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 주장 한명숙氏 사죄하라” 前 정보부 수사관 증언록 출간 
      韓 前총리, 79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은 “고문 조작”
    金成昱    
      
     1.
     1979년 한명숙 前총리가 연루됐던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을 맡았던 전직 정보부 수사관의 증언록이 나왔다. 이번 주 출판된 ‘남산, 더 비하인드 스토리(시사문화사 刊)’는 전직 중앙정보부 對共(대공)수사국 수사관으로 근무했던 이기동氏의 회고록이다. 李씨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이 당시 판결문에 판시됐듯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했다”고 적었다. 또 고문 논란과 관련, 韓 前총리의 피해 주장에 대해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  필자인 이기동氏는 1979년 2월 당시 수사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수석간사 이우재(前마사회 회장), 신인령(前이대총장), 한명숙(前총리) 등은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농민·근로자·청년·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중간집단이론’이라는 社會主義(사회주의) 이론 강의를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부정하고 이를 변혁하게 함으로써 社會主義 실현을 획책한 것으로 보고 용공혐의로 이들을 검거하기에 이르렀다.”
     
     필자는 “한명숙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이우재·신인령 등과 합류했고 그들 간사 3인은 그곳 숙소 등에서 학원 수강생들에게 社會主義(사회주의) 이념교육 방향 등에 대한 철저한 토론을 통해 결속했다.”고 적었다. ‘남산···’에 인용된 판결문 역시 이렇게 판시했다.
     
     《아카데미는 (···) 노조·여성·농민·학생·종교·언론 등 소위 중간집단을 육성 강화하고 (···) 그들을 의식화시키는 과정에서 착취로부터 해방되어 권익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식을 고취시키고 이들을 조직화시켜 社會主義(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했다》
     
     판결문은 또 韓 前총리가 모스크바방송·북경방송·평양방송·통혁당 목소리 방송 등을 들었던 것으로 전한다.
     
     《써클회원 6명이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속개하기에 앞서 그 집에 있던 라디오를 조작하여 ‘어버이 수령 金日成(김일성)…’하는 북괴의 어린이가 金日成을 찬양하는 북괴방송을 함께 들은 후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스웨덴의 탁아소 등 어린이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잘 되어 있는 곳은 以北(이북)이라고 하더라’는 요지의 말을 하여 反(반)국가단체인 북괴 또는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에 동조 또는 찬양하여 이를 이롭게 했다》
     
     韓 前총리는 당시 사건으로 2년간 수감됐었다.
     
     2.
     이기동氏는 고문 조작 논란도 다루고 있다. 필자가 전하는 법정의 모습은 이랬다.
     
     “드디어 내가 담당했던 피고 한명숙의 차례. 그녀는 진술 도중 갑자기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포승으로 묶인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며 재판부를 향해 말했다. “제가 정보부 남산 지하실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는데 그때 고문당한 저의 좌측 어깨를 좀 봐주십시오” 하는 것이 아닌가? 재판장이 그녀에게 “어깨를 어떻게 고문당했다는 말이오?”라고 묻자 그녀는 나를 향해 “저기 검사 밑에 앉아 있는 내 담당 수사관(필자인 이기동)이 담뱃불로 내 왼쪽 어깨를 지져 상처가 있으니 한 번 보십시오”라고 하지 않는가?(···)
     
     그로부터 20분 후 서울대학교병원 외과 과장 심 박사가 도착했고 심 박사는 법정에서 그녀, 한명숙의 요구대로 어깨를 들추고 현미경 비슷한 것으로 상처를 살피고 어깨를 방청석을 향해 보이며 “여러분 보이세요? 이 조그마한 흉터가 최근에 담뱃불로 지진 상처 같습니까?” 하고는 다시 재판장을 향해 “이 흉터는 이 사람이 3~4세 때 종기가 생겨 난 흉터자국으로 보입니다. 이상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니 고문이라니! 그것도 내가 담뱃불로 지졌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나에게 ‘그때 그녀를 고문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 차례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했거나 또 어떤 심한 언동이나 다른 방법의 고문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하늘이 나에게 벼락을 내릴 거다’라고 답하겠다. 만약 그녀가 당시 거짓말을 했다면 지금이라도 신이여 그녀에게 천벌을 내려주옵소서 하고 빌겠다.(···)”
     
     필자는 “오늘날 시대가 좋아(?)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로까지 출세한 그녀는 꼭 그때의 ‘담뱃불 고문’ 주장이 허위임을 만천하에 밝히고(어떤 방법으로든 이 사회에 정정당당하게) 필자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라며 韓 前총리의 사과를 촉구했다.
     
     필자는 또 “상호 변호인단을 구성, 확인하고 그 당시 지하 심문실을 완벽하게 녹화한 필름이 있을 것이니 국정원에 요청하여 사회정의 구현 차원에서 국회 청문회를 열어 심문실의 全 과정을 만천하에 공개토록 하자”며 이른바 좌파·좌익의 허위 고문 주장에 대응키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3.
     韓 前총리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고문 조작 사건이라고 주장해왔다. 2006년 3월24일 당시 총리로 지명된 韓 前총리가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올린 ‘한 총리 지명자의 삶 ④ 고문과 절망’이라는 글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때의 두려움으로 손이 떨린다. 나는 정말, 정말, 정말 그 모멸의 순간이 영원히 내 기억에 지워져 拷問(고문)이라는 범죄를 알기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만 싶다. 나는 아직도 가끔 하나님께 나를 拷問(고문)했던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아무리 짓이겨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拷問(고문)의 기억은 여전히 내 상념의 어두운 한 모서리에 우두커니 숨어 있다.(···)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毆打(구타)를 당했다.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온 몸은 피멍이 들어 부어올랐고 부은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귓전에 울려오는 욍욍거림 속에 나를 拷問(고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아스라하게만 들려왔다. 셀 수 없을 만큼 정신을 잃었고 차라리 그 순간이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고문의 고통보다 더 크게 나를 짓눌렀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는 것이었다. 아! 나는 패배했다. 나의 믿음과 나의 각성과 나의 정의감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진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인간의 믿음은 얼마만큼 우습고 허약한 것인가?”
     
     2006년 4월17일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당시 한명숙 후보자는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 당시 고문한 당사자들을 근래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개인의 미움이 아니라 민주화과정에서 당한 것”이라며 “이미 다 용서했으며 과거의 일을 되살리지 않고 미래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