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새겨진 해군의 전설- ‘KILL MARK’ 
      
    도색으로 지워진 ‘KILL MARK’, 해군 6전단에 의해 다시 새겨져

    고성혁   
     
     
    네티즌의 뜨거운 반응- 지워진 해군의 전설에 놀라다


    필자는 지난 6월14일 ‘페인트로 지워버린 해군의 전설 KILL MARK’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와 국내 최대 군사사이트 <유용원의 군사세계>에도 게재됐다. 네티즌의 반향은 의외로 컸다. 특히 <유용원의 군사세계>에서는 19,000여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1983년 해군의 놀라운 승전보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네티즌이 있는가하면 해군이 너무 큰 실수를 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또 과거 군(軍) 경험을 토대로 단순히 도색작업을 명령했기 때문에 아무 내용도 모르는 士兵(사병)이 킬 마크를 지웠을지 모른다는 댓글도 있었다.

  • 해군 관계자도 필자의 글을 본 모양이다. 담당부대인 해군 6전단의 정훈공보과장이 바로 다음 날 댓글을 달았다. ‘해군에 대한 깊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담당부대 정훈과장의 댓글을 보니 반가웠다. 6전단에 전화를 걸었다. 정훈과장은 회의 중이라고 했다. 필자의 연락처를 남겼더니 이내 전화가 왔다.

    해군 6전단의 신속한 조치- 해군의 전설 ‘KILL MARK’ 부활하다

    “해군 6전단 정훈과장입니다. 지적하신 글 잘 봤습니다. 즉시 킬마크를 새겨놓도록 조치했습니다. 오늘(6월15일)중으로 마치겠습니다.”

    “아 그래요? 신속히 처리해서 고맙습니다. 일이 마무리 되면 저한테 다시 사진 보내주실 수 있나요? 그럼 킬마크가 다시 세겨졌다는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실수 있다면 저희가 고맙죠.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안녕하십니까? 해군 6전단 정훈과장입니다.
    해군과 6전단에 보내주신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알루엣 헬기 킬마크 관련 문제는 확인 즉시(2012.6.15) 알루엣에 킬마크를
    새로 부착하였습니다. 회원님의 전문적인 의견 제시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소중한 우리
    해군 역사를 보존하는데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댓글을 본 필자는 해군 6전단의 신속한 대응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6전단 정훈과장은 필자가 해당 글을 게시한 바로 다음날 ‘KILL MARK’를 그려 넣었고, 그 사진을 보내왔다.

    필자는 만약 내 글로 인해 해군 담당자가 問責(문책)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해당 부대 정훈과장과의 통화에서 필자는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혹시 만에 하나 저의 글 때문에…”

    정훈과장은 ‘그렇지 않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작업이 끝나는 대로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유쾌하게 통화를 마쳤다. ‘유종의 美’를 거둔 셈이다. 다시 한번 사진을 보았다. 다시 새겨진 해군의 승전보 ‘KILL MARK’가 더 크게 눈에 들어왔다. 해군 全장병이 이 일을 계기로 해군의 전설을 마음속에 되새겼으면 한다.

      


  • 기왕에 바램이 하나 더 있다면, 알류트 헬기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바꿨으면 한다. 단순하게 헬기의 製源(제원)만 설명돼 있다. 전쟁기념관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려면 그 역사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이 헬기는 1983년 8월13일 울릉도 근해에서 무장간첩 母船(모선)을 격침시킨 헬기다’라는 설명이 있다면 보는 이로 하여금 보다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은 당시 신문기사를 안내판에 새기는 것이다. 더욱 실감나게 설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당시 기사를 뽑아 보았다. 당시 조선일보의 1면 톱기사를 캡쳐했다.

     

  • 당시 기사 내용의 중요 부분을 옮겨본다.

    이기백 대간첩대책본부장은 13일 오전 10시쯤 울릉도 동방 근해에서 우리 해군 함정이 일본 배로 위장한 북괴무장간첩선 1척을 발견, 停船(정선) 신호를 보냈으나 이에 불응, 사격을 가해왔기 때문에 해군함정의 합제기인 헬기가 출격하여 11시40분쯤 격침시켰다고 발표했다.

    李 본부장은 60톤급인 이 무장 간첩선은 마치 일본배인 것처럼 아사히마루(朝日丸)란 船旗(선기)로 위장하고 있었으며 40노트로 도주를 꾀했다고 밝히고, 해군이 위협사격을 가하자 우리 함정에 사격을 가해왔다고 밝혔다.

    이 간첩선에는 아사히마루 외에도 광복, 광명, 대동, 부산호라는 선기를 갖추고 이 기를 번갈아 사용하여 일본 어선이나 우리 어선으로 위장, 침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근 해역에서 무장공비 시체 3구를 발견하고 김일성ㆍ김정일 사진이 붙은 수첩과 다수의 노획물을 인양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