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은 중도우파 끌어들일 수 있는 스펙트럼 넓은 정당 돼야"
  • ▲ 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 상임고문이 뭇 야권 신당 세력의 이해 관계를 조정할 맹주 역할의 적임자로 주목받고 있다. ⓒ조선일보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 상임고문이 뭇 야권 신당 세력의 이해 관계를 조정할 맹주 역할의 적임자로 주목받고 있다. ⓒ조선일보 사진DB

    60년 역사를 칭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을 장악한 채 당무를 농단하는 '친노(親盧) 패권주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각지 '제후'(諸侯)들의 궐기가 임박했다는 관측인 가운데,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맹주'(盟主)로 정대철 상임고문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 야권의 상황은 60년 정통 야당의 민주적 정통성이 흡사 동탁과 같은 세력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과 같은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제후가 나서기 전에 백성들이 먼저 나섰듯이, 친노패권주의의 전횡에 신음하던 호남과 영남의 평당원들은 지난달 집단탈당의 형태로 먼저 '궐기'했다.

    뒤이어 광주의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과 무소속 천정배 의원, 부산의 새정치연합 조경태 의원, 전북의 정동영 전 의원, 전남의 박준영 전 도지사, 서울의 김민석 전 의원, 마포의 민주당 세력, 당산동의 이철·염동연 전 의원, 여의도의 국민희망시대 등 각지에 할거하고 있는 '제후'들이 친노 패권주의에 경도된 제1야당을 뒤엎고 중흥을 이뤄내기 위한 신당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선 의원은 문재인 대표의 사퇴와 친노 계파 청산을 주장하다가 하계U대회와 교문위원장 취임을 계기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지만, 8월말 혁신위의 공천 혁신안이 발표되면 정치적 행보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박주선 의원을 모시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국민희망시대는 최근 여의도에 신당 추진 사무소를 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정배 의원은 지난 4일 전북 전주 강연에 이어 전국 순회 강연을 계속하며 신당 바람을 몰고 갈 요량이다. 전북의 정동영 전 의원, 당산동의 이철·염동연 전 의원과의 관계맺음에도 관심이 쏠린다.

    박준영 전 도지사는 지난달 전격 탈당한 이후 물밑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내주 중 집단탈당을 고려하고 있는 영남 지역의 지역위원장과 평당원들 중에서는 박 전 지사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과, 이 당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민석 전 의원은 최근 잇달아 언론 인터뷰를 가지며 정치적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렇듯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전국적 개혁 신당 창당에 무게중심을 싣고 움직이고 있는 세력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의 뜻과는 관계 없이 잠재적으로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제후'들도 있다.

    서울의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 전남의 새정치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 광주의 김동철 의원, 전남의 주승용 최고위원, 전북의 유성엽 의원과 강진에 은거하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 등이 그들이다. 모두 상당한 정치적 중량감을 가지고 있으며, 신당으로 이동할 경우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이들이다.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는 얼마 전 공개 부인에도 불구하고 신당 세력의 끊임없는 러브콜과 함께, 당심과 민심도 이들에게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조경태 의원이 안철수 전 대표에게 신당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스스로를 경계인이자 '샌드위치'로 표현하면서 신당 합류 가능성에 완전히 선을 긋지는 않고 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미래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고 반복하고 있다.

    김동철·주승용·유성엽 의원은 각각 광주·전남·전북의 민심, 즉 호남 민심을 대변하고 있는 의원들이다. 이들은 새정치연합으로부터의 호남 민심 이반을 우려하며, 아직까지는 "혁신이 잘 돼야 한다"는 정도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끝내 혁신이 기대 이하 혹은 기대에 대한 배반으로 귀착될 경우, 모종의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전남 강진에 은거하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자신의 뜻과 관계 없이 '신당의 얼굴'이 될 수 있는 인물 0순위로 항상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설(說)들 때문에 민주당 박상천 전 대표에 대한 조문까지 주저할 정도였지만, 결국 빈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지원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의 성공 조건'으로 거론한 '국민이 희망을 걸 수 있는 대권 주자'는 손학규 전 대표나 안철수 전 대표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도 있다.

     

  • ▲ 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 상임고문이 뭇 야권 신당 세력의 이해 관계를 조정할 맹주 역할의 적임자로 주목받고 있다. ⓒ조선일보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정대철 상임고문이 뭇 야권 신당 세력의 이해 관계를 조정할 맹주 역할의 적임자로 주목받고 있다. ⓒ조선일보 사진DB

    문제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점이다. 400년 정통의 한조(漢朝)를 중흥시키기 위해 떨쳐 일어났던 18로 제후 의군(義軍)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라인업이 화려하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낼 만한 구심점, 맹주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선수(選數)나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할 때, 제후들 중에 한 명을 맹주로 세우기가 여의치 않아 보이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대철 상임고문에게 다시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라고 귀띔했다.

    정대철 고문은 정통 야당 민주당의 명맥을 계승해 온 거인(巨人)들 중 한 명인 고 정일형 박사의 아들이다. 8선 의원인 고인은 장면 내각에서 외무부장관을 지내고, 신민당 부총재를 역임했다. 고인의 아들인 정대철 고문도 5선 의원으로, 사세삼공(四世三公) 출신에 비견할 수 있다.

    또, 서울 출생으로 정치일번지인 서울 종로구와 중구에서 계속해서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전국적 개혁 신당에 '호남 신당' '호남당'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정대철 고문을 모셨다는 야권 관계자는 "정대철 고문은 사람 좋은 호인으로, 포용력이 크고 넓다"며 "여러 사람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신당 창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에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18로 제후군'의 맹주가 돼 이끌기에 다시 없는 적임자라는 설명이다.

    야권에서 오랫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두루 깊은 교분을 맺어 왔기에, 김한길 전 대표 등 신당의 잠재적인 우군과도 관계가 두텁다는 평이다. 한편으로 항상 진정성을 갖고 사람을 대하기에, 강진와룡(康津臥龍)을 삼고초려로 끌어낼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기대도 모으고 있다.

    반면 현재 야당의 파국을 초래한, 좌경화된 친노·운동권 세력과는 항상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한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받는다.

    정대철 고문은 지난해 9월 18일 소집된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 추천단 회의에 참석해 문희상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자, 회의 테이블을 내리치며 "돌고 돌아서 또 친노로 가는 것이냐"고 분노의 일성을 내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사태의 전개는 문희상 비대위 체제에서 친노 후보에게 유리한 경선 룰이 마련되면서 결국 당권을 친노 문재인 대표가 장악하는 방향으로 귀결됐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던 셈이다.

    지난달 20일 새정치연합 중앙위원회에 참석했던 관계자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2·8 전당대회 때 잘 됐더라면 오늘 이럴 것까지도 없었다"고 말했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 때(지난해 9월 18일) 정대철 고문 말만 들었더라도…"라고 탄식했다.

    이처럼 야권의 시선과 기대감을 한몸에 받고 있는 정대철 고문 스스로도 자신이 요청받는 '역할론'을 어느 정도 수용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정대철 고문은 지난달 22일 CBS라디오 '시사자키'에 출연해 "나는 아들(정호준 의원)이 국회의원이니까 다시 국회의원을 하거나 대통령 후보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며 "후배들이 이런 정당(새정치연합)을 내버려두면 사이클(정권교체)을 놓칠까봐 노파심에서 코디네이터라고 할까, 조정 역할로 돕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어 "소위 친노로 표현되는 운동권적 강경파가 좌클릭해서 끌어가는 정당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고, 중도·중도우파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으로 가야 한다"며 "한명숙·이해찬 전 대표가 비례대표나 일반 선거구의 공천을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운동권적 강경파)을 만들어놨는데, (이들은) 심상정·노회찬 씨 정당하고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신당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주가 돼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깨끗한 사람만으로는 되지도 않고 좀 불투명한 사람도 함께 더불어서 해야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이 조정"이라고 자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