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에 이 신문 홍찬식 논설위원이 쓴 '세상 뒤집어지는 재미 끝내줘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스페인 축구가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자 온 스페인 국민이 열광에 휩싸였다는 소식이다. 이런 열기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4강에 올랐을 때 우리 국민이 느꼈던 집단적 희열과 흡사하다. 스페인 축구는 큰 대회만 나가면 힘을 못 쓰고 번번이 중도 탈락해 왔다. 이번 승리가 44년 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고 하니 스페인 국민의 ‘억눌렸던 욕망’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촛불집회의 문화코드, 권위전복

    2002년 한국의 열광 역시 핵심은 ‘전복(顚覆)의례’적 내용에 있었다. 전복의례란 축제를 벌일 때 기존 질서가 잠시 뒤바뀌도록 연출하는 것이다. 축제 행사에서 왕이 평민 역할을 하고 평민이 왕 역할을 해보는 식이다. 학수고대해온 축제가 막이 오르고 전복의례까지 더해지면 짜릿한 해방감은 절정에 오른다. 월드컵에서 16강에도 오르지 못했던 한국 축구가 연전연승하자 열기는 거센 불길처럼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와 문화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2002년 못지않은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다. 이념 대결과 권력 투쟁, 먹는 것에 대한 공포 등 외형적으로 드러난 원인들을 잠시 걷어내면 그 안에는 한국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여러 문화적 코드가 들어 있다. 전복의례는 그중 한 축을 이룬다.

    일부 방송의 과장 보도가 계기가 되어 거리로 나온 순수한 민심들은 ‘미친 소 너나 먹어’라고 외치며 대통령을 욕하는 시위현장에서 기존의 권위와 체제가 뒤집히는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평소 접근이 차단되어 있는 광화문의 넓은 차도를 걷는 가족 단위 참가자를 보며 ‘마치 축제와 같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일정 부분 진실을 반영한다.

    뒤집어 보면 삶이 힘들고 팍팍한 사람과 억눌린 집단이 주변에 많다는 얘기다. 더구나 2002년 열기를 통해 한국인은 ‘즐거움’과 ‘재미’라는 삶의 가치에 눈을 떴다. 책이든 TV드라마든 재미가 있어야 보고 연애도 유머 있는 사람이 잘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정반대로 딱딱하고 따분한 근면과 성실의 이미지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고집스러운 인상이 강하고 집권 이후 국민에게 이렇다 할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이런 실망감은 촛불집회에 상당수 사람이 모여들도록 만든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재미’는 촛불집회가 상징하는 또 다른 문화적 키워드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재미’ 추구는 과도한 느낌이 있다. 요즘 제작되는 한국 영화는 한 편에 2500컷으로 구성된다. 2000년만 해도 한국 영화는 800컷에서 1000컷 정도였으니 2, 3배가 빨라졌다. 할리우드 영화도 2000컷에 그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영화가 한국 영화다. 컷이 늘어나는 이유는 한국 관객들이 속도감을 원하기 때문이다. 눈이 현란해야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그 욕망이 어디서 멈출지 알 수 없다. 재미 못지않게 근면이라는 덕목도 우리의 생존에 필수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다. 촛불시위에는 이런 요소에다 2002년 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긴 ‘참여’ ‘국가 자존심’ 같은 문화적 코드들이 결합된 상태다.

    축제는 축제로 그쳐야

    월드컵처럼 한바탕 놀고 끝내는 일회성 축제라면 문제가 없지만 일부 세력이 정치적 이념적 의도를 갖고 끌고 가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염된 축제는 요즘 과격시위처럼 위험한 파괴와 혼란의 장소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인류 역사에서 축제는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평안과 단합을 위한 행사였다. 잠시 일상을 허문 공간에서 이뤄졌을 뿐, 기존 규범은 존중됐다. 그래서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촛불집회도 성난 민심을 표출하는 축제의 장(場)이고 어느 정도 목적이 이뤄졌다면 이젠 끝내야 한다. 삶의 기틀까지 허물 수는 없다. 세상에 어떤 나라도 두 달 넘게 축제로 밤을 새우는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