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지세… 수문제가 선비족 몰아내고 중국 통일할 때 나온 고사2·8 전대 직후 설날에는 일관된 행보 다짐하는 '답설야중거' 쓰기도
  • ▲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이 108일 만에 최고위에 복귀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기호지세를 언급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옆은 새정치연합 한반도평화안보특위 위원장으로 최고위에 참석한 박지원 전 원내대표.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이 108일 만에 최고위에 복귀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기호지세를 언급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옆은 새정치연합 한반도평화안보특위 위원장으로 최고위에 참석한 박지원 전 원내대표. ⓒ연합뉴스 사진DB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전남 여수을)이 복귀 일성(一聲)으로 기호지세(騎虎之勢)를 언급해, 발언의 의도를 놓고 야권 내에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8일 최고위원 사퇴를 선언했던 주승용 최고위원은 24일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의에 108일 만에 복귀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당과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108일 만에 다시 인사를 올리게 됐다"며 "사퇴를 번복해서 죄송하게 생각하며, 욕을 먹을 것을 각오하고 최고위원회에 복귀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나아가 "최고위원으로서 당의 혁신을 위해서 호랑이 등을 타고 달린다는 기호지세의 마음으로 국민과 당원이 부여한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당 지도부가 정치적 명운을 걸고 혁신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놓고 당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물려받은 세력 중심으로 통합과 단결을 이룬 뒤, 전면적인 혁신을 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호지세는 말뜻 그대로 풀이하면 '호랑이에 올라탄 형세'라는 뜻이라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출전(出典)을 파고 들어가면 심오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

    기호지세라는 말은 수서(隋書) 독고황후전(獨孤皇后傳)에 나온다. 선비족(鮮卑族) 우문씨(宇文氏) 세력이 북주(北周)를 세워 북중국을 점령하고 있을 때, 북주 선제(宣帝)가 22살의 나이로 요절하자 8살인 정제(靜帝)가 뒤를 이었다.

    이 때 양견은 북주 정제의 장인으로서(양견의 딸인 천원황후 양씨가 선제의 황후) 섭정을 하게 됐는데, 어린 황제 대신 조정의 실권을 모두 장악했음에도 정작 폐위를 주저했다. 그러자 인간적인 번민을 눈치 챈 독고황후(양견의 배우자)가 "이미 호랑이에 올라탄 형세와 같아, 이제는 도중에 내릴 수가 없다"며 "만일 중도에서 내린다면 잡아먹히고 말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깨달음을 얻은 양견은 북주 정제를 폐하고 양위를 받아 즉위해 다시 한족(漢族) 왕조로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수(隋) 왕조를 개창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은 2·8 전당대회로 문재인 대표가 당권을 잡고 자신은 호남을 대표하는 수석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직후인 올해 설날, 서산대사의 한시인 답설야중거를 써서 국회 지하통로에 전시하기도 했다. 이 한시는 서산대사가 호남과 국가의 위기 상황을 지켜보며 쓴 시로, 일관된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주승용 최고위원 페이스북
    ▲ 새정치민주연합 주승용 최고위원은 2·8 전당대회로 문재인 대표가 당권을 잡고 자신은 호남을 대표하는 수석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직후인 올해 설날, 서산대사의 한시인 답설야중거를 써서 국회 지하통로에 전시하기도 했다. 이 한시는 서산대사가 호남과 국가의 위기 상황을 지켜보며 쓴 시로, 일관된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주승용 최고위원 페이스북


    민주당 60년 정통성으로 볼 때 이단(異端)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친노(親盧·친노무현) 계파가 당권을 잡고 당무를 농단하는 가운데, 기필코 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세력 중심으로 통합·단결·혁신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단어가 '기호지세'라는 해석이다.

    기호지세는 도중에 호랑이 등에서 내리면 잡아먹히고 마는 상황을 빗댄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최고위에 복귀해서는 결코 중도에 재차 사퇴하는 일 없이 △친노패권주의 청산 △공정하고 투명한 당무 운영 △당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는 혁신을 관철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셈이다.

    주승용 최고위원이 고사(故事)에 밝은 면모를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2·8 전당대회를 통해 문재인 대표가 당권을 잡고 자신은 호남을 대표하는 수석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직후였던 올해 설날,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라는 한시(漢詩)를 손수 써서 국회본청에서 의원회관·국회도서관으로 연결되는 지하통로에 내건 바 있다.

    이 시는 서산대사가 정여립의 난과 임진왜란 등 내우외환으로 호남이 위기에 처하고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자 쓴 시로 알려져 있다. 한시를 쓴 시기와 그 배경이 되는 정치적 여건이 범상치 않다는 해석이다.

    한시의 내용 또한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踏雪野中去)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라(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今日我行跡)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라는 내용이라, 예사로운 선택이 아니다.

    2·8 전당대회 이후 주승용 최고위원의 행적을 보면 외견상으로는 최고위원 사퇴와 사퇴 번복 등으로 어지러운 발걸음을 한 듯 하다. 하지만 그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면 당의 정치적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 정치의 복원과 계파패권주의 청산을 주장하며 일관되게 총선·대선 승리로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고위 복귀 이후에도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만한 행보를 계속할지 여부가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친노패권주의 적폐를 수술해야 할 혁신위는 역주행을 하고 있고, 정작 혁신을 책임져야 할 문재인 대표는 이를 '아웃소싱'한 채 대권 행보에 골몰하고 있다"며 "새정치연합의 많은 의원들이 주승용 최고위원의 복귀 후 행보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