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구조 개혁...비상사태 국민통합 이룰 순회 캠페인 펼친다건국의 아버지들과 박정희 주제 토크쇼 시리즈...미주 교포포럼 성공적
  • 국민 신뢰회복 운동 20년---문무일 중앙본부 총장 인터뷰

    ‘세시봉’ 꽃남 MC “전국 200곳 ‘신뢰 콘서트’ 열겠다”

  • ▲ 국민신뢰회복 운동을 20년째 벌이고 있는 문무일(72) 총장은 "이승만대통령등 '건국의 아버지'들 정신을 살려 애국심을 키워 국민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 국민신뢰회복 운동을 20년째 벌이고 있는 문무일(72) 총장은 "이승만대통령등 '건국의 아버지'들 정신을 살려 애국심을 키워 국민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무교동의 ‘세시봉’ 시절 ‘청춘1번지’를 맡아 인기 높았던 꽃미남 MC를 기억하는가? 
60년대말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 등장과 더불어 조영남, 김세환등 한국 포크음악의 요람으로 지금도 그 리바이벌 붐이 뜨거운 ‘세시봉’은 한국최초의 젊은 문화의 발상지였다.
 가요와 코미디등 예능을 진행했던 이상벽(방송인)과 쌍벽을 이루어
당대 지성인들 문화인들을 총둥원하여 청춘문화를 이끌었던 프로그램 ‘청춘1번지’의 제작 운영자가 당시 MBC 아나운서 문무일(文武日)이다.
반세기 세월을 건너 미국에서 돌아 온 문씨는 예상밖의 놀라운 프로그램을 펼쳐 보였다.
전국 200여곳을 순회하는 대형 콘서트 개최, 통기타 세시봉 시대와 달리
이번엔 이름도 차원 높은 ‘국민신뢰회복 콘서트’---갈갈이 찢어진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 5천만의 마음을 용광로에 넣어 하나로 녹여보겠다는 국민통합 꿈이 크다.
  • ▲ 1968년 12월 뮤직홀 세시봉에서 '청춘1번지'를 진행하는 MC 문무일(당시 MBC아나운서). 1백평 남짓 뮤직홀엔 청춘남녀들이 날마다 초만원을 이루곤 했다.
    ▲ 1968년 12월 뮤직홀 세시봉에서 '청춘1번지'를 진행하는 MC 문무일(당시 MBC아나운서). 1백평 남짓 뮤직홀엔 청춘남녀들이 날마다 초만원을 이루곤 했다.
  • “한국의 위기에는 김정은보다 북한 핵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생리적으로 굳어져버린 내부 분열, 불신의 구조적 뿌리,
    바로 우리 마음속의 ‘트로이 목마’입니다. 빨리 쫓아내야지요.” 

    그가 ‘신뢰회복’ 운등을 벌인 것은 알고 보니 올해로 20년째,
    1997년 워싱턴에서 동양방송을 설립, 라디오 코리아를 운영할 때부터였다.
    교포사회의 극심한 불신풍조, 쉽게 약속하고 쉽게 약속을 깨면서도
    태연한 거짓말 사회를 바로 잡자고 혼자서 발 벗고 나섰다.
     ‘신뢰회복 국민연합’ 조직위원회를 구성, 위원장을 맡아
    ‘워싱턴 포럼’(Whashington Forum)과 ‘교포 논단’을 창안, 운영하면서
    교포사회 지도층을 조직화하여 교민들의 의식개혁 캠페인을 지금까지 이어온다. 

    여기에는 일찍부터 새마을운동에 몸을 담갔던 체험적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졸업후 MBC 아나운서가 되어 뉴스보도 앵커로 전국 새마을운동을 취재하면서
    국민 정신개혁 운동에 푹 빠져버렸던 문씨는 한때 새마을중앙본부 홍보실장으로
    도시와 농촌, 공장 새마을운동까지 현장체험과 이론의 전문가로 변했다.
    70~8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 혁명의 주력부대로 뛴 ‘조국근대화 엘리트’인 셈이다.
  • ▲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을때 국회의원 회관서 인터뷰 하는 문무일 '라디오코리아 워싱턴' 대표.(1999)
    ▲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을때 국회의원 회관서 인터뷰 하는 문무일 '라디오코리아 워싱턴' 대표.(1999)
    3년전 국내로 운동영역을 넓힌 그는 현재 ‘신뢰회복 국민연합’ 중앙본부 사무총장이다.
    “불신구조의 원흉중 하나는 공평성을 잃은 법치(法治)의 불균형 탓이 큽니다.
    따라서 국민신뢰의 회복은 지도자들의 리더십 신뢰회복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을 분석하던 문씨는 새마을 대통령 박정희의 딸 대통령에게
     “부녀 대통령을 만들어준 국민에게 보답할 뭔가 '혁명DNA'에 기대를 건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다.
    18년 집권한 아버지의 서거후 ‘인고의 18년’을 보낸 퍼스트레이디 박근혜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등장하였을 때 한걸음에 달려와 인터뷰를 계속했던 그는
     ‘신뢰회복’ 주제에 완전일체감을 교환하면서 뜻밖의 희망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2001년 2월 박근혜 의원이 부시 미국대통령 취임식 참석 겸 방미하였을 때엔
    문 총장은 그를 자택으로 초청, 교민 300여명과 함께 ‘신뢰회복 워싱턴 포럼’을 열어
    한나라당 부총재 박 의원과 다양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또한 문 총장은 그후 [비운의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의 눈물]이란
    책을 출판(2011) 보급하기도 했다.
  • ▲ 2001년 방미한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를 자택으로 초청하여 교민 300여명과 '워싱턴 포럼'을 열었던 문무일 총장.
    ▲ 2001년 방미한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를 자택으로 초청하여 교민 300여명과 '워싱턴 포럼'을 열었던 문무일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