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저널 그날'에서 동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했던 '해상왕' 장보고의 죽음이 그려진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동아시아 무역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 장보고가 신라 왕실의 청부를 받은 염장의 손에 살해당한 그 날을 추적한다.

    828년, 장보고는 신라 흥덕왕을 찾아간다. 한반도 서남해안 일대를 기반으로 무역 사업을 실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흥덕왕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당시 신라의 골칫거리였던 해적을 소탕하겠다는 것이다.
  • 장보고는 신라 왕실의 허가를 받고 청해진을 설치한 뒤, 1만 군사를 기반으로 해적을 격퇴하고, 청해진을 거점으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쳤다. 당시 신라는 해외 사치품 금지령이 내려질 정도로 청해진을 통해 들어온 수입품이 유행하게 된다.

    청해진은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됐고,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 네트워크가 탄생하게 됐다. 장보고는 동아시아 바다를 장악한 '해상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장보고의 운명을 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 837년, 신라의 아찬 김우징이 장보고를 찾아왔다. 그는 왕위쟁탈전에서 아버지를 잃고 위협을 느낀 후 청해진으로 피신을 온 것. 김우징은 신라 왕실의 정적이었다. 때문에 그와 손잡는 것은 신라 왕실과 적이 된다는 것이었지만 장보고는 김우징을 받아들였다.

    김우징은 청해진에서 기회를 엿봤고, 결국 왕권 도전을 위해 장보고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장보고는 5000의 군사를 동원해 김우징을 도왔고, 김우징은 신라 제45대 신무왕으로 즉위했다. 장보고는 신라 왕실의 측근으로 거듭나며 중앙 권력의 핵심에 진입했다.

    839년 왕위에 오른 신무왕 김우징은 장보고의 공을 높이 사고 예우를 갖춘다. 또한 장보고를 감의군사로 봉하고 식읍 2000호를 내렸다.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도 장보고에게 진해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하지만 장보고와 신라 왕실의 관계자 급격히 냉각되는 일이 벌어졌다.

    845년 봄. 문성왕이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려다 중앙 귀족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신라 귀족들이 장보고가 섬출신이라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다. 이를 원망한 장보고는 청해진에서 반란을 도모했다.
  • 장보고는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고, 결국 신라 왕실의 의뢰를 받은 염장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이후 청해진은 폐쇄되고, 주민들은 강제 이주됐다. 장보고가 건설한 동아시아 최대의 해상왕국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졌다.

    중국 대륙과 한반도, 일본 열도의 바다를 주름잡은 해상왕 장보고도 신라의 폐쇄적인 신분제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하지만 장보고의 죽음 이후 신라는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바로 장보고의 위세에 눌려있던 지방 호족들이 우후죽순처럼 세력을 과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했던 해상왕 장보고의 죽음과 그의 사후 몰락의 길을 걸은 신라의 이야기는 20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