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실형 산 가짜 박사가 오히려 ‘억울하다’”지인들에게 비수를 꽂고 비리 고발자를 자처
  • 신정아씨의 자전적 에세이 '4001'이 출간 2주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신씨의 '4001'은 지난주 발간되자마자 2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3위를 차지했고, 곧바로 2주만에 정상에 올랐다. 이 책은 초판만 5만부를 찍었고 2만~3만부 추가 인쇄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조선일보 31일자 ‘아침논단’을 통해 “허위 학위로 실형을 산 가짜 박사가 오히려 억울하다며 지인들에게 비수를 꽂고 온 세상에 구정물을 끼얹으면서도 비리 고발자를 자처한다”며 “기계로 조작하고 립싱크로 입만 여는 시늉을 하는 자칭 가수의 초라한 면면과 이들 가짜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음은 윤 교수의 칼럼 <'나는 가수다'의 正名論> 전문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가 화제다. 이는 일곱 명의 쟁쟁한 프로 가수들이 겨뤄 매주 한 명씩 탈락하는 '서바이벌' 방식을 택했다. 출연자들의 공연 후 방청객 투표로 7등이 탈락하고 그 자리를 새 초대가수가 메우는 형식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짝퉁'이라는 힐난과 "직업가수의 서열을 매기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시작은 했으나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한 사람이 떨어져야만 하는 첫 경쟁무대에서 원칙이 번복되고 만 것이다. 한때 국민가수로 불린 베테랑 가객(歌客)이 최저점수를 받자 당황한 제작진이 그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한 즉흥조치가 화를 불렀다. 약속을 어겼다는 항의와 "공정성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빗발친다. 놀란 방송국이 담당 프로듀서를 전격 교체하고 '나가수'를 잠시 중단하기로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反轉)이 사태의 흐름을 바꾼다. 추가 탈락자가 나온 두 번째 '나가수' 무대가 그 현장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출연자들의 열창이 단번에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프로그램을 잠깐 쉬기로 한 방송국 결정에 대해 '성급했다'는 아쉬움과 질타가 이어지고 출연 가수들이 부른 노래가 가요 인기순위 윗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나는 가수다' 현상은 한국 사회의 속살을 날것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다양한 의견이 균형 있게 공존하는 게 아니라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치닫는 한국적 대중사회의 민낯이 엿보인다. 한쪽으로 쉽게 쏠리는 단색(單色)사회의 흐름도 매우 상징적이다. 반칙과 편법에 지친 시민들이 공정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특유의 한국적 풍경이다.

    이 모든 걸 감안해도 '나가수'에 대한 폭발적 호응의 바탕에는 '진짜'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제 이름에 값하는 진짜배기가 드물고 허명(虛名)이 난무한다. 내용을 동반하지 않는 단어가 허공에 춤추면서 말과 실질이 분리된다. 말과 내용이 일치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신뢰가 한국 사회에 유독 부족한 건 이 때문이다. 기본적 가창력조차 갖추지 못했음에도 최신 기술과 자본의 도움에 힘입은 눈부신 얼굴과 몸매의 아이들이 아이돌(Idol)로 등극해 가요판에서조차 기계음이 육성(肉聲)을 밀어낸 지 오래됐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나로서는 '나가수' 출연자의 절반 가까이가 난생처음 보는 가수들이었고 나온 노래의 대부분이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가수'는 프로가 무엇인지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물론 '나가수' 자체가 직업가수 가운데서도 가창력이 증명된 예인(藝人)들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출연하는 편제인 이유도 있다. 서바이벌 방식이 선의의 경쟁을 북돋우며 긴장감을 불어넣은 측면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나가수'의 반전을 이끈 결정적 요인은 따로 있다. 단 몇 분의 공연을 위해 실력파 가객들이 보여 준 완벽에 가까운 장인정신과 몰입에서 비롯된 절창(絶唱)이야말로 관객과 시청자의 호응을 이끈 비밀이었던 것이다.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노래 앞에 눈물짓는 것과 동시에 행복해하는 방청객들의 표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간을 웃고 울릴 수 있는 음악의 위대한 힘을 절감케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가수다'는 현대적 정명론(正名論)의 진수를 보여준다. 가수는 노래로 심금을 울려야 하며 문인(文人)은 글로써 세계의 비밀을 드러낸다. 기자와 과학자는 사실을 존중해야 하며, 정치인은 공공성을 구현하는 존재이고, 성직자는 돈과 권력의 쓰나미를 막아주는 영혼의 방파제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진짜를 빙자한 협잡꾼과 프로로 가장한 아마추어가 너무 많다.

    광우병과 천안함 사태에서 보듯 과학자가 정치적 선동에 앞장서고, 추문에 휩싸인 대형교회의 성직자는 바벨탑의 우상을 쌓는다. 전국 곳곳에 유령처럼 텅 비어 애물단지가 된 지방공항을 보면서도 정치인들은 막무가내다. 허위학위로 실형을 산 가짜 박사가 오히려 억울하다며 지인들에게 비수를 꽂고 온 세상에 구정물을 끼얹으면서도 비리 고발자를 자처한다. 기계로 조작하고 립싱크로 입만 여는 시늉을 하는 자칭 가수의 초라한 면면과 이들 가짜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건 불가피하다.

    '나는 가수다'는 우리 모두에게 실력을 닦아 본업에 진력하라고 요구한다. 당신이 과연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