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 논설>

             '2012 희망 찾기’의 고도를 기다리며 

     다시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한다. 지난해는 정권 말기의 노폐물이 밖으로 새어나온 한 해였다.
    선관위 홈피에 대한 디도스 공격, 이상득 ‘형님’ 보좌관들의 거액 수수가 우선 그랬다. 

     그런가 하면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매수혐의 같은 ‘꼴뚜기’가 ‘진보’라는 ‘어물전’을 망신시킨 해이기도 했다. 현직 판사들의 절제 없는 정치적 발언들이 세인의 이마를 찌푸리게도 했고, 학교폭력이 한 중학생을 자살로 몰아넣은 참사, 중국선박의 불법조업을 저지하다가 우리 해경이 희생당한 비보가 세상을 울렸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청년실업, 중년실직, 노후걱정으로 온통 회색빛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나마 한-미 FTA 비준안 국회통과, 4대강 사업 마무리 같은 긍정적인 결실도 있었다.
    한국의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돌파한 것 역시 괄목할 ‘사건’이었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한국, 한국인의 ‘버틸 힘’은 그래도 끈질겼던 셈이다. 

     서울시장 보선과 안철수 현상을 고비로 한국의 보수세력은 수세로 밀리는 듯한 기미를 보였다.
    이를 배경으로 한나라당은 보수의 자리를 이탈했고, 민주당은 중도에서 좌로 녹아들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정계가 민노당 인력(引力)에 줄줄이 코를 꿰였다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새 해는 일대 격돌의 해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그것이다. 이 대결의 핵심쟁점을 ‘복지’ 로 끌어 가는 경향이 있다. ‘복지’는 물론 엄청 중요한 이슈다. 그러나 적어도 대선 쯤 되면 ‘복지’를 하위개념으로 삼는 보다 큰, 전체 한반도적인 상위개념을 두고 한 판 붙어야 체통이 선다.

      김정일이 죽고 그 29살 난 아들이 북의 ‘왕’이 됐다. 그가 철종이 될지, 연산군이 될지, 다른 어떤 유형의 ’왕‘이 될지가 큰 관심거리다. 한반도의 항상적인 최대 이슈는 역시 북의 동향이란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항상적인 최대 이슈도 따라서 나라의 안위라는 이야기다. 이것을 뒤로 제친 채 무슨 총선이 있고 무슨 대선이 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건국과 존재의 이유는 자유민주 헌정질서와 자유시장경제다. 이 자명한 듯 했던 공리(公理)가 엄중한 시련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빼버리자는 세력이 공공연히 고개를 드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소위 비(非)좌파라는 정치집단이 이 문제에 열정을 가지고 개입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의사당에 "수류탄이 있었더라면 던졌을 것"이라 한 난폭자를 제재조차 하지 않거나 못한 이른바 '집권집단'이었다. 내년 대선은 결국, 대한민국의 나라다움을 확보하느냐의 여부를 결판낼 또 한 차례의 고비인 셈이다.

      우리 사회가 왜 '꼼수'와 괴담과 막장 대중연예와 막가파 풍조에 휩쓸려가고 있는가? 왜 법치가 파괴되고, 그 법치를 집행해야 할 공권력이 얻어맞는 세태가 되었는가? 왜 10대 학생이 선생을 패는 세상이 되었는가? 한 마디로 건국의 이유, 그에 기초한 국민적 규범, 교육의 제 자리, 국가의 제어기능, 고급문화의 순화(醇化) 기능이 총체적으로 풍화(風化)된 탓이다.

    여기에 내년 대선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런 병증에 치유(治癒)의 항체를 갖다 댈 수 있느냐, 아니면 계속 마냥 떠내려가느냐의 중차대한 이슈가 걸린 대선이다.

      역사는 누가 만드는가? 그 주역은 ‘빛과 소금과 누룩’ 역할을 하는 소수로부터 시작된다.
    탁한 유행적 ‘대세 아닌 대세’의 포위망 속에서도 그 고독에 기죽지 않고 스피노자처럼 묵묵히 안경알을 닦는 자세-이게 역사를 만든다. 그 광망이 다수의 마음에 닿을 때 역사가 창출되곤 했다.

    새해를 맞아 그런 소수의 분발을 대망한다. 그 소수가 다수 되어 마침내 '2012 희망 찾기'를 해내고야 말 것임을 믿고자 한다.

     한 해의 고락을 함께한 동시대 벗들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