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세 청년 李承晩과 50代 안철수의 생각 수준 
      
    趙甲濟    
     

  •   한국에 자유를 심어준 인물은 李承晩 건국 대통령이다.
    그가 90평생을 전부 쏟아부어 구현하려고 했던 가치는 자유였다.
    그는 개인의 자유를 꽃 피워야 경제적 번영이 가능하고 强兵을 가질 수 있어 국가의 자유, 즉 自主도 도모할 수 있다고 본 사람이다. 李 대통령의 自主는 북한식 닫힌 自主(이건 자주도 아니지만)가 아니라 세계로 열린 自主였다. 1904년을 전후하여 옥중에서 쓴 책 '독립정신'에서 李承晩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고 말했다. 
      
      위대한 자유투사 이승만은 자유에 대한 확신을 대한민국 건국정신으로 삼았다.
    이것이 헌법에 들어갔고 李 대통령의 정책에 깔렸다. 농지개혁을 통해 耕者有田(경자유전)의 자유를 소작농가에 선물했다. 戰時(전시)에도 언론을 검열하지 않았고 선거를 중단시키지 않았으며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다. 민주교육을 통하여 자유의 가치를 아는 젊은이들을 육성했다.
     

  •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고 말했던 사상가가 학자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축복이었다.
    플라톤의 '哲人통치자'가 바로 李承晩이었다.
    이승만이 심은 자유를 박정희가 가꾸었고, 그 열매를 우리가 따 먹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무를 심은 사람, 우물을 판 사람의 고마움을 모른다. 
     
      20세기 초에 29세의 청년 李承晩이 '독립정신'에서 제시한 자유의 정신(아래 글)과 108년 뒤 50代 안철수라는 사람의 생각을 비교하면 어린아이와 현자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智慧(지혜)라는 것은 IT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활력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 활력이 생겨서 몇십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근본이다.>(이승만의 '독립정신'에서)
     

  •   對談集 '안철수의 생각'에 나오는 말: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가 활개치는 가운데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흘러가다가 보니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해지고 중소기업에서 좋은 일자리들이 새롭게 창출되거나 창업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죠. 그러다 보니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의 실질소득이 줄거나 정체되고 부족한 수입을 빚으로 메우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죠.>
      
      建國 대통령 李承晩은 망명시절이던 1923년 하와이에서 <태평양 잡지>를 발행하였는데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1917년 레닌의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全세계 정치인 지식인들이 이를 찬양할 당시,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공산당의 當不當'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자유평등주의자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무조건 반대한 것이 아니고 '합당한 것과 부당한 것'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고 간결하면서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는 공산주의의 <자본가(資本家)를 없이하자 함>을 이렇게 비판하였다.
      <모든 부자의 돈을 합하여다가 공동히 나누어 가지고 살게 하면 富者의 양반 노릇하는 폐단은 막히려니와, 재정가(財政家)들의 경쟁이 없어지면 상업과 공업이 발달되기 어려우니, 사람의 지혜가 막히고 모든 기기미묘한 기계와 연장이 다 스스로 폐기되어, 지금에 利用 厚生하는 모든 물건이 다 진보되지 못하며, 물질적 開明이 중지될지라. 자본을 철폐하기는 어려우리니, 새 법률로 제정하야 노동과 평등 세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나을 터이며...>
     
      공산당식으로 자본가를 없애면 경쟁이 사라져 기업이 발달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商工業 발전의 길이 막히고, 사람의 지혜도 써 먹을 데가 없어지며, 기계와 도구와 상품을 제대로 만들 수 없어 물질적 풍요를 이룰 수가 없다. 자본가를 없애지 말고 노동세력에 자본가와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공산당식 선동을 거부하는 사려 깊은 논리가 쉬운 말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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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이 김일성을 괴뢰로 본 이유
     
    우리 조국을 남의 나라에 附屬하자는 불충한 사상을 가지고
    국권을 파괴하려는 자들은 全민족의 원수로 대우해야.

     
    趙甲濟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李承晩은 制憲국회에서 국회의장으로 뽑혀 개회사를 할 때 맨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미국처럼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독교 정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역대 대통령 및 實權총리 아홉 분 가운데 朴正熙, 崔圭夏, 全斗煥, 盧泰愚 전 대통령을 제외한 과반수가 기독교 신도였습니다. 남북한의 대결은 종교를 탄압하는 北의 無神論 對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南의 有神論 사이의 대결이기도 한 것입니다. 
      
      저는 英美圈 인사들의 英文 명연설을 읽으면서 「명연설의 공통점은 겸손함 속에서 우러나오는 단호함」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 겸손함은 기독교의 절대자 앞에 선 인간으로서의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는 이 세상에선 자신보다 높은 사람을 만나볼 수 없기 때문에 여간 自制하지 않으면 오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란 존재는 하나의 채찍이자 브레이크가 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스스로 神이 되어버린 金日成의 오만방자함과 李承晩의 겸손함이 바로 그런 對比이자 오늘날의 남북한 격차를 가져온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   李承晩이 건국과정에서 연설할 때 최대의 고민거리는 조국분단의 문제였습니다.
    링컨의 1861년 대통령 취임사가 합중국의 남북 분단 위기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두 偉人의 연설은 서로 비교할 만합니다.
     
      <공산당 韓人들에게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기회를 줄 것이니 改過回心(개과회심)해서 全민족이 주장하는 국권회복에 우리와 같이 合心合力하면 우리는 前過를 잊어버리고 다같이 선량한 동포로서 대우할 것이요, 회개치 못하고 국가를 남의 나라에 附屬시키자는 主意로 살인, 방화, 파괴 등을 자행할진대 國法으로 준엄히 처단할 것이니 자기도 살고 남도 살아서 자유 권리를 같이 누리도록 法網에 복종해야 될 것이니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이러지 않고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국회 개회사)
     
      <以北 동포중 공산주의자들에게 권고하노니 우리 조국을 남의 나라에 附屬하자는 불충한 사상을 가지고 국권을 파괴하려는 자들은 全민족의 원수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나니 남의 선동을 받아 제 나라를 결단내고 남의 도움을 받으려는 反逆의 행동을 버리고 기왕에도 누누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의 賣國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므로>(초대 대통령 취임사)
     
      <거의 1천만의 동포가 우리와 민국건설에 같이 진행하기를 원하였으나 유엔대표단을 소련군이 막아 못하게 된 것이니 우리는 장차 소련 사람들에게 정당한 조치를 요구할 것이요>(건국 기념식 축사)
     
      위에 인용한 李承晩의 연설에서 그의 對北觀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는 공산당과 북한동포를 구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공산당이 「全민족의 원수」인 이유는 이들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남의 선동을 받아 제 나라를 결단내는 賣國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李承晩은 金日成 집단을 철저하게 소련의 꼭두각시로 보고 있기 때문에 建國을 방해한 책임도 유엔대표단의 入北을 막아 남북한 총선거를 방해한 소련에 대해 따지고 있습니다.
     
      李承晩이 자신의 3대 연설에서 「소련의 꼭두각시」 金日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소련을 질타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金日成의 생리를 정확하게 간파한 것입니다. 金日成이 서구의 사회주의자들처럼 조국을 배반하지 않는, 말하자면 「애국적인 공산당」이라면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李承晩은 金日成이 남(소련)의 선동을 받아 조국을 소련에 附屬시킴으로써 제 나라를 결단내는 事大賣國세력이라고 正確無比(정확무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북한 공산당에 대한 이런 본질적인 통찰력이 李承晩을, 자유세계의 대표적인 反共투사로 만든 것입니다.
    李承晩의 이 통찰은 그 뒤 역사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金日成은 스탈린의 세계전략에 노리개로 동원되어 제 조국을 피바다로 몰고 가 300만의 목숨을 끊었고, 그의 아들은 사회주의 생산양식이란 남의 논리, 남의 선동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일신상 편의를 위해서 300만 명을 굶겨죽였습니다. 남(그것이 소련이든 外製 사상이든)을 위해서 조국과 國益을 판 金日成 부자는 事大賣國주의자인 것입니다.
     
      자칭 천주교 신도 金大中 전 대통령이 金正日에 대해서 말한 것과 李承晩의 말을 비교하면 두 사람이 지닌 영혼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명연설은 머리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영혼의 울림이요 가슴의 鼓動이기 때문입니다.
     
      金大中 전 대통령은 일본기자와 인터뷰하면서 金正日을 「識見 있는 지도자」라고 부른 적이 있고 독일 슈피겔誌와 인터뷰하면서는 그를 「실용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동양정치사에서 실용주의자란 중국 戰國시대의 管仲(관중·齊나라를 覇者로 만든 명재상), 세종대왕, 崔鳴吉, 鄧小平, 李光耀, 朴正熙 같은 사람들입니다. 실용주의자들의 행동철학은 金大中씨도 좋아하는 實事求是입니다. 정치인에게 實事求是란 「事實에 기초하여 現實을 직시하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하여 是非를 가리는 자세」로 定義됩니다.
     
      이를 金正日에게 적용한다면 그는 「사회주의가 역사의 퇴보세력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북한이 망해가고 주민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한 뒤 한민족 전체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리는 지도자」란 뜻이 됩니다. 金正日이가 그런 지도자입니까. 그는 李承晩이 直擊(직격)한 대로 事大賣國的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외래사상인 사회주의에 內在된 선동의 논리에 포로가 되어 가장 큰 國益, 즉 국민을 먹여살리는 의무를 포기한 金正日은 가장 큰 賣國(이 경우 서양에서 나타난 공산주의 이념을 절대가치로 맹신하여 그 守舊的인 이념에 國益을 팔아먹었다는 의미)을 한 者인 것입니다.
     
      이런 者를 「실용주의자」라고 칭찬하면 칭찬한 사람이 낮아집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북한에 비교하면 天國 수준이던 소련을 「惡의 帝國」(Evil Empir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호칭으로 해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외교분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국가도 아닌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의 수괴를 향해서 왜 「실용주의자」란 월계관을 우리 대통령이 씌워주어야 합니까. 대통령은 어린이들에겐 가장 큰 교사입니다. 그 김대중씨가 요사이는 좌익의 본색을 드러내어 핵실험한 김정일을 편들고 미국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민족반역자에게 영혼을 팔고 國富와 國益도 넘긴 김대중을 저승의 李承晩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내려다보고 있을까요?
        
      김일성을 매국노로 규정하고 북한정권을 괴뢰로 본 이승만의 위대한 건국정신을 반영한 것이 대한민국헌법 제3조입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島嶼(도서)로 한다>
      이 3조에 의해 북한정권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不法점거한 反국가단체, 내란단체, 반란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 2007-02-03, 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