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가 쓴 '이상한 공동성명'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달 28일부터 어제까지 2박3일간 금강산에서 '남북언론인 통일토론회'가 열렸다. 온정리 문화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남측에서 115명, 북측에서는 6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연합뉴스는 11월 29일 '남북한 언론인들은 금강산에서 토론회를 갖고 공동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이상한 것은 공동성명의 내용이다. '남과 북의 언론인들은 6.15시대 대변자로서 무거운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고 해놓고 네 가지를 내세웠다.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데 앞장선다, 민족문제에 대한 간섭과 전쟁 위협을 단호히 반대 배격한다, 민족분열적 보도를 배격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방향에서 공정하게 보도한다, 남북 언론인들의 공동 협력사업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남북 경제협력 관계자나 무슨 관광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사업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최일선에서 민감한 현안들과 맞닥뜨리면서 거듭거듭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이 모여 터놓고 말해 보자는 자리였다. 그런 토론 끝에 내놓은 공동성명에 어떻게 핵무기 문제가 단 한 글자도 언급되지 않을 수 있을까. 체제가 다른 북측의 기자들은 어쩔 수 없었다 치자. 115명이나 되는 남측 기자들은 핵이 빠진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데 모두 흔쾌히 동의한 것일까.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이번 토론회는 1945년 10월 전조선기자대회 이후 61년 만에 열린 것이어서 의미가 무척 크다고 한다. 비슷한 의미를 띤 행사가 지난 10월 30일 같은 금강산에서 열렸다. 남북 문인 80여 명이 참석한 '6.15 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이었다.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발표한 이후 열린 행사여서 남측 작가들은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남측은 사전에 배포한 보도자료에 '행사에 임하는 남측협회 의견'을 넣어 북핵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전반핵은 작가들의 오랜 슬로건이었다. 한반도 비핵화는 우리 민족의 실존적 운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북은 추가 핵실험을 자제하고 6자회담에 즉시 복귀하며 미국은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해야 한다'는 문구가 그것이다.

    심지어 민주노동당 대표단도 평양을 방문 중이던 11월 1일 북한의 조선사회민주당 대표단에 북한 핵실험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민노당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번 남북언론인 토론회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토(討)하고 론(論)한 것일까. 핵문제가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한가한 사안이란 말인가.

    의문의 한 자락은 토론회를 주도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일용 상임대표(한국기자협회 회장)의 말을 들어보면 풀린다. 기자협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토론회에 참석한 정 대표는 "평화 공존 대신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침략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제국주의 국가가 자주 평화통일 달성의 장애물"이라며 "패권국가와 추종국들이 한반도 비핵화만 요구하기보다는 핵확산금지조약에 나와 있는 대로 핵 보유국들이 핵 군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만 요구하기보다는'이라니. 뜯어볼수록 참 으스스한 뜻이 담긴 말이다.

    쓸데없이 반북(反北)정서만 부추기는 보도에는 나도 반대한다. 혹자는 이 칼럼이 공동성명에 나와 있는 '민족분열적 보도'에 해당한다고 탓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생각해 보라. 북한 핵무기는 남북 간 여러 현안 중 하나로 취급될 문제가 아니다. 그 자체로 민족 생존에 결정적 위협이기에 완전한 폐기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사안이다. 한반도 현대사는 이미 '10월 9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 상태다. 핵을 보유한 북한 앞에서 6.15 공동선언 운운하는 일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가식이다. 지금은 '6.15 시대'가 아니라 '10월 9일 이후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