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저씨는 지독한 심술쟁이예요. 하지만 그래도 아저씨가 좋아요."

    가슴 속에 묻어둔 첫사랑의 설렘을 자극하는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가 소박하지만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으로 아련한 추억을 소환한다. 국내 초연에서는 신성록-송원근-강동호가 제르비스 역을, 제루샤 역은 이지숙, 유리아가 맡았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1912년 발표된 진 웹스터의 소설이 원작으로, 당시 '소공녀', '빨간머리 앤' 등과 함께 소녀들의 로망을 충족시킨 작품이다. 

    탁월한 글솜씨를 지닌 고아 소녀 제루샤 애벗과 그녀의 후견인이 돼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르비스 펜들턴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무엇보다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들려주는 제루샤의 재기발랄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난 28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진행된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프레콜에서 박소영 협력연출은 "오리지널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 잘 전달할 수 있게 초점을 맞췄다. 제르비스와 제루샤의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성장이야기이다"고 말했다.

  • 고아 소녀와 부잣집 도련님의 사랑이라는 흔한 설정에도 '키다리 아저씨'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건 주인공들이 지니고 있는 매력과 유머 넘치는 문체, 그 뒤에 숨겨진 진중한 메시지 때문이다.

    상류층과 종교인들의 위선, 편협함을 꼬집는 재치는 웃음과 재미를 주며 작가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제루샤의 끈기와 노력,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키다리 아저씨로부터 점점 독립해가는 성장 스토리는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

    '제루샤' 역의 유리아는 "제루샤라는 캐릭터가 1막과 2막을 거쳐 성장을 해나간다. '신데렐라' 같은 디즈니 공주가 아니다"고 강조하며 "행운 같은 작품이다. 정말 하고 싶었는데 운이 좋게 내게 왔다. 힘들지만 매번 공연할 때마다 행복하다"고 밝혔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3개의 악기로 선보여지는 서정적인 넘버는 화려한 멜로디와 기교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따뜻한 감성을 안긴다. 세계적인 작곡가 폴 고든의 아름다운 음악은 순수한 스토리텔링 자체에 중점을 뒀으며, 가사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작품의 깊이를 표현해낸다.

    주소연 음악감독은 "넘버가 30곡으로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은 편이다. 멜로디 위주로 쓰여진 곡과 연기적으로 풀어야하는 노래들이 있다. 다섯 명 배우들의 노래 스타일과 호흡이 다르다 보니 들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다. 어쿠스틱하고 섬세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원작소설의 클래식한 감성을 고스란히 무대에 담았다. 혼성 2인극이라는 독특한 구성 아래 오직 두 배우만이 무대에 등장하며, 그들이 주고받는 메시지들을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 '제르비스' 역의 신성록은 "대사와 가사 분량이 많다. 너무 안 외져서 대본을 던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행복하더라"며 2인극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단 2명이 거대한 스토리를 밀도 있게 가져가는 것 자체가 색다르다"며 "이 뮤지컬을 통해 잊고 살았던 감정을 다시 느낀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소소한 행복들을 알게 해주는 고마운 작품이다"고 덧붙였다.

    같은 역의 강동호는 "작년 12월 전역하고 첫 작품이 '쓰릴미'였는데, 본의 아니게 남자들과 2년 넘게 작업했다. 남남극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타이밍에 '키다리 아저씨' 같은 밝은 기운을 만났다. '쓰릴미'에서 남자와의 키스신은 싫은 감정을 감추고 연기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좋은 감정으로 진실되게 표현하고 있다. 행복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오래된 사진첩처럼 소중한 추억을 꺼내고 싶게 만드는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10월 3일까지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공연된다.

    [사진=뉴시스, 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