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혁당 사건의 법원 판결에서 드러난 통합진보당 내 민혁당 관련자는 국회의원 당선자 2명, 야권 단일 후보자 1명 그리고 핵심 당직자 2명 등으로 나타났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 이석기는 민혁당 사건으로 2003년 서울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1999년 민혁당의 실체가 드러나 수뇌부가 체포되면서 이석기는 약 3년간의 도망자 생활을 하다 체포됐다. 이후 이석기는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서울고법 판결 후 5개월 만에 가석방됐다. 이석기의 성분을 분석해 보면 김일성 주체사상 신봉자로서 혁명을 통한 국가 변란을 목표로 삼아온 북한의 활동에 적극 동조했던 인물이다.

    이정희를 대신해 관악구 을에 출마해 당선된 이상규 또한 1992년 민혁당 창당 당시 참여해 “수도남부지역사업부”를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 북구에 출마한 김창현도 1999년 울산 동구청장 재직 당시 드러난 반국가단체인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영남위원회는 민혁당 산하 조직으로 밝혀졌는데 구청장에 재직하며 종북 활동을 했다는 것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이고 이런 스펙으로 총선에 출마 했다는 것 자체가 엽기다.

    동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던 박경순은 현재 통합진보당의 진보정책연구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 대표적 기획가이며 이번 선거에서 공동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의엽 전략기획 위원장 역시 민혁당 사건으로 2000년 검거돼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민혁당 세력들은 PD(민중민주계열)가 세운 민주노동당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자 이들 역시 합법적 정당을 조직, 운영을 통해 국가의 분란과 국민 여론을 분열 시키는 것으로 정치 방향을 선회해 2001~2003년에 걸쳐 치밀한 전략으로 민주노동당을 접수하고 이를 기반으로 통합진보당을 접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더욱 신빙성 있게 해 준 것은 북한 노동당 소속 대남 공작원 김동식이 “ 북한에서 1990년대 초반 지하조직은 유지하되 노동당의 지시를 받는 대중혁신 정당을 만드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폭동, 쿠데타, 전쟁 등 폭력적인 방법으로 한 번에 정권을 바꾸기는 힘들어지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해 서서히 정권을 잠식해 가는 전략으로 수정한 것이다”라고 말해 민혁당 추종세력들의 전략은 정치를 통해 한국을 흡수하려는 전략 수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동식은 “1990년대 초 북한 노동당이 남한 내 지하세력에 ‘부자세습, 주체사상, 정치체제, 북한 인권, 북한 지도자 등 5가지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말라’는 지령 가이드라인을 내렸는데 말도 언급했는데 이는 남한 내에 종북 세력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 주기 위한 북한의 배려라고 본다.

    종북 세력들이 미소하게나마 북한을 비판함으로써 북한과 거리를 유지 한 것처럼 보여 종북이라는 멍에를 벗어 그들이 대중을 향해 선동 할 시에 자유를 지향한다는 명분이 다수에게 먹힐 수 있도록 한 전략이라 보여 진다.

    대선과 총선에서 재외국민 투표를 - 조총련 5만정도 할 수 있고 조선족은 대략 15만에서 20만으로 추정 - 허용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인간이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한국은 북한이 원하는 고려연방제를 시행할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으로 보아도 과하지 않은 것으로 사려 된다.

    이런 형국인 한국의 미래는 팁(TIP: 태풍) 앞에 놓인 1t 정도 되는 고깃배 같은 형상이랄까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 한국 정세의 총체적 위기는 언제까지 계속 되고 과연 그 끝은 있는 것인지, 국민들은 그 사실을 국민들은 알고는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