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5년에 3728건, 朴 4년에 3667건… 상위법 배치, 국회 패싱, 위헌 소지, 졸속 논란
  • ▲ 문재인 정부 출범(2017년5월10일) 이후 공포된 대통령령 건수가 2000건을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공=청와대
    ▲ 문재인 정부 출범(2017년5월10일) 이후 공포된 대통령령 건수가 2000건을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공=청와대
    문재인 정부가 국회 입법을 거치지 않은 '정부안'을 통해 주요 정책을 시행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른바 '시행령 통치'다. 문제는 정부안이 상위법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주요 사건 수사 상황을 법무부장관에게 사전 보고하는 법무부령 개정이 대표적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시행령 통치'는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안을 통한 정책 추진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를 무시하고, 국책 방향에 맞는 정책 시행을 위해 정부가 '졸속안'을 내놓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출범(2017년 5월10일) 이후 시행령 등을 꾸준히 내놓았다. 조국(54) 전 법무부장관 시절 검찰개혁안의 근거규정도 대통령령인 시행령과 법무부령 등 시행규칙이었다.

    일례로 최근 법무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개혁안이 있다. 법무부는 지난 8일 △검찰이 주요 사건 수사 상황을 법무부장관에게 보고 △직접수사부서 축소·폐지 등 내용의 개혁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 내용의 근거규정은 각각 '검찰사무보고규칙'(법무부령)과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이다.

    文정부 공포한 대통령령 2053건… 2년여 만에 前 정부 전체의 '절반' 넘어

    그렇다면 현재 임기 절반(2017년 5월10일~2022년 5월10일)을 넘긴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몇 건의 대통령령 등 시행령을 공포했을까. 현 정부의 시행령 건수는 이미 임기를 다 채운 전 정권의 절반 이상을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정부의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공포 건수만 2000건이 넘는다.

    지난 15일 법제처가 본지에 보내온 '2008년 이후 정부별 법률·대통령령·총리령·부령 심사 및 공포 건수' 자료에 따르면, 임기 절반을 지난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령 공포 건수는 2053건에 달했다. 총리령은 172건, 부령은 1610건이었다. 2017년 5월10일~2019년 9월27일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다. 박근혜 정부(2013년 2월25일~2017년 5월9일)의 경우, 공포된 대통령령 3667건이다. 이명박 정부(2008년 2월25일~2013년 2월24일)가 공포한 대통령령은 3728건이다.

    문제는 현 정권이 밀어붙이는 시행령 등이 상위법에 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59·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도 법무부 개혁안을 두고 '현행법 배치'라는 의견을 드러냈다고 한다. 윤 총장은 8일 보고된 개혁안에 대해 "법무부가 현행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대검 간부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총장이 '현행법 배치'라고 지목한 부분은 '검찰사무보고규칙' 개정안이다. 이 규칙은 법무부령이다. 상위 규정인 검찰청법을 따라야 한다.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했다.

    시행령 등이 상위 규정과 충돌하는 상황은 다른 부처에서도 발견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유아교육법 시행령, 최저임금법 시행령 등이 대표 사례다.

    가장 논란이 된 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이다. 이 시행령은 5월7일 개정돼 지난 8일 시행됐다. 주요 내용은 ①경제사범 취업제한대상 기업체'는 ②5억원 이상 상당의 사기·공갈·횡령·배임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경우인데 ③이 기업체에 '범죄로 인해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까지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즉, 횡령과 같은 범죄를 저질러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면, 그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상위 규정인 '헌법'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헌법 제126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헌법이 규정하는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교육분야에서는 유아교육법 시행령이 논란이다. 이 시행령에는 사립유치원의 에듀파인 회계 시스템 사용 의무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는 헌법 23조가 규정한 재산권 침해라는 지적이다.

    윤석열 "법무부, 현행법 배치된 일 추진"… 법조계 "시행령, 위헌 소지 있어"

    전삼현 숭실대(법학과) 교수는 "헌법에 법률 위임 원칙이 있어, 국민 권리를 제한하는 시행령 등을 하려면 법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국회 합의를 통해 법을 못 바꾸니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통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의 양윤숙 변호사 역시 "법무부 공보훈령은 국민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경시하고 인권보호만 강조돼 있다"며 "이렇게 훈령 형식을 통해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에 필수불가결한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피의자의 인권이나 국민의 알 권리 문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법률로 규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시행령을 통해 도입된 정책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무력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서초동의 서모 변호사는 "시행령 공포의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 얼마든지 (시행령 내용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검찰개혁안과 같이 정부 방향을 밀어붙이기 위해 졸속으로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