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계약업체도 가짜" 美 투자사, 中드론 '이항' 실체 폭로… 주가 62% 대폭락文정부-서울시 "드론택시 실용화" 한강서 시연 행사… 국내 투자자 6000억원 물려
  • ▲ 美투자정보업체 '울프팩 리서치'가 직접 찾아간 '이항' 본사 공장 내부.
    ▲ 美투자정보업체 '울프팩 리서치'가 직접 찾아간 '이항' 본사 공장 내부. "대부분의 공간이 이런 모습"이라고 리서치 측은 주장했다. ⓒ울프팩 리서치 보고서 캡쳐.
    중국이 자랑하는 ‘드론택시’업체 ‘이항(Ehang)’의 모든 것이 사기였다는 투자정보보고서가 나왔다. 이 소식에 ‘이항’의 주가는 62% 폭락했다. 

    ‘이항’의 ‘드론택시’는 지난해 11월 문재인정부와 서울시가 2025년까지 ‘도심항공교통(UAM)’을 실용화하겠다며 가진 행사에 등장했다. ‘서학개미’로 불리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현재 6000억원 상당의 ‘이항’ 주식을 보유한 상태다.

    울프팩리서치 “본사 가보니 설비 없고, 일하는 사람도 안 보여”

    미국 투자정보업체 ‘울프팩리서치’는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이항: 주가 띄우기의 결말은 폭망(EHang: A Stock Promotion Destined to Crash and Burn)”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울프팩리서치는 보고서에서 “우리는 나스닥 상장기업 이항이 그동안 가짜 매출을 기반으로 수익을 대폭 조작해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믿는다”며 “이 회사는 자율비행드론 등 자사 제품부터 제조, 수익, 협력관계, 드론 공유 서비스를 대상으로 한 각국의 상업용 승인까지 거짓말로 이야기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울프팩리서치는 중국 광저우 소재 이항 본사를 직접 찾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이 보고서를 썼다고 밝혔다. 이들이 찾아간 이항 본사의 모습은 조비항공(Joby aviation) 등 다른 드론택시업체와 전혀 달랐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낮에 공장에 들어갔지만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드론택시를 생산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배터리 등 주요 부품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빈 공간도 많았다.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한다는 핵심시설에는 설비도, 사람도 없었다. 

    “공장을 20분 동안 돌아다녔지만 일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고 밝힌 보고서는 “조비항공과 대조되는 이항 본사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화단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며 공장을 지키는 경비원 한 명이었다”고 전했다.

    이항, 5000억원 상당의 무인기(UAV) 공급계약도 허위 가능성

    이항은 비행허가와 관련해서도 거짓말을 했다고 울프팩리서치는 지적했다. 이항은 해외에 배포한 영문자료에서 “중국에서 드론택시의 상업적 사용승인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국내용 중문자료에서는 “미국·캐나다·스페인 등에서 상업적 사용승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항’의 드론택시는 세계 어디서도 상업적 사용승인을 받은 적이 없다.

    보고서는 또 이항의 주요 매출처도 유령업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항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상하이 소재 ‘쿤샹’이라는 기업은 2019년 10월 이항에 5000억원 상당의 무인기(UAV)를 발주했다. 이항이 나스닥에 기업공개(IPO)를 하기 두 달 전이었다. 

    그런데 울프팩리서치 관계자가 쿤샹 본사를 찾아가 보니 실체가 없었다. 소재지 3곳 가운데 2곳이 가짜였다. 쿤샹 홈페이지의 본사 주소는 호텔이었다. 다른 한 곳의 주소는 건물 13층이라고 밝혔지만, 그 건물은 11층짜리였다.
  • ▲ 지난해 11월 11일 '도심항공교통(UAM)' 홍보행사에서 중국산 '이항 216' 드론택시를 살펴보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권창회 기자.
    ▲ 지난해 11월 11일 '도심항공교통(UAM)' 홍보행사에서 중국산 '이항 216' 드론택시를 살펴보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권창회 기자.
    울프팩리서치 측은 쿤샹이 이항의 주가조작에 가담한 세력이 만든 유령업체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쿤샹은 이항과 납품계약하기 9일 전 설립한 업체인데다 자본금도 140만 달러(약 15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이런 업체가 5000억원짜리 발주를 넣었다. 

    쿤샹은 또 이항의 나스닥 상장 직전 1400만 달러(약 155억원)라는 거액을 투자했다고 울프팩리서치는 지적했다. “기업공개(IPO) 사전투자를 통해 쿤샹이 벌어들인 돈은 16일 종가 기준으로 6800만 달러(약 753억원)에 달한다”고 울프팩리서치는 분석했다. 

    ‘이항’ 주식에 6000억원 물린 ‘서학개미’… 文정부와 서울시도 한몫 했나

    울프팩리서치가 보고서를 내놓자 이날 이항 주가는 폭락했다. 2019년 12월 나스닥에 상장된 이항은 지난해 11월까지 10달러(약 1만1000원) 안팎의 주가를 유지하다 지난해 12월 하순부터 증가세를 보이더니 올 들어 폭등했다. 지난 2월12일에는 장중 129.80달러(약 14만3600원)까지 뛰었다. 

    하지만 울프팩리서치의 보고서가 공개된 16일 주가는 77.79달러(약 8만6100원) 떨어진 46.30달러(약 5만1200원, 전일 종가 대비 62.69% 하락)로 마감했다. 보고서 내용이 지금은 더 널리 퍼져 17일 주가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언론은 이항이 ‘서학개미’가 투자한 주식 가운데 아홉 번째라는 점을 우려했다. 한국증권예탁원 자료에 따르면, 16일 기준 한국인이 보유한 이항 주식의 가치는 5억4948만 달러(약 6082억7400만원)에 달한다. 국내언론은 ‘서학개미’들이 이항에 투자한 원인으로 문재인정부와 서울시의 ‘도심항공교통(UAM)’ 홍보행사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주목했다.

    국산 비행체 2028년 개발된다는데… UAM 실용화 2025년으로 잡은 文정부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서울 여의도 한강변에서 ‘도심항공교통 실증행사’를 가졌다. “2025년까지 드론택시 같은 ’도심항공교통을 실용화하겠다”고 밝힌 국토부와 서울시는 이항의 드론택시 ‘이항216’을 가져와 시연을 했다. 

    이날 '이항216'은 고도 50m로 떠올라 여의도 한강공원, 서강대교, 밤섬, 마포대교 일대 1.8km를 두 바퀴 돌았다.

    당시 한화 등 국내기업들은 2028년까지 도심항공교통 기체를 개발한다고 밝혀, 2025년부터 2028년 사이에 ‘이항216’과 같은 중국산 드론택시 운항이 점쳐졌다. 여기에 고 박원순 시장 시절 4억원을 들여 ‘이항216’을 구매한 서울시가 2021년부터 이를 대구·제주 등에도 보내 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이항에 관심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이항 측이 세계 곳곳에서 시험비행만 했고, 2017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시작한다는 드론택시 서비스가 무산된 사실, 이후로도 서비스가 안 되는 사실을 지적하며 주의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주목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