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어 회견 이후 영어로 다시 같은 내용 반복하던 관행 비판했다 사과
  • 영어가 공용어인 홍콩에서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기자회견 도중 영어로 말하는 것이 시간 낭비(waste time)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3일 캐리 람 행정장관은 오전 각료회의 직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홍콩매체 RTHK 기자가 직전 나온 광동어 질의 응답을 영어로 다시 질문하자 영어로 “지금까지 광둥어로 답한 내용을 다시 (영어로) 반복해 왔다. 동시통역 시스템을 도입하면 시간낭비(waste time)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 답변했다.

    람 장관은 논란이 일자 같은 날 밤 “대정부 질문에서의 영어 사용은 중요사안이다. 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이날 오전 해당 발언이 전해지자 홍콩 매체들은 물론 정치권과 일부 친중파 의원까지 비난하고 나섰다. 홍콩기자협회는 즉시 논평을 내고 “영어 매체는 세계가 홍콩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수단이다. 람 장관의 이런 영어를 무시하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영국 통치 시절부터 의원생활을 시작한 8선의 범민주파 제임스 토(涂謹申) 의원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람 장관의 태도는 오만하다. 원어민에게 ‘원어’를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방법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친중파 거물의원인 레지나 입(葉劉淑儀) 신민당(新民黨) 주석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실수거나 피곤해서 그랬을 수는 있으나, 홍콩 공무원의 영어 사용은 waste time이 될 수 없다” 고 말했다.

    홍콩에서 영어는 기본법(헌법)에 의해 광둥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홍콩 정부의 2016년 자료에 의하면, 홍콩 인구 중 53.2%가 영어를 사용하며, 모국어 사용인구 비율은 4.3%이다. 광둥어 사용 인구는 88.9%이나 국제도시 홍콩에서는 영어만으로도 모든 생활이 가능하며, 관공서에서도 영어와 광둥어가 자연스럽게 섞여서 사용된다. 이렇게 영어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는 홍콩의 수장이 공개적으로 영어 사용을 부정하여 홍콩 사회를 잠시 혼란에 빠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