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의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한다’는 조항과 관련된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정상회담 공동선언답지 않은 ‘3자 또는 4자’라는 비정상적 표현이 결국 중국의 반발을 불러왔다. 청와대 대변인이 “중국은 빠질 수도, 포함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중국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중국은 엄연히 미·북과 함께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이의 변경에 관한 선언이 중국을 배제하고 이뤄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주한 중국대사관에 청와대 대변인 발언의 진의 파악을 지시했다고 한다. 중국의 반발은 북핵 6자회담의 앞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다.

    또 엊그제 청와대 대변인은 ‘종전선언을 위한 정상회담이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에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추진하되, 임기를 염두에 두지는 않겠다”고 말해 또 한번 소동이 일었다. ‘임기 중 추진’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들리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핵 6자회담의 일정은 12월 31일까지 북핵 시설 불능화와 핵물질 신고를 마치도록 돼 있다. 북한이 이에 성실하게 응한다면 내년부터는 북한이 신고한 핵물질과 이미 만든 핵폭탄을 폐기하는 최후의 줄다리기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임기 중에 종전 선언을 위한 3자나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한다고 하니, 그렇다면 북핵 포기 전(前)에 정상회담 쇼부터 먼저 해보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 임기 중 종전 선언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송민순 외교부장관이 “(4개국 정상이) 종전 협상 개시 선언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중의 정상과 남북한 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여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협상의 시작을 선언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결국 하루 만에 천영우 6자회담 수석대표가 “협상 개시 선언은 장관급에서 하고 서명은 정상들이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6·25 전쟁의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중국의 정상들이 한반도에 모여 완전한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급하게 서둘러 북핵을 건너뛴 채 ‘가짜 평화’ 쇼를 벌일 생각은 그만둬야 한다. 되지도 않을 일에 주변국 반발이나 사는 것도 문제이고, 또 그런 무리를 해서 나라에 무슨 출혈(出血)을 불러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