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도’ 새(鳥)떼는 낙타(駱駝)를 사랑한다
    “낙타야 이곳 저곳 쉬지 말고 뛰어 다녀라!”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째 밤마다 악몽(惡夢)에 시달렸다.
    [‘너의도’ 새(鳥)떼가 악몽에 시달린 사연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관련기사』를 참조하면 된다]

    ‘다 낡아빠진 개가죽(개革)’을 뒤집어 쓰고
     “앞으로는 ‘나라 개’(國개)가 다 한다. 싸움을 하면 개(犬)싸움이고, 판을 벌려도 개(犬)판이다”
    라고 큰 소리를 쳤다만, 궁민(窮民)들의 시선이 싸늘했다.
    물론 매일 밤 꿈에 나타나던 ‘보신탕’이나 ‘몽둥이(角口木) 찜질’ 또는
    본래 모습인 ‘새(鳥)로 돌아간 채 살(殺)처분’ 등등이야 결코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은 제로다.
    그래도 왠지 찜찜했었다. 
  그런데 “자고 나니 유명해 졌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며칠 새 갑자기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게 아닌가.
아 글쎄, “낙타(駱駝)가 나타났다”고 여기저기서 난리 아우성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저 먼 사우디 사막의 낙타 한 마리가 몰래 입국을 했단다.
그 낙타가 궁민(窮民)을 한 번 물거나, 혀로 핥기라도 하면 피(血) 가래를 쏟는 독감(毒感)에 걸린단다. 그리고 그 독감에 걸린 환자들과 입을 벌리고 포옹을 하거나 뽀뽀를 하면
그 궁민(窮民)도 독감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독감에 걸리면 열에 넷은 죽는다고.
사태가 이러하니 궁민(窮民) 모두가 딴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옳다! 됐다.
이제 ‘개가죽(개革)’ 사건은 이미 까맣게 잊혀지게 되지 않겠는가.
허긴 ‘너의도’ 새(鳥)떼들이야 일전에도 여러 번 살(殺)처분 당할 위기가 있었지만,
 결국은 먹고 살기 힘든 궁민(窮民)들의 건망증(健忘症) 덕분에 멀쩡하곤 했었다.

이렇게 감사할 데가 있나. 그래서 ‘너의도’ 새(鳥)떼들은 중동(中東) 낙타를 힘차게 응원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한 번 본적도 없지만, 경향(京鄕) 각지를 뛰어다닐 낙타가 고맙기만 했다.
  그래도 독감 공포에 시달리는 궁민(窮民)들이 이런 사실을 알면 절대로 안 되니 만큼,
 새(鳥)떼 간에 공감대가 필요했다. 또한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어서는 일을 그르칠 수가 있다.
이 점에서는 늘 쌈박질을 하던 이쪽 새(鳥)연합과 저쪽 새(鳥)무리 간에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금방 통한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소통(疏通)아닌가베.
  •   드디어 한창 고무된 새(鳥)떼들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험상굳은 표정으로 근엄하게 “이번 사태는 초기에 낙타몰이를 잘 못해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 몰이꾼들은 모두 자폭(自爆)해야 하지만, 수습이 먼저니 사태를 수습한 후에는 즉시 자폭하라”고 다그친다. 
      그리고는 낙타가 출몰했던 지역을 찾아다니며 크게 지저귄다.
    “낙타를 빨리 잡아 가두고 독감 걸린 환자들은 한데 모아서 다른 궁민(窮民)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해야 된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정신 차릴 겨를이 없는 궁민(窮民)들이 뭐 따지기야 하겠나.
      더욱이 항상 들어가는 양념이 빠져서는 안 되지.
    “낙타 몰이를 잘 못한 가장 큰 책임은 ‘북악(北岳) 산장’ 여주인 때문이다. 산장 주인을 하려면
    낙타 몰이 방법을 통달하고 있어야 하는데, 엄청 무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산장에서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통쾌하고 시원하다.

      이렇게 한 바탕씩 푸닥거리를 하고는 잠자리 둥지에 들어가서 오그라진 주먹을 쥔 채
    파이팅을 외친다. “네발 달린 낙타가 어디는 못 갔겠나. 혹이 있어서 정력이 좋은 짐승아!
    가급적이면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오래오래 궁민(窮民)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거라.
    그리고 독감 걸린 환자 전체를 격리한다고? 이 더위에 엄청 갑갑할텐데...
    잘 알아서 바람 쐬러 다니겠지. 어련하겠는가. 새(鳥)떼여 영원하라!”
  •   그러던 어느 날 밤. 이번에는 ‘너의도’ 새(鳥)가 아닌, ‘북악(北岳) 산장’ 밑에서 얼쩡거리는
     원숭이가 나섰다. 밀입국한 낙타의 새끼인지 낙타에 물린 환자와 뽀뽀했던 의사인지는 불분명한데, 하여간 그 비스름한 것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봤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정의의 사도(使徒)처럼 고함을 쳐댄다. 그것도 갑자기 오밤중에.
    그러면서 “큰일났다. 이제 ‘북악(北岳) 산장’은 못 믿겠다. 내가 낙타몰이에 직접 뛰어들 것이며, 우리 동네 독감 환자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지킨다”고 외치는게 아닌가.
    궁민(窮民)들이 화들짝 놀라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낙타나 낙타새끼는 없었고, 독감 환자 입원했던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로 밝혀지기까지 너댓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의사야 독감에 걸렸다지만, 주위에다가 옮겼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말했다. 
      안도의 한 숨을 몰아 쉰 궁민(窮民)들이 여기저기서 궁시렁거린다.
    “새(鳥)떼에 가려서 존재감이 사라지는데 위기를 느낀 원숭이가 한 번 튀어 보려 그랬대”,
    “얼마나 ‘북악(北岳) 산장’이 탐났을까? 지금 사는 집도 엄청 크던데...”
    심지어 어떤 눈치 빠른 궁민(窮民)은 “아들 원숭이 허리 꾀병이 들통날까 봐 선수쳐 보는거
    아냐?”고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이렇듯 사우디에서 밀입국했다는 낙타는 여러 얘기들을 남겼고,
    그 소동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잠잠해 졌는데... 역시 그 후에 낙타가 잡혔다는 소식도 없이
    흐지부지 됐을뿐더러, 궁민(窮民)들이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먹고 살기에 고되고 힘든 나날을 계속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은 가도 흔적은 남는 것. 어린 학생들이 참고서로 쓰는 한자(漢字) 성어집(成語集)에 새로운 글귀가 ‘주마가편’(走馬加鞭: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 바로 위에 실리게 되었다고 한다.

      “주낙타가성(走駱駝加聲):새 또는 원숭이 등이 뛰는 낙타가 더 열심히 날뛰라고 지저귀거나 고함 지르기”
    <더   끼>

    *아래 관련기사 <여의도 새떼가 개떼로? 광견병? 보신탕?>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