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정책 통째 넘어갈 뻔 했는데… 靑 "외국에 수사의뢰 요청하는 것 무의미"
  • ▲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이 지난 23일 워크숍을 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이 지난 23일 워크숍을 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청와대가 올해 초에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개인 이메일 계정이 도용돼 정부 부처에 "대북 정책과 관련된 내부 자료를 보내라"는 요구 메일이 발송됐다는 보도를 시인했다.

    청와대는 지난 26일에 국가안보실을 사칭한 가짜메일 사건을 의식한 듯 "두 사건을 별건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발본색원'을 천명한 지난 26일 국가안보실 사칭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해외에서 서버를 둔 경우에 해당되어서 추적이 더 이상 진행되진 않았다"고 해 온도차를 보였다.

    靑 "윤건영 상황실장 사칭 메일 발송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윤건영 상황실장을 사칭한 가짜 메일이 발송됐다고 보도한) 〈한국일보〉의 보도가 대체로 다 맞다"며 "내용을 조금 더 보완하자면 청와대 공식 메일이 아니고 개인 메일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이 일이 있고 난 다음에 윤건영 실장이 청와대 내 전산정보 책임자에 바로 신고하고 조치를 취했다"며 "그래서 전산정보 쪽에서는 일단 윤 실장의 이메일에 대해 보안을 강화했고 자체적으로 이 이메일에 대한 분석 및 추적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국내 계정 회사에 통보하면서 IP 추적을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해본 결과 해외에 서버를 둔 경우에 해당돼 추적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북정보' 요구한 사람이 있다

    청와대가 언급한 보도는 〈한국일보〉 기사다. 〈한국일보〉는 28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윤건영 실장(명의 계정 이메일)으로부터 대북 정책 관련 내부 자료를 보내 달라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며 "민감한 내용인데 정부 공식 메일이 아닌 개인 메일로 보내 달라고 해 청와대에 확인했더니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이 매체는 "청와대는 상황의 엄중함을 고려해 진상 파악에 나섰지만 계정에 접속한 인터넷 IP 주소가 해외 지역이어서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국정상황실은 '청와대 내의 작은 청와대'로 불리는 곳이다. 각종 현안의 흐름을 파악하고 사건ㆍ사고에 대한 대응 방침을 정하면서, 남북관계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하마터면 정부의 민감한 대북 정책이 통째로 넘어갈 뻔한 것"이라며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빈번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6일에는 '국가안보실' 사칭 메일

    청와대는 3일 전인 지난 26일에도 참모진을 사칭한 가짜 메일 사건으로 한차례 홍역을 앓았다. 지난 26일 한 언론사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평가와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입수했다며 단독 보도를 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국가안보실을 사칭한 가짜 메일이 외교전문가들에게 발송됐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를 청와대가 만들지 않았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저희들이 누가 이런 문서를 만들어서 유포했는지 출처를 파악 중이다"며 "그리고 가능한 조처를 다 취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다음날인 27일에도 브리핑에서 "청와대는 이 사건이 단순한 오보 차원을 넘어 언론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악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허위조작 정보가 생산·유포된 경위가 대단히 치밀한 데다 담고 있는 내용 또한 한미동맹을 깨뜨리고 이간질하려는 반국가적 행태"라고 했다.

    당시 청와대는 같은 주제로 이틀에 걸쳐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엄단할 것임을 강조했다. 국가안보실은 특성상 외부자가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인데도 버젓이 사칭하는 이메일이 발송돼 충격이 작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이번엔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의 개인 메일이 도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대북정보와 관련, 청와대가 잇단 해킹사건의 표적이 되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와대의 석연치 않은 해명

    그러나 청와대는 이번에는 강한 어조를 사용하지 않았다. 중차대한 정부 내 대북자료를 요구한 활동임에도 수사의뢰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의미를 조금 말씀드리자면 (지난 26일 국가안보실 사칭 사건과 이번 윤건영 상황실장 사칭 사건은) 성격이 조금은 다른 것 같다"며 "그때는 가짜 문서를 조작해, 해킹하거나 사칭한 이메일을 통해 이를 유포를 한 것이고, 이번 건의 경우는 자료를 보내 달라고 하는 성격"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두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지난 26일 국가안보실을 사칭한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지 않아 답변 드릴 수 없고, 외국 사이버 쪽에 수사의뢰를 요청한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이건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외국 서버를 둔 해커 소행에 대해서 추적하지 않았겠느냐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 또한 "(윤건영 실장 건에 대해서는)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다"며 "몇 사람에게 보고됐는지, 몇 사람에게까지 이메일이 돌아갔는지는 제가 파악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해킹을 한 지역이) 해외 어디로 확인되느냐는 질문에도 "해외라고만 안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렇다고 해서 청와대가 이 사건을 중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또한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종석 실장이 그래서 (지난 26일 내부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지난 26일 공직기강 해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에는 "우리는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이자 더 나아가 국민을 섬기는 공복(公僕)"이라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께 폐가 되고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 순간 사소한 잘못이 역사의 과오로 남을 수도 있다"며 "더 엄격한 자세로 일해야 한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옷깃을 여미자, 저부터 앞장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