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日本의 再興을 위하여

    大지진 쓸어내고
    역사를 청산하라

    일본을 대표하는 識者들이 이번의 동일본대지진을, 메이지근대화 이래 기대 왔던 세계관의 전환을   불러오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許文道 /전 통일부 장관

    3·11 동일본대진재(東日本大震災)는 일본 역사에서도 미증유(未曾有)의 것이다. 도쿄 이자카야(선술집)의 술맛을 돋우던 가리비 조개, 멍게(우렁쉥이) 등 해산 진미(海産 珍味)의 명산지(名産地)였던 동북지방 태평양 연안이 남북 500km에 걸쳐 하루아침에 쓰레기 덤불, 쑥대밭으로 변해 버렸다. 리히터 규모 9.0 강진에 이은 쓰나미가 수개 현(縣)에 걸쳐 삶의 터전과 생산현장과 그 역군들을 융단폭격 맞고 난 폐허처럼 쓸어 버렸다.
    500km면 서울서 부산까지를 넘어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봐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광대한 지표 위에 있던 현대세계 첨단의 인간의 영위가 일순에 무(無)로 화(化)한 것이다. 

    지난 월간조선 3월호에서 본 14만명이 희생되었던 1923년의 간토(關東)대지진은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이었고, 5000명이 희생되었던 11년 전의 한신(阪神)대지진은 불황기의 정부에 주는 충격은 컸으나 오사카 만과 고베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번 지진의 강도와 피해지역의 광활함이 일본인들에게 ‘일본침몰’을 연상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지진이 있고 나서 일본의 국가,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여느 때와는 판이하다.
    이번 진재를 일본사람들은 태평양전쟁에 이은 ‘제2의 패전(敗戰)’이라 하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제2차대전 후의 대개혁을 각각 1·2차 개국(開國)이라면서, 이번 지진을 계기로 장기불황 이후 숙제로 되어 온 ‘제3의 개국’을 하겠다고 하고 있다. 태평양전쟁에 패한 후, 역사 구분으로서 일본은 ‘전후(戰後)’라는 용어를 써 왔는데, 이제 이들은 이 지진을 계기로 ‘재후(災後)’라는 시대구분을 쓰려 하고 있다.
    일본은 무언가 크게 질적(質的)으로 새 출발을 해 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심대한 지진피해의 복구·부흥 차원을 넘어, 일본국가·문명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새 진로, 새 영위를 시도하려는 수준으로 보인다.

    日本的 근대주의의 반성
     
    일본을 대표하는 식자(識者)들이 이번의 동일본대지진을, 메이지근대화 이래 기대어 왔던 세계관의 근본적 전환을 불가피하게 하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근대적 가치인 과학주의·기술주의에서 스스로 우등생임을 자부했다. 이웃이나 윤리기준 같은 것 눈치 볼 것 없이 이 기술주의를 최대한 이용하면,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주물러, 물적 행복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일본은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 지진으로 이 신념에 동요가 생겨나고 있다.
    이번 진재로 유발된 인재(人災)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그 근본이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잡히지 않고 있고, 방사능 위기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번 지진은 그 피해규모도 규모지만, 이 원전(原電)사고가 기술대국 일본의 자존심을 구기고 자신 상실감을 안길 뿐만 아니고, 미국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계기가 되고 있어 보인다.
    ‘이번의 지진은 시장원리주의나 글로벌리즘, 금융중심 경제를 불어 날려 버렸고, 인간이란 늘 인지(人知)를 넘어선 거대한 불확정성에 노출되어 있음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는 ‘하늘’을 무서워할 줄 몰랐다고 털어놓으면서, 인지(人智)·인력을 넘어서는 뭔가가 인간의 생활을 떠받치고 있다는 관념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경지라면, 일본과 윤리감각이나 역사청산을 함께 얘기해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지진과 천벌
     
    도쿄도지사 이시하라(石原) 신타로는 이번 지진이 난 지 3일 만인 3월 14일 ‘천벌(天罰)’ 발언을 하고 나왔다. 그동안, 아시아의 이웃들을 경멸, 무시하는 대중선동성 발언을 예사로 쏟아내어 물의를 일으켰던 그가, 이번에는 취향을 달리하여 일본 국민을 훈계하는 조로 한마디했다.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는 아욕(我欲)이다. 이번의 쓰나미로 이 아욕을 한번 씻어 내야 할 것이다. 역시 천벌이다.”
    인기작가이기도 했던 이시하라는 대중의 심리를 읽는 데 일장(一長)이 있어 보인다. 그동안의 차별발언을 여론조사하면 60%의 지지가 있었다. ‘천벌’ 발언은 이시하라가 하루 만에 취소했지만, 그의 제일감(第一感)은 그를 포함한 평균적인 일본인들이 갖는 어떤 죄악감을 잘도 집어냈다는 느낌이다. 그가 이번 지진을 천벌에 빗대, 일본인 내면에 청산해야 할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할 것이다.
    이시하라의 발언은 기자들이 추궁하니까 당장 사죄까지 했지만, 중립적인 식자들의 공감도 만만치 않다.
    한 작가는 ‘천벌이라고 입에 올리지는 않아도 전부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것은 재난당한 사람들에 대해서가 아니고, 그와는 초점이 다른 일본국이라는 전체의 덩치에 대해서인 것이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이번 대지진을 만나 뭔가 돌이켜 보려는 낌새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文藝春秋》2011. 5월호 참고)
     
    《일본침몰》의 반성
     
    《일본침몰》은 1973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400만 부 가량 팔린, 작가 고마쓰 사쿄(小松左京)의 SF소설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와 라디오 드라마로 각각 두 번, TV드라마와 만화로도 기록적인 히트를 했다. 일본사람들에게 무슨 예감이 있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5년 전 원작소설이 나온 지 33년이 지나, 두번째로 영화화되어, 또 다시 폭풍적인 히트를 했고, 업자를 돈방석에 앉혔다 한다. 한국에도 두 종류 번역되어 있다.
    《일본침몰》은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전 열도(列島)가 지진과 화산폭발과 용암분출과 쓰나미 속에 바다로 가라앉아 가는 장면을 거대한 용의 죽음으로 그리고 있다.
    “북반구의 반을 차지하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지금 한 마리의 용이 죽어 가고 있다. 구슬을 쫓는 모양으로 몸을 크게 용틀임하여, 꼬리를 치켜든 몸의 구석구석에서 불과 연기를 내뿜고 있어서, 그 전신은 내부로부터 터져 나오는 경련으로 쉴 틈 없이 떨리고, 위연(魏然)하게 솟아오는 가시 봉우리 사이에 그린의 수풀을 무성케 했던 딱딱한 등짝은 그물 마디처럼 토막토막 잘리고 벌어져, 그 상처로부터는 뜨거운 피가 철철 솟아 흘렀다.”
    소설에서 열도침몰은 한 지진학자가 열도 동쪽의 1만m급 바다밑 일본 해구(海溝) 탐사에서 얻어낸 결론으로, 일본정부가 받아들여 침몰 1년 전에 온 국민과 전세계 앞에 공표하였다. 정부는 1억 일본인의 국외(國外)탈출과 자산퇴피(退避)를 실행해 들어가는 위원회를 가동시켰다. 대피할 나라를 선정하느라 숙의하는 위원들의 입을 통해, 작가 고마쓰 사쿄는 그동안 일본이 역사 속에서 한국을 위시한 이웃 아시아의 나라들과 맺어 온 관계의 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하는 몇 위원들의 발언이다.
    “이런 일본이 제일 가까운 지역의 나라에 … 마음대로 대피할 수 없다니 얄궂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그 같은 지역과 좀 더 진작부터 든든한 우호관계와 상호교류를 이뤄 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이후, 이렇게 가장 가까운 전 지역을 적으로 만들어 버리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단 말이야. 경제침략 아니면 군사침략, 냉전외교의 들러리 아니면 군사기지. 어느 쪽이건 제국주의 침략의 되풀이다. 선린(善隣)외교를 한 번이라도 자기로부터 스스로 해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아시아의 고아(孤兒)가 되도록 작용해 왔으니까,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게다가, 국민한테는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우호화해 교육을 전후에 전혀 못해 왔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 아니꼽고 역겨운 오만한 우월감을 국민 속에 만들어 버린 채 시정하지도 않았다. … 아시아 여러 국민을 무교양의 가난뱅이로 경멸하는 이코노믹 애니멀의 감각이 일본인 감각 아닌가. 이런 무리들이, 만약 저쪽 지역에 슬쩍 이주한다면 어떻게 되겠어.”
    일본은 한 번은 무력(武力)으로, 한 번은 금력(金力)으로 끝 모를 고지에 올랐다고 뽐냈지만, 스스로 아시아의 고아가 되고 만 역사가 있다. 작가 고마쓰는, 열도가 바닷속으로 잠기는 종말론적 개벽(開闢)을 세트해 놓고 일본을 이끄는 자들이 피하려고 든 역사의 진실을 가차없이 털어놓았다.
    일본이 동일본대지진을 털고 새 출발을 할 때, 일본은 최소한도 아시아의 고아 된 역사는 청산하기를 작가 고마쓰는 바랄 것 같다. 하늘이 일본에 이시하라 식으로 천벌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고마쓰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無緣사회’ 혹은 ‘孤族의 나라’
     
    일본 NHK는 작년에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시리즈 프로그램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제의 심각성을 아사히(朝日)신문도 인정했던지 올해 들어 ‘고족(孤族)의 나라’라는 기획시리즈를 하고 있다.
    ‘무연사회’나 ‘고족의 나라’는 모두 하나의 사회현상을 달리 표현하고 있다.
    일본서 국세(國勢)조사를 해 보니 1인세대의 수가 ‘부부와 자녀들로 이뤄진 세대’를 확실히 넘어섰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하면서 결혼에 대한 의식변화가 일어나 단신자가 급격히 늘어난 데다, 장기불황으로 고용이 붕괴되고 지역혈연공동체의 윤곽이 희미해져 일본인들의 사회적 상호관계에 질적 변화가 일어나 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연사회인 것이다. 30대, 40대에 이미 사회로부터 고립하는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는 일방에, 가족이나 사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희박해 가고 있다 한다. 가족 내에서조차 대화의 증발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고립해 있다는 것이다.
    그 결론적 현상으로 일본에는 연간 3만명 이상이 고독사(孤獨死)하고 있다. 도쿄 23구 안에서만 하루 평균 10명이 고독사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아무도 모르게, 거들떠보는 사람 없이 혼자서 죽어 가고, 신원도 판명 안된 채 화장(火葬)되어 무연(無緣) 묘지에 보내진다. 죽고 나서도 혼자는 쓸쓸하다고, 생전에 미리 비영리법인과 계약을 맺어 재산이나 소지품, 자신의 사후(死後)처리까지 위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은연중에 진행되고 있던 무연사회화 현상을 모르고 있다가, 일본을 대표하는 NHK, 아사히(朝日) 양대 매체가 문제 제기를 하고 나오니까, 일본인 모두는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발밑의 땅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다수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무연사회 현상을 정시했을 때, 그것이 1억2700만 인구의 일부에 있는 현상이기보다는, 그동안 근대화·군국화(軍國化)·패전·전후개혁·고도성장·경제대국·장기불황까지 역사를 질주해 온 일본이라는 공동체사회가, 사회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한, 그 선단현상으로 감지했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매체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일본정부의 반응도 빨랐다.
     
    간 수상, ‘사회적 포섭전략’ 선언
     
    TV의 프로는 작년이었고, 신문의 시리즈는 해가 바뀌어 시작되었을 뿐인데, 벌써 1월 24일 간 나오토(菅直人) 수상은 국회의 시정방침 연설에서, 양 매체의 ‘무연사회’와 ‘고족의 나라’에 언급하여, “국가는 고립된 사람들의 지원을 추진할 태세”라고 천명했다. 간(菅) 수상은 “고립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싸 안을 ‘사회적 포섭전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여당인 민주당은 재빨리 ‘무연사회’를 살아가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고족’들을 지원하고 후원할 ‘온정·서로돕기 본부’를 설치키로 하고, 그 위원장에 하토야마(鳩山紀夫) 전 수상을 앉혔다. 일본 집권층이 받은 충격의 크기를 알 수 있다.
    한편에서, 일본 안에 개체가 가족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현상을 ‘일본식 자본주의 고도성장의 필연의 결과’라면서 정부가 손댈 수 없는 현상이라고 정부 개입에 부정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무연사회’에 대해서는, 일본 젊은이들의 탈(脫)결혼적 현상으로 인한 단신화(單身化)와 가족 내에 있으면서도 커뮤니케이션의 증발로 인해 PC네트도 거들어서 가족 내에 고족이 생겨나고, 사회적 귀속(歸屬)의식이 희박한 분자들이 생겨나는 현상이 문제의 결정적인 부분으로 보인다.
    우리보고 얘기하라고 한다면, ‘무연사회’는 일본의 고도성장과 경제입국의 결과물이기보다는, 일본근대화가 일본의 전통 윤리로서 어느 정도는 정착했던 유교(儒敎)를 무익(無益)하고 후진 정체적이라고 짓밟아 버리고, 서양의 공리주의(功利主義)·파워 폴리틱스를 무조건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근대화 산업화 선진화를 추진해 온 결과물이 아닐 것인가.
    유교를 핫바지 취급했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후쿠자와(福澤諭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근대화 노선의 종착점이 ‘무연사회’일 것이다.
    아사히 신문은 시리즈에서, ‘무연사회’ 문제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고, 산업화·선진화에서 열심히 일본에 따라붙고 있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 제국의 내일의 모습”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은 좀 다를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유교윤리는 가족공동체를 가치의 중심에 두고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유교를 버리는 것이 개명(開明)인 줄 알았고, 일본 쳐다보고 산업화의 길을 달려왔다. 그래서 자살률과 출산율을 가지고 일본과 경쟁하듯 한다. 그러나 한국은 전통사회 시대에 일본보다는 유교에 더 깊이 들어갔고, 한국인들의 내면에 그 깊은 DNA에 유교적 가족윤리의 핵은 남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의 첫 5년간에 삼성이 일본 소니를 넘어서 극일(克日)의 단초가 열렸고, 이번 동일본대지진을 넘기면서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이 도요타를 넘어서서 극일의 문은 더욱 확실히 열린 듯하지만, 일본의 무연사회를 한국은 따라가고 있는가. 아닐 것이다.
    유교에토스(문화적, 윤리적 기풍)는 오늘도 한국인 아이덴티티(정체성)의 심부에 있는 구성요소이다. 한국인들 DNA에 유교에토스가 있는 한, 늦게 가는 한국은 일본을 반면(反面)교사 삼아, 일시적 증상은 있다 해도 무연사회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가지 않게 할 것이다.
     
    孤國 혹은 ‘아시아의 孤兒’
     
    작가 고마쓰 사쿄는 소설 속에서, 일본이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아시아의 고아가 되도록 처신하여 열도가 침몰하는 막다른 골목을 만나도 아시아의 이웃에는 마음 놓고 대피할 데도 없는 처지를 심히 한탄해 보였다.
    그런데 현실의 일본이 아시아에서 고아 같은 신세인 고국(孤國)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21세기가 되어 5년이나 지난 2005년 가을 유엔 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본은 그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적 지도력을 수행해 보고자, 고액(高額)의 유엔 분담금을 부담하고 개발도상국 원조인 ODA를 어느 나라보다 많이 내는 등으로 오래 공을 들인 끝에, 유엔 총회에 일본이 안보이사회에 상임이사국으로 들어가는 유엔 개혁안을 내놓았다. 일본이 그동안 긴밀한 관계를 만들려 애써 왔던 동(東)아시아의 ASEAN 10개국 및 한국·중국 등 어떤 나라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고, 개혁안은 폐기되고 말았다.
    일본은 그 경제가 세계 정상의 수준에 도달한 지가 한참 되고서도 동아시아의 고국(孤國)임이 드러났던 것이다.
    공동체에서 유리된 개인이 많은 ‘고족의 나라’ 일본은 동시에 아시아의 이웃으로부터는 그들의 소망이 외면당하는 고국이기도 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시아 해방전쟁’ 운운의 헛소리를 한 것이 사실은 아시아 여러 민족에게 새로운 재갈을 물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인도의 간디는 지적했지만, 이웃들은 오늘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역사를 청산치 않고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도 모르고 있는 것인가.

    ‘無緣사회’와 대지진
     
    앞에서도 보았지만, ‘무연사회’는 근대일본의 하나의 종착점이다. 이 말에는 어떤 절망감과 상실감이 배어 있다. 이 종착점에 동일본대지진이 덮침으로써, 일본인들은 어떤 역사의 획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간토대지진 등에 크게 당했지만 시대가 달라졌다고 느끼진 않았다.
    재후(災後)의 새 출발을 구상하면서 일본은 지금 세계관(世界觀)의 전환까지 들먹이고 있으니까, 제언 한마디 했으면 한다.
    먼저 퇴계(退溪)학자로서, 인의(仁義)의 바탕 위에 서양 근대를 수용하려 했던 요코이 쇼난(橫井小楠)이 암살당하지 않고 뜻한 대로 전개했다면 도달했을 일본을 한번 그려 볼 수 없을 것인가. 마쓰우라(松浦玲)의 <アジア型近代の摸索  明治維新私論>(現代評論社)가 시사적이다.

    두 번째로, 일본은 2차 대전에서 군사적 패멸(敗滅)만 한 것이 아니고, 마하트마 간디의 지적(마하트마 간디, ‘모든 일본인에게’, <私の非暴力か2>, みすず書房)대로 ‘도덕적 붕괴’까지 있었던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전후에 역사청산을 회피하여 윤리적 재생의 길을 스스로 닫았다.
    이제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의 지형도 많이 바뀌었다.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과거청산을 회피하는 것이 지금은 한일 양국의 공통의 이익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큰 그림에 눈이 가기를 바란다.

    셋째로는, 동일본대지진이 나고 나서 일본사람들은 이런 저런 문제를 거론하면서 몇 마디 지나지 않아서 곧잘 1923년의 간토대지진을 들먹이는 것을 본다. 그때 일본의 보통사람들이 저질렀던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입에 올리는 것을 지진 난 지 석 달이 넘도록 보지 못했다.
    이번 지진이 나고 나서 일본 사람들은 재난 속에서도 인내심과 질서의식이 대단하다고 야단들인데, 간토대진재 때는 일본 양민들이 어떠했는지 일본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조선 땅의 개미군단이 이웃이 큰 재난 당했다고 주머니 좀 털어 보냈더니, 돌아온 것은 독도 욕심뿐이어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조선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만큼 현금적은 못된다.

    누군가 일본을 대표하는 사람이, 올해는 지진났던 그 9월이 오면 그때의 관헌(官憲)들이 조선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둑에 세워 놓고 기관총을 난사했던 그 아라카와(荒川) 강둑에 가서, 촛불 하나 켜 놓고 참회의 합장이라도 한번 있기를 기대한다.
    일본, 제3의 개국의 성공적인 출발점이 거기 있을 것이다. 윤리적 입각점을 얻게 된 일본이 세계 앞에 활개를 펴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의 축, 한일연대(連帶) 다이내미즘의 진정한 출발점이 거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