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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 속에 숨은 '목함지뢰'

고성혁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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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12 14:21 수정 2015-08-12 14:40

   영화 '암살' 속에 숨은 '목함지뢰'

‘목함지뢰’는 휴전선뿐 아니라 대한민국 문화코드 곳곳에 매설되어 있다

고성혁(견적필살)   
  
  

전지현 이정재 등 톱스타들이 출연한 영화 ‘암살’이 흥행가도를 달리며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역사적 실존인물이 거론된다. 바로 김구, 염석진, 김원봉이란 인물이다. 특히 염석진(이정재 扮)은 매우 악독하게 그려졌다. 반면 김원봉은 독립운동가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묘한 ‘목함지뢰’가 있다.
 
 김원봉은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해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되었고 9월 北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1952년 5월 노동상, 1956년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57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북한의 최고위직을 지낸 인물이다.
 
 영화 ‘암살’에 열광하고 있을 때 <동아일보> 8월12일字 ‘홍찬식 칼럼’은 <김원봉 치켜세우고 독립운동과 친일 이분법 구도 “변절의 나라” 등 편향적 인식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암살’의 역사적 왜곡에 우려를 표했다.
 
 <영화 ‘암살’이 좌파 김원봉을 도드라지게 하고 우파 염동진을 악역으로 묘사한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나 좌파 인물에게는 관대한 반면 남한이나 우파의 잘못에 대해서는 유난히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역사학계의 분위기다. 염동진이 좌파를 괴롭힌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것이 더 혹독한 평가를 불렀을지 모른다. 진보 진영이 장악하고 있는 역사 인식의 창이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 있는 탓이 크다>
 
 홍찬식 논설위원은 “김원봉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1948년 남북협상 때 북한으로 간 뒤 그대로 눌러앉아 버렸기 때문이다… 광복군 출신의 장준하는 저서 《돌베개》에서 김원봉에 대해 ‘판에 박힌 공산주의자’라고 증언했다”고 했다.
 
 <동아일보>를 제외하면 영화 ‘암살’에 대해 찬양 일색이다. <부산일보>는 8월11일字 사회면에서 <영화 ‘암살’ 뜨자 박차정 의사 생가도 떴다>는 기사를 통해 김원봉-박차정 부부의 일생을 조명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해방 후 김원봉이 중국에 있던 아내의 피 묻은 赤杉(적삼)과 유골을 자신의 고향인 밀양군 감천리 뒷산에 묻고 통곡했다는 것이다. <부산일보>는, 부산 동래구청이 관리하고 있는 ‘박차정 生家’에 대해서도 다뤘다. 37㎡ 규모인데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복원되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싸워 세운 나라다. 독립운동가라고 해서 무조건 찬양하면 안 된다. 독립운동가라는 이름 뒤에 ‘공산주의자’라는 ‘목함지뢰’가 있을 수 있다. 김원봉의 독립운동과 함께, 그가 월북해 김일성의 측근으로 활동한 이력도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목함지뢰’는 휴전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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