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운영위원장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쓴 시론 '국정교과서를 폐지한다는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 교육부가 중등학교의 국어와 국사 과목 등에 남아 있던 국정교과서를 폐지하고 검정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국정인 초등학교도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검정화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 때늦은 감이 있으나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더 큰 걱정이 고개를 내미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었다. 교육내용을 정형화, 획일화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국정교과서하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이나 학문적 자율성이 무시되고 교과서가 정권 홍보용으로 악용된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국정교과서는 다양성이 강조되고 창의성과 유연성이 높이 평가되는 시대와 양립하기 어려운 제도이다. 이 점에서 국정제 폐지가 옳은 방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검정제도로 바꾼다고 하여 반드시 교과서가 개선되고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가 지금까지 존속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검정제로 간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국정교과서는 ‘교육의 통일성’을 기할 필요가 있는 과목에 한해 운영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국가적 정체성을 강조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었고 또 앞으로도 유효하다. 

    특히 90년대 이후 민주화의 과잉 속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가치관과 욕구가 분출되는 상황하에서는 국민의식의 통합적 기반을 형성하기 위해 교육의 통일을 기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국내외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국어와 국사 등에 한해 국정제를 고집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02년에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검정을 둘러싸고 큰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충분한 준비가 없이 검정제를 실시하였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검정 당시의 정권에 대한 기술이 편파적이었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과 달리 국민의 정부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서술하였을 뿐 아니라 양도 많았다.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소극적 혹은 부정적으로 서술한 교과서가 출현했으며, 이 교과서가 오히려 다수 채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도 않고, 분단의 주된 책임을 미국에 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0% 이상의 학교가 채택하였다. 

    전자의 문제도 적지 않지만 후자의 문제는 정말 심대한 문제다. 후자의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검정제 도입은 돌이키지 못할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교육부는 검정제 폐지에 앞서 공교육의 존립근거와 관련되는 국가체제 문제에 대한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간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의 폐지에 소극적이었다. 반면에 우리 교육계를 쥐락펴락하는 전교조는 검인정도 국정의 변형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교과서의 자유발행제를 주장하고 있다. 교과서의 채택을 학교별로 교사들이 대부분 결정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교과서 검정제조차 전교조에는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로 교육내용을 과점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물며 자유발행제도가 채택되면 교과서 내용에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그동안 계기수업에서나 실시하던 ‘반(反)에이펙 수업’과 같은 것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교과서 주무 부서인 교육부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대다수는 국정교과서와 같은 교육내용의 획일화를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교사의 창의성과 현장성이 풍부하게 반영된 교재가 교실에서 활용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국가적 정체성이 부정되거나 모호해져, 이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사태는 더욱더 바라지 않는다. 교육내용의 다양성과 교재의 창의성 및 현장성은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전제한 위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