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의 對中 자주외교 전략, 韓國에도 유효"
    조원일(趙源一) 前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 인터뷰

    김필재(조갑제닷컴)   

    조원일(趙源一) 前 아셈 사무총장/촬영=조갑제닷컴“베트남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미국과 손을 잡으면 베트남 공산당이 망하지만, 중국과 손을 잡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베트남의 대(對) 중국 외교안보 전략은 한국에도 유효하다.”
      
      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증대함에 따라 대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주변국은 강대국의 지배(또는 굴종)를 받거나 침략을 당했다. 중국의 인접국(隣接國)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한국과 베트남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 경험이 비슷하다. 
      
      한국인 최초로 베트남 정부훈장 받아
      
      <조갑제닷컴>은 지난 11일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를 역임한 조원일(趙源一, 70세) 前 아셈 사무총장을 만나 중국 지배에 줄기차게 저항해온 ‘베트남의 생존전략’과 ‘한국의 대응 방안’에 대한 시각을 들어보았다. 

      
  서울법대 출신의 趙 전 대사는 外務考試 1기로 1968년 외무부에 입성(2008년 은퇴), UN참사관, 파키스탄·캐나다 공사, UN대표부 대사, 외무부 외교정책실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최고참 외교관이다. 1997년~2000년 기간 동안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로 한국과 베트남 간의 유대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베트남 정부훈장(友誼훈장)을 받기도 했다. 베트남은 외국인들에게는 거의 훈장을 수여하지 않는 나라인데, 외국대사로서는 사회주의 국가인 스웨덴과 쿠바대사를 제외하곤 처음이었다. 趙 전 대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아시아 대륙 동쪽의 한반도와 남쪽의 베트남이 유사한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쳤다”며 “두 나라 모두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반도는 중국과 136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고, 베트남은 중국과 145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고조선은 기원전 109년 漢 무제에게 멸망했고,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 漢 무제에게 정복당했다. 우리는 676년 對唐결전에서 신라가 승리해 한반도를 하나의 영토와 문화로 통일을 했지만, 베트남은 939년 독립 왕조를 세울 때까지 1000여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몽골도 베트남 정복 실패
  
  지리적으로 베트남 북부지역은 아열대성 기후로 농수산물이 풍부하고 상아, 비취 등 진귀한 자원이 풍족했기 때문에 중국의 침략이 더욱 잦았다고 한다. 중국 지배가 끝난 뒤 100여 년에 가까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며, 단기간에 그쳤지만 일본의 지배도 받았다. 이들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베트남은 교역을 위한 중간 기착지이면서 중국 진출을 위한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베트남은 外勢의 지배에 줄기차게 대항하는 ‘저항의 역사’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베트남 토착세력들은 중국의 지배가 계속되는 동안 지배세력에 복종하기도 했지만, 관리들의 횡포가 계속될 경우 그들에 맞서 저항을 했다. 趙 전 대사는 “이 과정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오늘날의 게릴라전과 유사한 저항방식을 터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몽골의 경우 중국의 漢族 정권을 멸망시킨 뒤 원나라를 세우고 3차례에 걸쳐 베트남을 침략했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몽골의 침략에 굴하지 않고, 모든 베트남인들이 참여해 게릴라전을 구사했다. 그 결과 유럽과 아시아를 관통하는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군도 베트남만큼은 굴복시키지 못했다. 
  
  韓, 역사적 경험·지정학적 조건 제대로 파악해야 
  
  趙 전 대사는 “국가전략의 핵심요소로 역사적 경험, 지정학적 조건, 관련국들의 전략과 정책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한말 조선의 경우 외세에 대항할 주체적 역량도 없었고, 국가 생존 전략을 두고 집권세력이 분열되어 경쟁적으로 외세를 끌어들이다가 亡國의 길로 간 것”이라며 “역사적 경험과 지정학적 조건은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강대국 틈에 낀 한국은 이를 잘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趙 전 대사는 이어 壬亂을 예로 들면서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지정학적 조건’을 설명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壬亂 발발 전인 1582년 關白이 되면서 조선 분할을 추진했다. 그는 공명심, 정복욕 외에 부하들에게 나눠 줄 영지의 확보를 위해 明에 조선 남쪽 4개도를 달라고 했다. 당시 明은 조선을 속국(屬國)으로 인식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남쪽 4개도의 분할을 요구한 것은 두 나라 이해가 접근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조선은 明과 倭의 중간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였다. 20세기 남북한 분단이 외형상 제2차 대전 종전 당시 美蘇 양국의 점령정책으로 이해되지만 그 뿌리는 明과 倭의 조선 분할 획책까지 닿는다고 봐야한다.” 
  
  趙 전 대사는 베트남이 중국과 가까워진 것은 1949년 중국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이후라고 말했다. 그러나 1969년 호지명이 사망한 이후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고, 베트남은 中蘇분쟁에서 소련 쪽으로 기울었다. 중국의 등소평은 베트남이 소련을 등에 업고 동남아에서 세력을 확장하자, 1979년 20만 명의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베트남을 공격했다. 당시 중국의 침공 이유는 베트남이 ‘동남아 패권국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반도 통일에 중국이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
  
  趙 전 대사는 “향후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중국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중국인들의 중화사상(中華思想)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中華思想은 중국의 漢族이 자신들의 문화와 영토를 자랑스러워하면서 타민족을 배척하는 사상이다. 여기서 中華는 세계의 중심을 의미하고 그 밖의 나라는 오랑캐가 된다. 이 같은 이유로 中華思想을 華夷思想이라고도 말한다. 中華思想은 중국 역사에서 淸제국의 붕괴로 사라졌다가 20세기 이래로 중국 내부에서 다수의 漢族과 漢族의 지배를 받는 나머지 소수민족이 갈등 관계에 놓이자 다시금 발현됐다. 중국의 역사는 서구처럼 인류의 보편성을 인정한 적이 없다. 역대 중국 통치자들은 지난 2500년간 법치주의, 권력분립, 언론의 자유, 기본적 인권 존중 등의 ‘룰(rule)’을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다. 가까운 장래 공산당 일당독재(一黨獨裁)의 중국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안보문제는 경제문제에 우선
  
  현재 베트남의 외교안보전략은 중국의 위협에 대해 다른 국가들과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다. 아세안(ASEAN)국가들과는 긴밀한 연대를 통해 중국에 공동 대응하면서 동시에 미국-일본 등 강대국과는 안보·경제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의 압력을 견제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과 베트남은 2001년 12월 양국 간 무역협정을 발효했다. 이후 미국은 베트남의 제1의 수출시장으로 부상했다. 베트남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비토(veto) 철회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아세안개발은행, APEC에 가입했고, 美日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참여했다. 
  
  일본의 경우 1992년부터 대규모 베트남 원조를 재개해 對베트남 최대 원조국가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투자와 교역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일본은 제4위 對베트남 교역국가가 됐다. 2009년 4월에는 兩國의 외교관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설정됐다. 
  
  趙 전 대사는 “한국이 중국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미국은 한국을 떠나려 할 것”이라며 “최고의 경각심을 가지고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면서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베트남은 이념적으로 미국보다 중국에 가깝고, 경제적으로도 중국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을 무조건 적대시하지는 않고 있다. 이유는 중국이 베트남의 최대 교역 대상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베트남에 대규모 경제 제재를 가하면 베트남 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교역 다변화를 통해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긴요한 과제라 하겠다. 그러나 베트남이 ‘경제적 이익’과 ‘안보 이익’이 상충되는 상황에서는 늘 안보를 택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보문제는 경제문제에 우선한다. 오늘의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경제·군사 강국일 뿐, 도의적(道義的) 문명국은 아니다. 자유와 비(非)자유 사이에는 중립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동맹인 미국과 북한의 동맹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중립외교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운명에 대해서는 미국과 논의해야 한다.”
  
  인터뷰/정리=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다섬=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