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현 ↔ 아베 정부 법적 분쟁 가능성… "류큐왕국 재건하자" 주장까지 나와
  • ▲ 지난해 12월 후텐마 기지 이전 예정지역인 헤노코 앞바다에서 시위 중인 오키나와 주민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해 12월 후텐마 기지 이전 예정지역인 헤노코 앞바다에서 시위 중인 오키나와 주민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키나와 주민의 반대에도 현내에 미군기지를 짓는 사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20년 넘게 일본 중앙정부와 미국을 상대로 '미군 철수'를 외쳐온 오키나와 주민의 반발이 더욱 격화하리라는 전망이다.

    오키나와 주민 72% “미군기지 모두 나가야”

    오키나와현은 기노완시 중심에 있는 후텐마 미 해병대 비행기지를 북동쪽으로 40km 떨어진 나호시 헤노코 지역 매립지로 옮기는 문제를 놓고 지난 24일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오키나와현 전체 유권자 115만여 명 가운데 52.5%가 투표에 참여했다. 2018년 10월 현지사 선거 때 투표율 63.2%보다는 낮았지만, 주민투표로는 적지 않은 수치다.

    NHK에 따르면, 투표 결과 미군기지 이전건설 반대가 43만4273표(72%), 찬성이 11만4933표(19%), “어느 쪽도 아니다”라는 응답이 5만2682표(9%) 나왔다. 참고로, 오키나와 주민들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매립지로 이전하는 것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오키나와에 있는 주일미군 기지 전체의 철수를 요구한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한 땅에 주일미군 시설의 70% 이상, 4만7000여 주일미군 가운데 절반 이상이 머무르고 있다며 중앙정부와 미국 측에 병력 철수를 요구했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는 유권자 25% 이상이 내놓은 의견이다. 오키나와 현당국은 조례에 따라 관계 당사자에게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 현지사는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반대' 의견을 아베 총리와 미국정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그러나 25일 후텐마 기지 이전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키나와 주민투표 결과와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일본과 미국이 후텐마 기지 이전에 합의한 지 20년도 넘어 더는 미룰 수 없다”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오키나와 주민들과 대화했고, 앞으로도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보도되자 오키나와 현정부는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NHK에 따르면, 다마키 지사는 미일 정부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단념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NHK는 오키나와현과 아베 정부 간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 2015년 4월 미군기지 이전문제에 항의하기 위해 도쿄 총리관저를 찾은 오나가 다케시 당시 오키나와현 지사(왼쪽)와 그를 맞이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년 4월 미군기지 이전문제에 항의하기 위해 도쿄 총리관저를 찾은 오나가 다케시 당시 오키나와현 지사(왼쪽)와 그를 맞이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키나와 ‘미군 철수’운동 구심점은 현지사들

    오키나와 주민들이 제대로 결집해 중앙정부와 맞서 싸우도록 만든 사람은 다름아닌 현지사들이었다. 2018년 8월 췌장암으로 숨진 오나가 다케시 전 지사와 그를 승계한 다마키 현 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자민당 소속으로 오키나와현 나하시 시장을 지낸 오나가 전 지사는 2014년 11월16일 지방선거에서 ‘올 오키나와 연대체’의 지원을 받아 현지사에 당선됐다. 그는 선거 기간에 미군 철수와 일본 중앙정부와 투쟁을 외쳤다. 

    ‘올 오키나와 연대체’는 오키나와가 일본의 한 지역이 아니라 독립적인 정체성을 가진 섬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회민주당·공산당·오키나와사회대중당·국민민주당 지부, 전국노동조합총연합 지부, 교직원노동조합, 오키나와평화운동센터, 평화시민연락회 등 좌익성향 조직이 주류를 이루며 자유당 등 우익단체도 포함돼 있다.

    ‘올 오키나와 연대체’는 오나가 전 지사가 2018년 8월 췌장암으로 숨진 뒤에도 위력을 발휘해 다마키 현 지사가 당선되도록 힘을 썼다. 다마키 지사는 해병대로 일본에 주둔했던 미국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태어난 뒤 부친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미군에 대한 감정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이국적인 외모로 한때 연예인 생활을 했던 다마키 지사는 2009년 자유당 소속으로 중의원(하원에 해당) 의원에 당선, 자유당 간사장을 맡았다. 다마키 지사는 2018년 10월 현지사 보궐선거에서 “오나가 지사의 유지를 받들어 미군기지를 철수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 또한 오키나와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오나가 전 지사나 다마키 현 지사를 당선시킨 ‘올 오키나와 연대체’는 아직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민의를 대변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이들은 ‘류큐왕국 재건’을 주장하는 세력과도 맞닿아 있다. 오나가 전 지사는 선거유세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한데 뭉쳐 야마토(일본 본토 정부를 지칭)를 깨부수자”고 외치기도 했다. ‘류큐왕국 재건파’의 주장과 같다. ‘류큐왕국 재건파’는 자신들의 뿌리를 중국에서 찾는다. 일본 일각에서는 “오키나와가 아베 정부와 극한대립한다면 이곳이 친중파 소굴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 ▲ 오키나와 기노완시 중심가에 위치한 후텐마 기지.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곳을 포함해 현 내에 있는 주일미군 전부가 철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키나와 기노완시 중심가에 위치한 후텐마 기지.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곳을 포함해 현 내에 있는 주일미군 전부가 철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키나와 주민들의 미군 철수 주장과 미국의 대응

    오키나와 주민들의 미군기지 철수 요구는 1995년부터 시작됐다.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병사가 열두 살짜리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탓이었다. 미군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은 갈수록 커졌다. 이런 가운데 1996년 2월 ‘오키나와 주둔 미군 시설 및 구역에 관한 특별행동위원회(SACO)’의 최종 보고서가 나왔다. 미국과 일본은 보고서에 따라 기노완시 중심에 있는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해안에 길이 2.5km, 폭 0.7km의 매립지를 조성해 옮긴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 계획을 반기지 않았다.

    2004년에는 미 해병대 CH-53D 헬기가 오키나와국제대학 캠퍼스에 추락했다.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오키나와 주민은 더욱 늘어났다. 오키나와 정치인 가운데도 미군 철수를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미국과 일본은 거듭되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에 못이겨 2012년 4월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해외 재배치에 합의했다.

    미일 정부는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병력 1만9000여 명 가운데 9000여 명을 일본 외부로 보내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남은 병력도 2023년까지 2700여 명을 하와이에, 5000여 명을 괌에 배치하기로 했다. 당초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배치될 예정이던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도 괌 앤더슨 공군기지로 옮겼다.

    오키나와의 미 해병대 중 제31해병원정대(31st MEU)는 헤노코 매립지에 건설한 기지에 주둔할 예정이었다.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투입되는 제31해병원정대를 먼 곳에 배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오키나와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제31해병원정대는 다른 주둔지를 찾아야 할 형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