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장치 설치 등 재발방지 대책 급조, 빈말된 박원순의 ‘안전 서울’
  • ▲ 사자가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일어난 서울어린이대공원 맹수마을.ⓒ 사진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사자가 사육사를 물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일어난 서울어린이대공원 맹수마을.ⓒ 사진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2013년 12얼 8일, 서울시는 사육 중이던 호랑이에게 물려 숨진 서울대공원 사육사 심모씨의 순직을 애도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서울시는 심씨의 순직을 계기로, 사고가 일어난 서울대공원의 임시휴관까지 포함한 혁신대책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앞서 같은 해 11월24일 오전, 심 사육사는 수컷 시베리아 호랑이에게 목을 물려 중상을 입은 뒤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투병 15일만인 12월8일 결국 숨을 거뒀다.

    서울시는 같은 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근본적인 안전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서울시는 이번 사고를 “30년간 누적돼 온 구조적인 문제”라고 정의하면서, 필요하다면 임시휴관까지 고려한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민간전문가와 동물을 사랑하는 시민들까지 포함한, (가칭)서울대공원 혁신위원회를 만들겠다는 뜻도 밝혔다.

    당시 사고는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이레적인 경우라는 점에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특히 언론의 취재를 통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인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서울시와 서울대공원 측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거셌다.

    홍대 클럽 인디밴드 출신의 문화기획자를 대공원 원장에 앉힌 박원순 시장의 인사전횡 사실은, 시민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박원순 시장이 낙점한 비전문가 출신 원장이, 숨진 사육사에게 징벌적 성격의 인사조치를 취했고, 이것이 참사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태의 중심에 선 안영노 서울대공원 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육사의 기강해이’를 탓하며, 사고의 책임을 숨진 사육사에게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사실은, 국민적인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사고 당시 서울대공원이, 내부 공사를 이유로 호랑이들을 좁은 여우사로 옮겨 스트레스를 줬고, 해당 여우사의 울타리 높이가 1.4m 밖에 안 돼, 언제든 유사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되면서, 서울시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30년간 누적돼 온 구조적인 문제”라는 정치적 수사(修辭)를 이용해,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어물쩍 비켜갔다.

    그러고 2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서울시의 또 다른 산하기관인 어린이대공원(서울시설공단 운영)에서 일하는 사육사가, 사자에게 물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어나선 안 될 어이없는 사고가, 마치 데자뷰처럼 재현됐지만, 사고를 대하는 서울시의 태도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사고가 일어난 정확한 경위는 당시 상황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판독 중인 경찰의 조사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2년 전 서울대공원 사고 당시, “30년간 누적돼 온 구조적인 문제”를 원인으로 내세우며, 강도 높은 안전혁신을 이루겠다는 공언이 빈말이 된 것만은 분명할 사실이다.

    서울시가 밝힌 사고 브리핑 내용에 따르면, 어린이대공원 사육사는 모두 19명, 이 가운데 맹수사 근무인원은 2명이다.

    반면 어린이대공원이 사육 중인 맹수는 9종 27마리다.
    종별로 구분하면 사자 7마리, 호랑이 3마리, 표범 2마리, 재규어 2마리, 반달가슴곰 4마리, 서발 2마리, 퓨마 2마리, 재칼 2마리, 붉은 여우 3마리다. 이 가운데는 이번 사고를 일으킨 두 마리의 사자도 포함돼 있다.

    결국 2명의 사육사가 27마리의 맹수를 관리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서울시는 맹수사 관리 사육사들의 보호를 위해 안전장구를 구비해 놨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밝힌 안전장구는 방패와, 안전모, 호루라기다. 서울시는 이들 장비를 2013년 12월 갖췄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고로 숨진 사육사 김모씨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광진소방서 구급대원도 숨진 김씨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런 사실은 숨진 김 사육사가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치명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서울시가 밝힌 안전장구를 사용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서울대공원 사고 이후 서울시가 고강도의 안전대책 마련을 강조한 사실을 떠 올린다면, 서울시가 밝힌 안전장구 현황은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번 사고는 사자만 7마리에 달하는 맹수들을, 불과 2명의 사육사에게 관리를 맡긴 어린이대공원 측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대공원을 운영하는 서울시시설관리공단도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고 직후 어린이대공원 측이 사고경위를 설명하면서, 숨진 사육사에게 사고의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12일 오후 어린이대공원 측은 맹수사 근무 사육사 2명 중 한 명이 휴무라, 숨진 사육자 혼자 근무했다고 밝히면서, “2인1조 근무 매뉴얼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인 근무 시에는 반드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 작업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사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사육사가 밖에서 문을 수동으로 당겨 여는 방식”이라며, “사육사는 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들어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공원 측은 “(사육사는) 반드시 사자가 모두 우리 안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방사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방사장 안에 사자가 은폐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사고 원인이 숨진 사육사의 과실에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사고 원인이 숨진 사육사의 과실이라고 해도 어린이대공원과 서울시설공단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수십 마리의 맹수 관리를 단 한명의 사육사가 관리하도록 했다는 사실 자체가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1인 근무시에 반드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해 작업하도록 돼 있다”는 대공원 측의 설명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사고 경위와 관련된 브리핑을 보면, 맹수사와 이웃한 코끼리사는 2층에 있었고, 2층에 있었던
    사육사는 사고발생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사정은, 대공원의 해명을 무색케 만든다.

    13일 오후 어린이대공원은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사육사가 방사장에 들어가기 전 내실 출입문이 닫혔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경보장치를 설치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맹수 퇴치 스프레이나, 전기충격봉 등 안전장구도 추가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대공원 측이 내놓은 대책은, 자신들의 안전 관리가 부실했음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결국 2년 전 발생한 서울대공원 사고는 이번 참변을 막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박원순 시장 책임론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방화대교 붕괴, 석촌 싱크홀, 제2롯데월드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들, 노량진 배수지 참사, 서울대공원 호랑이 사고, 사당 종합체육관 붕괴 등은 모두 박 시장 취임 후 벌어진 사고들이다.

    서울시는 2년 전 서울대공원 사고를 ‘30년간 누적돼 온 구조적 문제’로 정의했다. 서울시가 이번에는 어떤 변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