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공관 조성 사업, 문화재급 한옥 훼손 논란문화재委 거부로 공사 무기한 연기? 서울시 “공사 시작도 안 해”지난해 2월 이후 공사 중단..현재 담장 공사만 진행 중
  • ▲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백인제 가옥. 서울시장 공관을 이곳에 조성하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에 따라, 기존에 진행 중이던 리모델링 공사는 지난해 2월 중단됐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는 백인제 가옥. 서울시장 공관을 이곳에 조성하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에 따라, 기존에 진행 중이던 리모델링 공사는 지난해 2월 중단됐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친일파에 의해 지어져, 일제강점기 치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 근대사의 현장.
    근대 한옥의 건축양식을 거의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재급 한옥.
    구한말 최고의 외과의사이자 독립지사가 살았던 가옥.

    역사적으로 다양한 가치를 지닌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백인제 가옥’이 시련을 겪고 있다.

    1913년 친일파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이 건축한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건축의 특징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재급 한옥이다.

    백인제 가옥은 일제 강점기 시절 치욕의 현장이었다.

    이 집을 지은 한상룡은 초대 조선총독을 비롯 일제 고관대작들을 이곳으로 초대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백인제 가옥은 해방 후 두 번째 주인을 맞는다.
    독립지사이자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박사가 주인공이다.
    백 박사가 6.25 때 납북된 뒤에는 그의 후손들이 이 곳을 지켰다.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 22호로 등록됐다.

     

  • ▲ 백인제 가옥 내부 전경.ⓒ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백인제 가옥 내부 전경.ⓒ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한 동안 북촌을 넘어 서울을 대표하는 한옥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던 백인제 가옥이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9년이었다.

    2009년 12월 서울시는 백인제 가옥을 141억원에 사들였다.
    시는 이곳을 북촌마을을 찾는 내외국인들을 위한 북촌문화센터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시는 2011년 6월부터 이 곳을 북촌문화센터로 바꾸기 위한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다.
    배정된 예산은 22억원.

    한국 근현대사 영욕의 순간을 모두 바라본 백인제 가옥이 다시 풍파를 겪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시가 추진한 공사는 착수 8개월 만에 중단됐다.
    그해 10월 새로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새 시장공관으로 백인제 가옥을 선택했다.
    서울시장 공관은 시가 추진하는 서울성곽 복원사업으로 자리를 비워줘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시가 진행 중인 공사를 중단하면서까지 이 곳을 새 시장공관으로 변경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을 벌어졌다.

    시는 새 시장공간 자리를 물색하는 것이 쉽지 않고, 구입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한옥에 대한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문화유산의 보존과 발전을 위한 시의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시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적절성 시비는 그 뒤에도 이어졌다.
    서울시의회에서도 시장공관 변경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백인제 가옥을 둘러싼 논란은 해를 넘기고도 이어졌다.
    공사는 중단된 채 해를 넘겼다.

    특히 시가 연못과 정자를 만들고, 지하주차장까지 구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한양도성 성곽을 모두 복원해 유네스코에 등재코자 하는 야심찬 꿈을 가진 서울시가, 문화재급 한옥의 원형 훼손을 마다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2012년 2월 멈춘 공사는 아직도 그대로이다.
    다만, 유실된 담을 복구하는 공사만 진행 중이다.

    이것도 인접지의 안전 때문에 하는 것으로, 시장 공관으로 용도를 변경하기 위한 리모델링 공사는 아니다.

    시가 밝힌 공사 지연 이유는 설계안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설계안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달쯤 설계안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시 관계자가 밝힌 공사 완료시점은 내년 5월이다.
    문화재위원회와의 조율을 거쳐 진행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시는 그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문화재위원회가 시의 형상변경 허가를 거부했다는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시는 물론 문화재위원회도 양측의 ‘불화설’을 부인했다.

    문화재위원회의 거부로 시장공관 조성 공사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오보라고 했다.

    실제 본지는 1일 종로구 가회동 백인제 가옥에서, 이웃한 한옥(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구입)과 사이에 유실된 담장 복원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을 확인했다.

    시 관계자는 인접지의 안전을 위해 현재 담장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공사 진행 사실을 인정했다.

    시장 공관 조성을 위한 본격적인 리모델링 공사는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다.

    시장 공관 변경을 위한 공사는 아직 착수 전이다.
    내부적으로 설계안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 서울시 관계자


    시 관계자에 따르면, 백인제 가옥을 시장 공관으로 변경하기 위한 설계안은 다음 달 께나 나올 예정이다.

    서울시장 공관 조성 공사는 내년 5월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거쳐 진행하는 공사의 특성상, 다른 사업보다 시일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시가 백인제 가옥에 연못과 정자를 설치하려 했으나 문화재위원회의 거부로 공사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백인제 가옥에 작은 공터가 있었고, 이 곳에 분수가 있는 휴게시설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따라 시 문화재위원회에 그 내용을 포함한 형상변경허가를 신청했으나,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계획에서 뺐다.

    위원회가 거부를 한 것도 아니고, 공사가 무기한 중단된 것도 아니다.
    공사는 설계안이 나와야 시작된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중단은 말이 안된다.

        - 서울시 관계자


    시가 이 곳에 지하주차장과 지하채광시설(선큰가든)을 만들려고 만들려고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위원회가 허가를 했지만, 문화재 원형을 보존한다는 시장님의 뜻을 반영해 자체 내부검토를 거쳐 없던 일로 했다.


    시 문화재위원회의 입장도 시 관계자의 해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의 형상변경 허가 신청을) 공식적으로 거부를 한 것이 아니다.
    시의 도면을 받고 이러면 좋겠다고 권고를 했고, 이것을 시가 받아들여 정리가 된 사안이다.

        -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관계자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말의 강도와 뉘앙스의 차이일뿐이다.
    서울시측 주장 용어로 하면 [분수가 있는 휴게시설], [지하주차장]과 [선큰가든]을 추진했던 것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시가 문화재급 한옥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원형을 훼손할 수 있는 형상 변경을 추진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경솔했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당초 북촌문화센터로 꾸미기 위한 공사가, 박 시장 취임 후 시장공관으로 용도가 바뀌면서 1년 넘게 지연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눈길이 곱지만은 없다.

    처음 구상한 대로 사업을 진행했더라면, 새롭게 단장한 북촌문화센터로 문을 열고, 한옥마을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즐길 거리를 제공할 수 있었음에도, 박 시장의 과욕이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옥을 홍보한다고 했는데, 북촌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과연 서울시장공관을 둘러볼 수 있을까?

    그냥 하는 말, 그것도 억지로 가져다 대는 말, 견강부회(牽强附會)란 4자 성어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