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의혹도 제기...이 부회장 혐의 입증엔 실패
  • 2015년 6월2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다목적홀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 2015년 6월2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다목적홀에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21일 오전 속개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등 6차 공판에서, 박영수 특검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감사원의 제재가 변경된 사실, 제약업계 공통의 현안 중 하나였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적용배제 조치 등을 언급하면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정부를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특검은 이날 서증조사 도중 ‘깨알 같은 로비’라는 표현을 오전에만 3차례나 사용하면서, 삼성 측이 미래전략실을 동원해 정부에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였고, 이 모든 과정은 그룹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과정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도 특검은 메르스 사태 당시 감사원 출신 삼성증권 임원이 장충기 피고인(전 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화평법’ 개정내용 등을 설명하면서, 삼성 측의 로비 사실을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췄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 채 ‘그럴 것으로 보인다’라는 수준의 추론을 제기하는데 그쳤다.

    오히려 특검은 ‘화평법’ 개정으로 이익을 본 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뿐만이 아니라 국내 모든 제약업계”라는 변호인 측 반론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등 허점을 노출했다.

    특검은, 삼성이 감사원 출신 공무원을 고문으로 영입해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감사원의 회의 상황 등을 파악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지만, 서증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정부의 행정처분 변경은 로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김앤장 등 로펌의 의견을 반영한 정부의 자발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재용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입증하기는커녕, 이 피고인이 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청탁했다는, 특검 공소사실의 신뢰도에 흠집을 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 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에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反기업 성향이 강한 좌파 경제학자인 김상조 교수의 발언 등을 인용해 ‘삼성의 로비’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 김진동 부장판사)는, 특검 측에 “계속 말하지만, 입증취지나 증거 이해하는데 필요한 전반적 진술을 하는 건 괜찮은데, 증거조사와 관계없는 '김상조 교수 발언 내용' 등은 부적절하다. 가급적 개입 안하려고 말 안했는데 지금 짚고 넘어간다”며, 서증조사와 무관한 근거 없는 의혹제기나 예단 및 추론의 자제를 당부했다.

    특검은 이날 박OO 전 삼성증권 고문에 대한 참고인 진술조서를 바탕으로, 삼성이 정부를 상대로 ‘깨알 같은 로비’를 펼쳤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정부에 대한 삼성의 청탁은 점점 대담한 모양을 띠고 있다”며, 감사원 출신 박 고문을 대정부 로비창구로 이용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특검은 지난 공판에 이어 다시 한 번 자신들이 파악한 미래전략실의 업무를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미전실은 삼성그룹 전 계열사를 ‘컨트롤’했으며, 회장 명령에 따라 움직인 ‘커튼 뒤에 숨어 있는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특검 측은 박 고문의 진술조서를 근거로,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대정부 로비를 위한 별도의 팀을 구성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 선에서 해결이 안 되면 장충기 사장이 안종범 경제수석을, 이 보다 더 높은 레벨이 필요하면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는 라인을 가동했다. 삼성은 레벨에 맞춰 밀착 로비를 했다.”

    특검은 박 고문이 장충기 전 사장에게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소개하면서 다시 한 번 “깨알 같은 로비를 했다”고 했다. 이어 특검은 “실무선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미전실이 총 동원되는 거겠죠?”라며, 삼성이 로비를 한 사실을 기정사실화했다.

    특검이 이날 공개한 문자메시지는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감사위원회 회의 결과, 전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조치하도록 의결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고문은 감사원 국장을 만나, 감사시기를 늦춰 줄 것을 부탁한 사실도 문자메시지로 전했다. 박 고문은 ‘내 입장을 고려해서 감염병관리법 위반에서 한 단계 낮춰주기로 했다’면서, 본인의 ‘노력’을 생색내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 2015년 6월15일 메르스 사태로 병동 폐쇄에 들어간 삼성서울병원의 모습.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2015년 6월15일 메르스 사태로 병동 폐쇄에 들어간 삼성서울병원의 모습.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특검이 공개한 진술조서에 따르면, 박 고문은 금감원, 감사원 고위 관계자와 식사약속을 잡고, 이들에게 휴대폰을 ‘선물’로 전한 사실을 문자메시지로 남기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근거로 특검은 거듭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통해 정부를 상대로 깨알 같은 로비를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밝힌 박 고문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특검은 여전히 실체가 없는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변호인단은 지난 기일에 이어 이번에도 특검이 공개한 진술조서를 역인용해 반박에 나섰다.

    우선 변호인단은, 박 고문이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감사원의 제재를 한 단계 낮췄다는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박 고문이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용을 과장한 것”이란 진술을 인용하면서, 특검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은 박 고문의 다른 진술을 근거로 특검의 로비 주장을 일축했다.

    변호인단은 “감사위원회에서 전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의결된 사안을 (이보다 경미한) 의료법 위반으로 바꾼 거 아니냐는 특검 측 질문에 박 고문은, ‘그건 불가능하다’는 답을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와 관련된 박 고문의 진술.

    “감사원 의결 사항을 변경하려면 다시 감사위원회를 개최해서 의결을 해야 한다. 불가능하다. 전염병예방법 위반 의결을 의료법 위반으로 한 단계 낮췄다고 한 것은, 고문계약 만료시점을 앞두고 장충기 사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 것.”

    박 고문은 진술을 통해 당시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감사원의 제재처분이 변경된 과정도 밝히고 있다.

    “감사원이 로펌 김앤장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그렇게 결정한 것 같다. 장충기 사장이 감사원 절차를 잘 몰라서, 내가 생색을 내려고 허위문자를 보냈다.”

    변호인 측은 “미래전략실 이OO 팀장이 당초 박 고문에게 요구한 것은 ‘감사원이 오해하지 않도록 가교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며, “특검은 이런 진술을 두고 불법적 로비라고 주장하는데, 이걸 어떻게 로비라고 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변호인 측은 “박 고문이 고문계약을 앞두고 장충기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 정황은 더 있다“면서, ”박 고문은 감사원 관계자에게 휴대폰 신상품을 선물로 줬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사실은 못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고문은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 위해 실제로 선물을 전달한 것처럼 문자를 보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된 특검 측의 로비 주장은,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과의 독대 이후,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감사 실시를 지시한 사실만 봐도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독대 이후 오히려 청와대에서 삼성병원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라고 했다.

    이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거나 삼성병원이 특혜를 입은 사실이 없다는 반증이다.”

    변호인 측은, 환경부의 ‘화평법 적용 배제’ 조치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특혜로 판단한 특검 측 주장도, 사실관계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특검 측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의약품 원료물질에 대한 화평법 적용 배제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제약업계에 동일한 이익을 안겨줬다는 사실은, 식약처 담당 서기관의 진술조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식약처 C서기관은, 화평법 적용을 배제해 달라고 요청한 업체가 어디냐는 특검 측 질문에 “화학물질을 이용해서 원료의약품을 제조하는 업체와 이들이 속한 단체”라고 답했다.

    C서기관은 ‘식약처가 삼성바이오로직스로부터 화평법에 대한 애로사항을 듣고 환경부와 협의해, 삼성이 쓰는 원료의약품 제조용 물질에 대한 적용을 배제했고, 결국 삼성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화평법 관련 이득 본 업체는 삼성만이 아니라, 원료의약품 제조업체들이 전반적으로 혜택을 봤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환경부와 삼성바이오로직스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유는 “안종범 수첩에 ‘글로벌 제약회사 유지’ 등 이 회사를 언급한 부분이 수차례 나오고, 수첩 말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이름이 적시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검은 식약처나 환경부를 압수수색했다면 로비과정이 드러났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2011년 5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플랜트 기공식 당시 모습. ⓒ 사진 뉴시스
    ▲ 2011년 5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플랜트 기공식 당시 모습. ⓒ 사진 뉴시스


    변호인단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특검의 로비 의혹은 근거 없는 추론에 불과하다며, “특검은 삼성의 청탁이 갈수록 대담해 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온 건 아무것도 없이 저렇게 추측을 한다”고 꼬집었다.

    변호인 측은, “특검은 환경부 장관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방문한 것도 문제 삼는데, 매년 환경부 소관 업무로 현장 방문 일정이 잡혀 있었다”며, “장관이 회사를 방문해서 과연 무슨 혜택을 입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의약품 원료 물질에 대한 화평법 적용 배제와 관련해서도, C서기관의 진술조서를 인용해, 특검 측 주장을 재반박했다.

    “업체들은 식약처에 애로사항 해소를 요청했고, 이런 민원은 2015년 1월과 2월, 같은해 5월에도 있었으며, 5월 업체 CEO간담회에서는 의약품 제조 원료물질에 대해선 화평법 아닌 약사법 적용을 요청한 바 있다.

    우리 식약처는 이런 업계 건의가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고,  그래서 그해 6월부터 환경부와 협의를 거쳤다.”

    변호인 측은, “SK등 제약업체들이 전반적으로 혜택을 봤다”는 C서기관의 진술을 인용하면서, “화평법 배제는 제약업계의 공통 민원이었으며, 진술 어디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만을 위한 내용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