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베드로 목사, 중국 감옥서 만난 탈북 아이 이야기 꺼내.."어떤 고통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을 위해 몸을 바쳐야겠다""김영환 , 얼마나 끔찍한 고문을 당했을지 상상이 간다"
  • "목사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북송되서 보위부에 가면 이것보다 30배 이상 끔찍한 고통을 당합니다."

    정 베드로 목사는 "중국에 수감됐을 때 같은 방안에 있었던 한 탈북자가 내게 한 말이었다"며 이같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청진에서 살던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이후 다른 감옥으로 옮겨져 아직까지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27일 서울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교회 앞에서 열린 '중국의 탈북자 북송반대' 집회에서다. 집회는 이날로 165일째다. 정 베드로 목사는 "탈북 아이의 말을 계기로 어떤 고통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을 위해 몸을 바쳐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 ▲ 서울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교회에서 '165회,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국 정부가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에 전기고문을 가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사진은 정 베드로 목사가 무대에 나와 중국 감옥에서 경험했던 일을 얘기하는 모습이다. ⓒ 뉴데일리 김태민 기자
    ▲ 서울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교회에서 '165회,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국 정부가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에 전기고문을 가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사진은 정 베드로 목사가 무대에 나와 중국 감옥에서 경험했던 일을 얘기하는 모습이다. ⓒ 뉴데일리 김태민 기자

    정 목사는 과거 중국에 체류하며 북한의 꽃제비와 탈북자들을 만났다. "이들의 고충을 통해 북한인권실태를 알게됐다"고 했다. 이후 그는 '탈북자 피난소'를 마련해 탈북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탈북을 도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에 베이징에서 중국 공안에 적발됐다. 그는 곧바로 길림성에 있는 간수소로 체포됐다. 이후 옌지 감옥으로 이감돼 1년 반 동안 구금 생활을 했다. 형법 38조 '타인비법월경방조죄'라는 죄목으로 갇힌 그는 "중국 정부가 나를 가두고 고문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감옥에 있던 당시 그들은 햇볕을 못 보게 했다. 음식도 주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서 눕지도 엎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온종일 가부좌로 앉아있도록 강요받았는데 한 시간에 한 번만 다리를 펼 수 있었다. 옆방에서 고문당하는 소리를 들려주며 협박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김영환 씨가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직접 경험해봐서 김영환 씨가 얼마나 끔찍한 고문을 당했을지 상상이 간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 외교부에 대해서도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그동안 우리 외교부 영사가 찾아온 것은 딱 2번이었다. 처음 잡혔을 때와 성탄절 때였다. 미국 영사는 매달 찾아왔다. 중국 측의 가혹 행위 여부 등을 확인하고 가족 소식도 전해줬다. 우리나라 외교부가 이러한 문제에 바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북한 관련 모든 인권단체들이 이를 촉구하겠다."

    [정 베드로 목사]

    "갇혀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외부에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살인 방조행위라고 생각한다."

  • ▲ 서울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교회에서 '165회,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국 정부가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에 전기고문을 가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사진은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모습이다. ⓒ 뉴데일리 김태민 기자
    ▲ 서울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교회에서 '165회,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은 중국 정부가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에 전기고문을 가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사진은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모습이다. ⓒ 뉴데일리 김태민 기자

    이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기고문 강력규탄', '인권유린 중국반대'란 피켓을 들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박일남 씨는 "한국인이 이웃국가 중국에 강제구금 114일 도중에 고문을 당하는 만행이 자행됐다. 한중수교 20년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고 반문했다.

    집회는 매일 오후 2시와 7시 30분에 서울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 '니콜라이' 교회 앞에서 열린다.

    “통일 독일은 '니콜라이 교회'에서, 통일 한국은 '옥인 교회'에서!”

    시민운동가 강재천 씨는 "나와 당신이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라며 축배를 들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중국정부가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날, 그리고 통일이 된 날, 누군가에게 ‘나는 그곳에 있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 구 동독지역의 대도시인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니콜라이 교회’ = 1981년 초, 월요일 저녁마다 이곳에서 동독의 ‘자유-평화’를 위한 촛불기도회가 열렸다. 기도엔 처음에 10~20 여명만이 참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1989년 10월 9일. 마침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기도회’가 동독지역 전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한달이 지나고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그 다음해 3월 동독은 자유선거를 치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