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킬레스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애초에 정해놓고 거기에 논리를 맞추려니 여기저기서 무리수를 두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신발을 발에 맞추는 격이 아니라 신발에 발을 맞추는 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가령 아킬레스는 언론이 ‘국민 과반수’보다 ‘한나라당의 편’을 든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사학법 문제라면 국민 70%가 사학법을 지지한다는 말 자체가 허상이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아킬레스는 언론을 통째로 싸잡아 비난하는데 도대체 한나라당의 편을 드는 언론이 몇 개나 되는가?

    보수사회에서는 방송은 정부 편이고 인터넷 주요 언론들도 정부 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종이신문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정부나 진보진영의 입장을 옹호하는 신문들이 제법 있다. 물론 종이신문 가운데 주요 보수지들이 많은 독자를 갖고 있다고는 하나 종이신문의 열독률은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져 있는 처지다.

    아킬레스는 일부 언론들이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지금의 사학법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 사안에는 시비를 가려줘야 하며, 정치를 경마로, 이전투구로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언론과 국민이고 암세포도 세포라고 옹호하는 언론도 암세포가 분명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 사안에 시비를 가려줘야 한다? 그거야 보수언론은 보수언론대로, 중도언론은 중도언론대로, 진보언론은 진보언론대로 제각기 사학법 논란에 대해 사설의 형태로 자기 할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아킬레스의 주장에서 재미있는 것은 ‘암세포도 세포라고 옹호하는 언론도 암세포가 분명하다’라는 주장이다.

    아킬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암 덩어리’인데 한나라당의 주장을 옹호해주는 조선일보 같은 보수신문이나 뉴데일리 같은 인터넷 보수지들도 암세포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이나 조선일보 독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매일 암세포를 받아보고 지지하면서 자해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아킬레스의 ‘국민 무시’는 아무리 봐도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당은 떼 쓰는 야당?

    아킬레스는 뒤이어 민주당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협상이 타결 안 되면 자연히 표 대결로 해서 승부를 내면 되는데 왜 물리력으로 막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을 떼 쓰는 야당이라고 비하한다.

    아킬레스가 이 칼럼을 쓴 것이 5월 1일이기 때문에 민주당 이야기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민주당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원래 소수야당은 다수여당에게 저항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표 대결이란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수야당이 다수여당에게 맞서 물리력으로 막는 것은 우리 정치 역사에서 쭉 있어 왔고 선진국 국회에서도 우보전술같은 정치적 행동이 있다. 우보전술이란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 처리과정에서 일본 사회당 등 소수파가 보여준 필리버스터의 일종으로 투표함이 있는 6개 계단을 올라갈 때 갖은 전략으로 시간을 끄는 것이다. 1992년 PKO 법안의 표결은 일본 의정사상 최장기록인 13시간이 걸렸다. 이러니 소수야당의 물리력 저지를 꼭 나쁘게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민생법안이 같이 들어있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또한 아킬레스는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선지 한나라당은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물론 해당 법안에 자기들도 찬성한다는 딜레마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들도 반대하지 않는 법안을 단지 사학법 재개정을 안해준다고 무턱대고 반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날이면 날마다 민생을 외치더니 민생법안 처리를 방해하는 작태는 어처구니없다. 하긴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번에 처리된 법안 가운데 어느것 하나 한나라당이 적극 찬성할 법안은 없다.」


    그런데 앞서 아킬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학법을 재개정하지 않으면 민생법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겠다는게 저들의 주장이지만 사실 민생법안도 그들 입맛에 맞지않기는 마찬가지다. 강남 부동산 갑부들의 정당인 한나라당이 뭐가 아쉬워서 부동산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겠는가 말이다. 관련법을 늦추기만 해도 강남 부자들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한나라당은 전체 국민에게는 욕먹을 집단이지만 자신들의 지지자들에게는 정말이지 200% 최선을 다하는 정당임에는 틀림없다. 정작 문제는 이런 기득권 수호 정당에게 수많은 서민들이 부화뇌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


    중앙일보 5월 3일자 ‘어떤 법안 처리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한나라당이 6개 쟁점법안에 대해 ‘총론적’으론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체적인 틀은 동의하는데 세부적인 문제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아킬레스는 이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아예 민생법안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글을 쓴다. 이렇게 오버하는 이유는 아킬레스의 편견과 이해관계 때문이다. 애시당초 아킬레스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에다 논리를 짜맞추고 있다. 한나라당의 영향력을 사실상 줄이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거기에다 논리를 짜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이야기가 앞뒤가 안 맞게 된다.

    5월 1일 글에서는 한나라당이 쟁점법안을 싫어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5월 2일 글에서는 ‘한나라당 자신들도 찬성하는 법안’이라고 말을 바꾼다. 어쨌든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아 법안이 통과되어 버리니 ‘한나라당이 좋아할 법안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라고 여운을 남긴다.

    한나라당은 악당 패거리들인데 민생법안 따위를 좋아 할 리가 있겠느냐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북한 인권 법안이 한나라당의 주도로 한국 국회에서 통과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적극적으로 막지 않아 통과된 것이다. 이것을 보고 일부 보수인들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은 김정일 앞잡이 들인데 북한 인권 법안 따위를 좋아 할 리 없다며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좋아할 북한 인권 법안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고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아니다.

    분명히 말하면 북한 인권 법안 문제에 있어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한나라당과 재야보수들은 서로 입장이 다르다. 마치 재야보수들은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자신들의 북한 인권 입장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해서 ‘김정일의 앞잡이’라는 식으로 비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 측의 북한 인권 주장, 그러니까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북한 인권 해결책이란 요지의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측 입장과 재야 보수측 입장의 중간쯤에 서 있는 것이다.

    아킬레스는 마치 한나라당은 악의 세력이므로 몽땅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악의 논리만 떠들어 대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발상은 소위 극우파의 그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극우파의 입장에서 볼 때 아킬레스가 김정일의 앞잡이이며 악의 세력이듯 아킬레스 역시 한나라당을 악의 세력으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아킬레스나 극우파가 이야기하는 주장은 다르지만 전체주의적 논리 패턴은 비슷하다. 그 점을 아랫부분에서 증명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