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파이낸셜 타임즈 홍콩 주재 에디터 ‘빅터 말럿’…외국 언론인 비자 거부는 처음
  • 홍콩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언론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지난 5일 ‘홍콩자유언론(Hong Kong Free Press)’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홍콩 주재 아시아 뉴스 에디터이자 홍콩외국기자협회(FCC) 부회장인 영국인 빅터 말럿이 지난주 취업비자 연장신청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당국은 거부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지난 9월 24일 홍콩당국에 대해 해산당한, 홍콩독립을 주장하는 홍콩민족당 전 대표 앤디 찬(陳浩天)이 지난 8월 FCC에서 행한 연설이 직접 원인이다. 당시 FCC 회장 대리였던 말럿 부회장은 중국 외교부와 전현직 홍콩 행정장관이 총동원된 홍콩민족당 연설취소 압력에도 불구하고 ‘FCC는 특정 정파를 대변하지 않는다. 공산당도 FCC에서 연설할 수 있다’며 연설을 강행했다.

    이 비자연장 거부 조치는 지난 9월 30일 런던에서 열린 영국 및 홍콩 전·현직 의원이 참가한 홍콩정치행사 도중 현장에 있던 중국 CCTV 여기자가 폭력행사 혐의로 영국 경찰에 체포되자 중국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자랑하는 영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과를 요구한 지 일주일도 안 돼 발생했다. 당시 중국 여기자는 행사장에서 참석자들에게 '중국 분열주의자' '반중인사'라고 고함치며 이를 말리는 자원봉사자의 뺨을 때렸으며, 체포 직후 중국의 요구로 풀려났다.  

    홍콩민족당의 FCC 연설은 전 홍콩 총독과 전·현직 홍콩 행정장관 전원이 가세하여 논쟁을 벌여 군소 원외정당에 불과했던 홍콩민족당을 오히려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지막 홍콩 총독인 크리스 패튼 경은 당시 FCC의 조치를 옹호했다. 말럿 부회장은 연설 당일 수차례에 걸쳐 ‘오늘 연설이 FCC의 홍콩독립 지지를 의미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앤디 찬 전 홍콩민족당 대표는 당시 연설에서 “중국은 일국양제가 아닌 1帝國1制를 향하고 있다. 티베트, 위구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고문 탄압이 홍콩에서 향후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일 FCC주변은 반중 및 친중 단체가 몰려들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결국 이 연설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홍콩민족당은 9월 24일 해산 당했고, 미국 국무부와 영국 외교부는 이를 두고 일국양제 위반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홍콩 대공보는 이와 관련, FCC가 전 홍콩 총독을 인척으로 두고 있는 한 홍콩 범민주파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단체라고 보도했다. 이에 홍콩 독립파에 대해 평소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중국과 홍콩 당국이 비영리 단체인 FCC에 재제를 가할 방법이 마땅치 않자, 마침 체류기간 만기가 된 말럿 부회장의 비자 연장 신청을 거부한 것이다.

    빅터 말럿 부회장은 로이터 통신과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36년간 근무한 경력을 가진 베테랑 언론인이다. 필자는 현재 외국에 체류중인 말럿 부회장에게 비자연장 거부 조치에 대해 묻고자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영국 정부와 말럿 부회장이 속한 FCC, 파이낸셜 타임즈 홍콩 지사는 입장발표를 통해 비자연장 거부조치의 자세한 경위 설명과 거부조치 최소화를 홍콩 당국에 요구했다. 뉴욕타임즈는 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논평을 냈으며, CNN, 영국 가디언, 일본 마이니치 신문 등 세계 주요 언론이 ‘타국에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자국 내 언론인을 탄압하는 적반하장’ ’중국은 언론의 자유 개념조차 이해 못하고 있다’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홍콩에서 반중국 혹은 홍콩, 대만 독립을 지지해온 정치인이나 교수들이 입국금지를 당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최근에는 지난 8월 한 일본 시의원이 대만 독립 성향 집권여당 민진당과 교분이 있다는 이유로 홍콩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 외에 김정일의 장손이자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당한 김정남의 장남 김한솔이 홍콩 국제학교 입학을 위해 학생비자 발급을 신청했을 때도 거부당한 바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공산당에 비우호적 언론인에 대한 비자발급 거부 사례가 종종 생기지만, 홍콩에서 외국 언론인이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