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 사설 '대한민국 국민을 내동댕이친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히며 소개합니다.

    1975년 오징어잡이에 나섰다가 동해에서 북한에 납치됐던 최욱일(67)씨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 땅에서 남한의 아내와 31년 만에 만났다. 아내 앞에 나타난 남편은 건장한 30대 청년이 아니라 몸무게 48㎏의 뼈만 남은 채 새까맣게 타버린 노인이었다.

    최씨는 탈북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자국민 보호는 정부의 기본 의무이고 존재 이유다. 그러나 이 정부에는 납치된 국민은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최씨를 탈출시킨 것은 부인이었다. 최씨 부인은 정부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파트 청소를 해 모은 돈으로 남편을 탈출시켰다.

    중국에서 최씨 부부는 지난 2일 주 선양(瀋陽)영사관에 전화로 도와달라고 했다. 영사관 직원들은 “우리 일이 아니다”면서 전화를 이 부서 저 부서로 계속 돌렸다. 휴대전화를 받은 직원은 “이 번호를 어디서 알았느냐”는 것부터 따졌다. 납북자 단체가 지난달 26일 정부에 최씨의 탈출을 알리는 공문을 보냈지만 영사관은 “(본부로부터) 그런 문건은 받은 적이 없다. 우리는 납북자문제를 다뤄본 적도 없다. 본국 정부에 전화하라”고 했다고 한다. 탈북 국군포로의 전화를 받은 주중대사관 직원이 “도와줄 수 없다”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린 사실이 알려져 국민의 분노를 산 것이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전후 납북자만 400명을 넘고 이들을 가슴에 묻고 사는 가족이 수천명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납치범 눈치 보기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북한이 눈을 부라리자 ‘납북자’ 대신 ‘전후 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자’라는 정체 불명의 표현을 쓰기로 했고, 남측 기자가 ‘납북자’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정부 당국자가 북측에 사실상 사과까지 하기도 했다. 외교적 압박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일본인 납치 사실을 자백받고 총리가 직접 나서 납북자 귀국까지 성사시킨 일본 정부 얘기는 우리 납북자 가족들에겐 꿈 같은 일이다.

    최씨는 3일 부인과 헤어지며 “나도 데리고 가라”고 통곡했고, 부인은 “(남편을) 간신히 탈출시켰는데 정부는 왜 안 도와주느냐”며 울부짖었다. 언젠가 이 피맺힌 국민들의 한이 정부청사에 철퇴로 떨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