지지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