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초·중·고교 시험을 오픈북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하자 일부 학생과 교사들 사이에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픈북 시험'은 학생들이 시험을 볼 때 교과서를 참고하면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한 교육 제도다.
앞서 조희연 교육감은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학교 시험을 오픈 북으로 치르면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평가혁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오픈 북 시험 도입을 포함해 과정중심 평가, 서술·논술형 평가 등 다양한 대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중학생들의 경우 만약 오픈북 시스템이 도입되면 현재의 절대평가 시스템만으로 학업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정OO(16) 군은 "현재까지는 중간·기말고사 성적표에서 과목별 점수와 총계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오픈북이 도입되면 앞으로는 과목별 점수도 큰 의미가 없게 될 것"이라며 "이는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OO(16·여) 양은 "앞으로 책을 보면서 시험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전체적으로 시험 점수가 올라가니까 분별력이 없어지게 돼 몇등인지 확인하는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1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중학교를 직접 찾아 '오픈북 시험에 대해 찬반 여부'를 학생들에게 물어본 결과 대다수가 "시험이 쉬워질 것 같다"는 이유로 찬성 의견을 냈다.
하지만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의 의견은 달랐다. 상위권 학생들은 "누구나 점수를 잘 받을 수 있게 되면 자신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라며 오픈북 도입 반대 의사를 밝혔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오픈북을 도입하더라도 기존의 평가방식과 병행해서 이뤄져야 학력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의 정 모(26·여) 교사는 "초등학교에서 오픈북 시험을 실시하게 되면 학습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100점을 맞을 수 있다"면서 "책을 보면서 기계적으로 답을 찾게 되면 초등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익히고 외워야할 최소한의 지식조차 배울 기회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단원평가(40분)의 경우, 한 단원당 시험범위 분량이 16페이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오픈북을 실시하게 되면 고득점을 받기 쉽다는 얘기다.
대학교에서 실시하는 오픈북 시험과는 분량(1,000p)과 내용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있어 사안을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 교사는 이어 "특히 초등학교 학생들은 주도적인 학습 의지가 부족해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해 질 것으로, 모든 시험에 오픈북을 도입하는 건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교육개발원 서예원 연구위원은 "일부에서는 암기식 교육을 비판하고 창의적인 교육이 전 세계적인 교육 방향이라고 주장하는데 오도가 되면 안 된다"면서 "오픈북 시험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발표가 안 돼서 모르지만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을 모아둔 교과서만큼은 체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픈북 시스템, 토론식 수업, 발표식 수업 등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풍부한 재료와 소스를 학생들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 기초지식의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