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주兄, 어찌 그리 황망히 가셔야만 했나요!!

    이현오 /칼럼니스트, 객원기자

    "임이시여.
    바른 마음, 바른 사고로 나라의 안보를 염려했던 김 兄,
    힘들고 고단했던 그간의 고통은 잊고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길이 영면하소서"

     김兄,
    세상에 이런 황망한 일이 일어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어요.
    향불 내음과 국화 향기 속에 파묻힌 사진 속 당신의 모습은
     불과 20여일 전 만났을 때의 낯빛과 하등 다르지 않는데
    전매특허 인심 후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환한 얼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이제
    김兄의 그 여린 미소 다시 볼 수 없게 되었구려.

     허망하고 허망한 것이 찰나의 일이라 할지라도
    이 순간이 참으로 짠하고 아파짐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연(緣)이 이것뿐인가 하는 생각이 더해져서 가슴을 저밉니다.

    김兄! 
    김동주(‘월간 박정희’ 발행인.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대표) 대표여.

     어제(12.17) 오후 휴대폰으로 한 통의 부음(訃音)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오.
     발신자는 ‘김동주’로 되어 있더이다. 반가움에 단숨에 내용을 훑으면서
    가슴 철렁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거기 ‘월간 박정희 발행인’ 형의 부음이라니
    엄청난 충격에 어찌 떨리고 놀라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결코 믿기지 않았다는 얘기지요. 
    돌아보면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 시내 어느 아스팔트에서였을 겁니다.
     취재수첩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뛰던 필자와 목청을 높이던 김兄과는
    이후 인터넷 신문 ‘코나스’를 통해서 가까워졌지요.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소식을 전해 만남을 갖고 한잔의 술잔을 기울이면서
    우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지요. 나이 차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것은 어떤 이해관계보다도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 국가안위를 염려하는 깊이 있는 사고,
    거기에 인간 박정희를 떠나서는 다른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을 것 같은
    당신의 우직한 심성에 갈수록 깊이 끌려들고 말았습니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받으면서도
     ‘월간 박정희’ 발행에 손을 뗄 수 없었던 당신.
    빈주머니 털어 가면서 책자를 발행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발행을 중단해야 했던 때의 그 심중을
    어찌 감히 미루어 짐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매년 5월16일 그 날이면 빠짐없이 문래동 공원에서 5․16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어렵고 힘든 고행 길을 걸으면서도 국가와 민족의 중흥만을 되뇌고 선도했던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며 그분에 대한 존경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김동주 대표님. 
        
     지난해 서울 문래동 공원 5․16혁명 발상지에서 열린 51주년 5․16혁명 기념행사에서
    김兄이 한 연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집안이 가난하면 효자가 그립고, 나라가 위급할 때는 충신이 그립습니다.
     지금 한줌도 안 되는 종북좌파들의 극성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어지러운 시국이다 보니
     5․16혁명의 가치는 더더욱 빛을 발하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애국심은 감동으로 물결칩니다”면서
     “종북좌파들은 5․16혁명을 쿠데타로 저주하는데
    오늘 또 다시 분명히 말하지만 5․16은 오직 도탄에 빠진 조국을 구하겠다는
    충정으로 결행한 순수혁명이며 구국혁명”이라고 부르짖던 당신의 기개 서린 모습을.

    김兄!

     저는 압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우리 사회 일각의 매도분위기를 바로잡겠다고
     강한 의욕으로 얼치기 진보좌파, 종북세력에 경종을 울리고
    보수시민단체에는 ‘찢어지고 나뉘는 것’ 것보다
     ‘하나로 된 일체감’이 더 크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우쳐주었던 당신을 말이지요.

     이제 김兄이 떠난 그 빈자리가 너무도 크고 허(虛)하게 다가오는 듯.
     이제 누가 김兄의 뒤를 따라 그 일을 하게 될까요.
    이승만과 박정희를 빼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과연 누가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을 일굴 토대(土臺)를 구축할 수 있었겠으며,
    세계적 경제강국 대한민국을 일궈낼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는 이승만-박정희 흠집내기에 혈안이 된 세력들이
    줄어들고 있지 않으니, 예나 지금이나 가슴 답답함은 쌓이기만 하네요.

     8남매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성년이 된 이후
    가족일보다 시민사회단체 일에 먼저 눈을 떴다는 김兄.
    오늘 바로 위 누님으로부터 그 얘길 들었답니다.
    접객실에서 마주 앉은 누님께선 눈물 그렁한 눈으로 이렇게 말하더이다.
     “내 동생 동주가 비록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떠나 갔지만
    그가 했던 일들이 주변 지인 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살아 숨쉬게 된다면
    동주도 하늘에서 서운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타깝고 안타깝더이다. 미혼이기에 일점 혈육 없어 두 조카들이 빈소를 지키고
     ‘박사모’를 포함해 여러 단체에서 온 조화들이 이승에서의 헤어짐을 위로하고 있지만
    썰렁한 문상(問喪)의 발걸음에 다시 한번 내 마음이 무거워짐을 어찌할 수 없더이다.

     을지로에서, 반포에서, 교대 인근에서 한잔 술에 또 한 잔이 더해지면
    더더욱 열정적으로 세월을 논하며 질풍노도(疾風怒濤)의 톤으로 비판하곤 했는데,
    이제 젊은 그대 떠남에 그 목소리 다시 애절하게 그립겠구려. 

     지난 11월26일 ‘코나스’ 창간 10주년에 자리를 함께 해
     김兄은 물로 대신하면서 나에게 소주를 따르며 마음을 주고받았는데
    결국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구려.
    그 김兄을 대신해 오늘 누님의 잔을 받았으니 그 뜻을 전해 받는 듯. 

     임이시여.
    바른 마음, 바른 사고로 나라의 안보를 염려했던 김兄,
    힘들고 고단했던 그간의 고통은 잊고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영면하소서.

    금당 이현오(holeekva@hanmail.net)     

    * 김동주 대표는 2013년 12월3일 만성신부전증으로 쓰러져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17일 운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19일 서울시립승하원에 묻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