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중앙포럼'란에 이 신문 정책사회부 이세정 차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극단의 시대입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과의 만남이 논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강정구 교수 사건, 사립학교법 등 굵직한 화제가 등장하면 예외없이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너나없이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친구들과의 대화는 나은 편입니다. 정치권, 시민단체, 각종 이해집단의 주장을 들어보면 상대방은 타도의 대상인 적(敵)입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한쪽의 입장만 보면 다 그럴듯한 명분과 논리를 갖춘 것 같은데, 막상 양쪽의 접점은 쉽게 찾아지지 않습니다.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선정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였을 겁니다. '위에는 불, 아래는 물'이라는 뜻으로 주역에 나오는 말이랍니다. 올 한해 우리 사회가 불과 물처럼 상극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해의 사자성어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습니다. '같은 사람끼리 패거리 지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등 극심한 사회갈등을 꼬집은 말입니다. 올해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2003년으로 거슬러 가면 '우왕좌왕(右往左往)'입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치.경제.외교 정책이 오락가락했다는 것입니다. 2002년은 '이합집산(離合集散)'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철새들이 판쳤던 정치권을 빗댄 말입니다. 2001년의 '오리무중(五里霧中)'은 각종 게이트가 난무했던 풍토를 풍자했습니다.

    5년 동안의 사자성어를 모아놓으니 일정한 흐름이 보입니다. 2003년까지는 헷갈리는 모습입니다. 더럽다며 외면하고 내 일만 열심히 해도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달라집니다. 모든 사람이 어느 편인가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사안들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주도세력이 바뀌고 있기 때문일까요? 동지 아니면 적으로 구분되는 시대입니다. 중도파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균형과 조화라는 말은 사라졌습니다. 한때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목되던 양시론(兩是論)이나 양비론(兩非論)이 그리울 정도입니다. 

    이도저도 싫다며 입을 꽉 다물고 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편 가르기를 강요하는 사안들이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숫자가 많은 쪽을 선택하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수의 선택이 곧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유세'가 좋은 사례입니다. 부자들로부터 따로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게 부유세입니다. 찬성표가 많게 되어 있는 정책입니다. 그러나 부유세를 도입했던 유럽 국가들도 요즘엔 이를 없애고 있습니다. 명분도 좋고 다수가 찬성한 부유세지만, 이를 도입해보니 기대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경제성장만 힘들게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현실을 확 뒤집자는 주장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듣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고 통쾌한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어떻게 포장하든 실제론 '혁명'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혁명의 후유증으로 시달린 사례를 많이 보여줍니다. 혁명이 필요한 사안인지, 또 지금이 혁명을 할 때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합니다. 

    극단의 시대, 선택을 강요당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방법으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 일본은 올해를 상징하는 한자로 '애(愛)'를 뽑았답니다. 미국의 허리케인, 파키스탄의 대지진 등 지구촌의 대재앙을 보며 세상에 사랑이 넘쳐나길 기원한 사람이 많다는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