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할 때 천정배, 끝낼 때 박지원과 어색한 조우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일행이 17일 5·18 전야 민주대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주먹밥을 배식받은 직후, 호남을 더 이상 팔아먹지 말라는 시민들의 항의에 직면해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일행이 17일 5·18 전야 민주대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주먹밥을 배식받은 직후, 호남을 더 이상 팔아먹지 말라는 시민들의 항의에 직면해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5·18을 맞아 광주로 향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전야제에 참석한 짧은 시간 동안 각각 '좌클릭'과 '우클릭'을 원하는 격심한 요구에 시달리며 온탕냉탕을 오갔다.

    문재인 대표는 17일 저녁 6시부터 광주공원을 출발해 충장로와 구성로, 금남로를 거쳐 구 도청 앞까지 걷는 '제35주기 5·18 전야제 및 민주대행진' 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유승희 최고위원과 강기정 정책위의장, 김현미 대표비서실장과 유은혜 대변인도 함께 했으며, 이밖에도 새정치연합 소속 국회의원 10여 명이 참여했다.

    행진에 앞서 최근 치러진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광주공원에 도착했다. 천정배 의원은 행렬 최선두에 선 국회의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표와도 인사를 나눴을 뿐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는 자신의 광주행을 둘러싼 논란에다 '호남 정치 복원'을 주장하며 당선된 천정배 의원까지 마주쳤기 때문인지, 시종 비장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없이 행진을 시작했다. 곁에 선 유승희 최고위원과 강기정 정책위의장이 활발히 대화를 나누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구성로에서 금남로로 접어들 무렵, 방송차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 이어 '광주출정가'를 틀었다. 문재인 대표 왼편에 선 유승희 최고위원과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이를 제창했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팔뚝질까지 했다. 반면 문재인 대표 오른편에 선 박주선 김동철 의원은 플래카드를 들고 함께 행진할 뿐 따라부르지는 않았다.

    사이에 선 문재인 대표는 다소 어중간한 태도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를 때에는 비장한 표정을 유지한 채 간간히 가사 일부를 따라부르는 입모양새였지만, '광주출정가' 대목에서는 입을 꾹 다문 채 박자에 맞춰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였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7일 5·18 전야 민주대행진을 하기 위해 광주공원에서 기다리는 사이 늦게 도착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마주치고 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을 뿐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7일 5·18 전야 민주대행진을 하기 위해 광주공원에서 기다리는 사이 늦게 도착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마주치고 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을 뿐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연합뉴스 사진DB


    문재인 대표의 신중하면서도 애매한 처신은 행진 내내 계속됐다. '민주를 인양하라 통일을 노래하라'라는 구호는 팔뚝질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따라 외쳤지만,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부정선거 불법대선자금 박근혜정권 퇴진하라"라고 외치자, 표정을 굳히고 입을 다물었다.

    각각 '좌클릭'과 '우클릭'을 요구하는 호남 민심의 한가운데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문재인 대표의 위치를 보여주는 듯 했다. 이날 행진이 멈출 때마다 문재인 대표는 일부 극성스런 광주시민들의 '돌격 목표'가 되곤 했다.

    5·18을 상징하는 음식인 주먹밥이 배식될 때 표정이 환해지며 주위 시민들에게 왼손을 들어 답례한 것도 잠시, 이내 "호남을 더 이상 팔아먹지 말라" "호남을 무슨 봉으로 아느냐"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마주해야 했다. 이들은 문재인 대표에게로의 접근이 저지된 뒤에도 씩씩거리며 "(강)기정이가 옆에 서 있는데, 나중에 만나야 쓰것구마 그 인간을"이라고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물러가라 새누리당 2중대"라며 '좌클릭'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문재인 대표 일행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 쪽으로 달려들다 저지당하자 극도로 흥분해서 "느그들이 뭐여"라고 언성을 높였다. 서로 "아저씨는 뭐냐"라며 '아저씨' 소리가 오고가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문재인 대표의 표정은 극도로 착잡해 보였다.

    이렇다보니 문재인 대표 일행을 바라보는 시민들 사이에서 서로 간에 언성을 높이는 볼썽사나운 장면도 일부 연출됐다. "문재인은 5·18 영령을 더 이상 모독하지 말고 사퇴하라"라고 누군가가 외치자,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시민은 "사퇴하지 마라"라고 곧바로 맞받았다. "문재인은 각성하라"라고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시끄럽다"라고 언성을 높이는 다른 시민도 있었다.

    상황이 어수선하다보니 금남로에 마련된 무대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의 2~3층에 있는 '망고식스'에는 통유리창마다 사람들이 빼곡히 늘어서 아수라장을 내려다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7일 5·18 전야 민주대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팔뚝질을 하며 [민주를 인양하라 통일을 노래하라]라는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7일 5·18 전야 민주대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팔뚝질을 하며 [민주를 인양하라 통일을 노래하라]라는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DB


    시민들의 지속적인 타겟이 되며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 있던 문재인 대표를 구해준 것은 역설적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었다.

    사회자가 "지금 이 곳 금남로에 불청객이 와 있다"며 김무성 대표의 참석 사실을 알리자, 문재인 대표를 가운데에 놓고 아옹다옹하던 시민들의 관심은 일제히 그쪽에 쏠렸다. 방금 전까지 서로 언성을 높이던 시민들은 "김무성 대표가 어디가 있느냐" "광주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앞쪽으로 몰려나갔다. 그제서야 문재인 대표는 표정을 풀고 자리에 앉아 행사를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온탕도 잠시.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나타나자 의원들은 굳이 자리를 비켜주며 박지원 전 대표를 문재인 대표의 왼쪽 옆자리로 이끌었다. 처음 잠깐 인사를 나눈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후 나란히 앉았음에도 철저히 어색한 침묵을 유지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날 행사 참석 직전 자신의 SNS를 통해 "당 지도부가 위기 상황을 안이하게 파악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쇄신 논의 결과는 시간벌기와 물타기가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강하게 공박했던 터였다. "금토일 3일간 많은 광주 전남 시도민들로부터 창당의 강한 요구도 받았다"고도 압박했다.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사이에서 시종 유지되던 어색한 침묵은 문 대표가 자리를 뜨면서 비로소 깨졌다. "내일 망월동에 간다"는 문재인 대표의 말에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아, 네"라고 답한 것이 첫 인사 외에 둘 간의 대화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