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치 파이브(Kimchi 5)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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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 파이브(5)라는 이름이 있다.
    그가 KBS 아침마당 6. 25 기념 프로에 출연했다(6/25).
    1950년 12월의 혹한. 흥남철수 피난민 12,000명이 민간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거제도로 향했다.
    화장실도 물도 먹을 것도 없는 환경에서 단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그 뿐 아니었다. 항해 중 다섯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선장은 그들에게 김치 1, 김치 2, 김치 3, 김치 4, 김치 5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둘은 지금 소식을 알 길이 없고 셋은 살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중 김치 5는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평생 거제도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그에게 “우리를 살려 준 메러디스 빅토리호 미군을 은인으로 알고, 갈치 한 마리도 나누어 준 거제도 도민들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김치 5는 거제도에서 동물병원을 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피난민들을 호송했던 당시의 생존 미군들과 거제도에서 감격의 상봉을 했다. 선장은 훗날 가톨릭 수사가 되었다가 수년 전 선종(善終)했다.

    김치 5와는 일면식도 없는 재미교포 안재철은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역사에 관심이 많던 차에 어느 날 부인이 그 수사의 장례미사에 참석했다는 말을 듣고 6. 25 전쟁 사진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리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는 자책과 함께. 그는 6. 25 사진자료 20,000장을 수집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거리 전시회도 열었다. “젊은이들이 6. 25 등 우리 역사를 모르는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기성세대가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수많은 탈북자들이 사선(死線)을 넘어 계속 남하하고 있는 것을 보면 흥남철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자리에는 평양에 살다가 탈북한 한서희도 앉아 있었다. 2000년대의 후세대 흥남철수 난민인 셈이다.
    그녀는 채널 A의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 고정 출연자다. 그녀를 비롯한 ‘탈북 미녀들’은 어제 밤 11시(6/24)에도 ‘두만강’을 합창하다가 온통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진행자 남희석도 울었고 박선영도 울었다. 그러자 TV 화면이 꺼졌다. 자막은 ‘5분간 휴식‘이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휴식‘이 아니라 실은 ’방송 중단’ ‘방송 불가능’이었다. 통곡은 방송보다 진했다.

    그러나...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카투사 병(兵) 고(故) 김용수 하사는 국립현충원에 묻힌 채 62년만의 귀환의 감격을 울음 아닌 침묵 속에 파묻고 있다. 오늘의 세대가 그 침묵의 의미를 알까? 김 하사 유족 곁에는 남편의 빈 유골함을 지켜 온 노(老) 전쟁미망인이 앉아 있었다. 살아 돌아오기를 체념한 채 이제는 저 빈 유골함만이라도 채워주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표정. 역사는 사상가라는 자들의 추상적 이론에 있지 않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개개인들의 실존적 체험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 1950년대와 2000년대의 엑소더스 난민들을 ‘변절자’라고 부르는 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탈북 국회의원 조명철의 말을 소개한다.

    “여기 와 반(半)지하 전세방에 누어 이리 둥글 저리 둥글 내 마음대로 하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저기선 매일 같이 동원, 동원, 동원이었다. 거기다 최소한 밥 굶는 일은 없다. 아주 힘들지만 제 힘으로 미래의 꿈을 꾸어볼 수 있다. 어디든지 가고 싶은 대로 갈 수가 있다. 신체의 자유라는 것이다. 유치장에라도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것이다. 이걸 얻은 게 ‘변절’인가?"

    전체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부루주아‘의 이기적 사치, 민중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단죄한다. 그러나 그들은 부루주아뿐 아니라 민중에게서도 ’자유‘와 ’빵‘과 ’평등‘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모조리 박탈해 갔다. 이 참담한 실패를 실패라고 지적하고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을 저들은 ’식민지 종속‘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1950년대와 2000년대 엑소더스 난민들이 목숨 던져 찾아 온 이 피난처까지 그들 식으로 ’혁명‘해 버리겠다고 설친다. 오, 노, 노, 노(Oh, no. no. no)! 

    6. 25 남침전쟁 62주년 아침이다.

    류근일 /본사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