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6시간씩 월 22일 동안 운행, 3일 연속 일하는 경우도…정규직 전환 미끼 내세운 버스회사의 횡포가 시민 목숨 위협
  • “새벽 4시에 집을 나와서 다음날 새벽 1시에 퇴근을 합니다. 배차시간이 워낙 빠듯해 커피 한잔 하거나 잠깐 눈을 붙일 시간도 쉽지 않고요…. 더 끔찍한 건 그렇게 한 달에 20일 가까이 근무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루 16시간씩 3일 동안 버스 운전 해보세요. 핸들을 잡고도 눈이 감기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 서울 버스운전기사 최철환(44.가명)씨.

    지난 7일 오후 11시30분께 서울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 합정역 방향으로 주행 중이던 인천광역버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은 버스기사 A(49)씨의 졸음운전. 다행히 큰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탑승 중이던 승객 수십명의 목숨이 위험했던 아찔한 사고였다.

    경찰청 조사 결과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 중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이 원인이 된 사고는 모두 1341건. 서울·경기 수도권만 따져보면 299건에 이른다. 버스가 관련된 전체 교통사고의 3.4% 수준이다.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탑승 승객의 안전과 직결된 버스기사의 졸음운전 사고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버스운전기사들은 버스회사들이 과도한 근로시간 요구에 버스기사들이 죽음을 무릅쓴 운행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회사의 무리한(?) 요구는 정규직 전환이 간절한 계약직(촉탁직) 버스기사들이 그 대상이다. 살인적인 근무 시간에 내몰린 이들은 정규직 전환만을 기대하며 졸린 눈을 비비며 지금도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인건비 감축을 위한 버스회사의 횡포가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살인 레이스’로 이어지는 셈이다.

    앞서 소개한 사고의 버스기사 A씨도 촉탁직 기사로 이틀 연속 근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 ▲ 지난 4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일어난 버스 3대 연쇄 추돌 사고 현장. 이날 사고로 4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연합뉴스
    ▲ 지난 4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일어난 버스 3대 연쇄 추돌 사고 현장. 이날 사고로 4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연합뉴스

    10일 서울시가 관내 66개 버스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버스기사들의 근무 여건은 1일 2교대(9시간 기준), 월 21~23일 정도다. 첫 차를 운행하는 1조가 대개 5시에 출근, 점심시간 이후 2~4시경 퇴근하고 이어 2조가 투입돼 막 차까지 운행하는 시스템이다.

    버스 준공영제가 도입된 이후 정착된 이 근무제도는 대개 주 5일제로 운영된다. 버스기사들에게 최소 하루 8시간의 수면시간은 보장해주고 적당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몇몇 버스회사들은 인력 부족과, 인건비 감축을 이유로 주 6일 근무로 변형해 운영하긴 하지만, 버스기사들의 큰 불만은 없다. 월 200시간 내외의 근무시간은 육체적으로도 소화 가능한 수준이며 근무시간이 늘어날수록 임금도 함께 상승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근무여건이 좋은 대형 버스회사에서 그것도 정규직 기사들만 누리는 혜택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주요 버스회사 10여개를 취재한 결과 대다수 버스회사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전인 신입 직원(촉탁직)들에게는 ‘격일제 근무’를 주문하고 있었다. 격일제 근무란 2개 조가 운행하는 근무를 1개 조가 모두 다 맡아야 하는 형태로 기사 1명이 하루 16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도는 극에 달한다. 때문에 지자체나 버스운송조합 등에서는 격일제 근무를 할 경우 1일 근무 후에는 반드시 1일을 쉬도록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권장사항은 민간 기업인 이들 버스회사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촉탁직 직원들에게 격일제 근무를 실시하고 있는 성북구 A 버스회사의 경우 만근(기본급을 받기 위해 근무해야 하는 최소 일수) 기준은 18일로 정하고 있다. 한 달 30일 중 18일을 근무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산술적으로 이틀에 한번 쉴 수 없는 시스템이다.

    마포구 B 버스회사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은 심지어 월 22일(지난 12월 기준)까지 근무한 버스기사도 있었다. 정규직 직원들의 휴가 등 공백 노선이 생길 경우 이를 대신 운행하는 속칭 ‘스페어 기사’라는 개념이다. 하루 근무 하루 휴식은 커녕 3일 연속 하루 16시간씩 근무하는 속칭 '3연짱'을 한달에도 몇차례나 반복했던 것이다.

    버스기사들에게 죽음의 근무로 통하는 속칭 '3연짱은' 건장한 성인도 버티기 힘든 살인적인 근무 형태다.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하루 4시간 수면시간도 쉽지 않다. 당연히 피로는 졸음운전으로 이어지고 대형 교통사고의 위험을 항상 안고 운행한다.

    이들 촉탁직 버스기사들이 죽음을 무릅쓴 운행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버스회사마다 다르지만, 6개월에서 1년가량의 촉탁직 근무를 해야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서는 무리한 근무라도 군말 없이 해내야 한다. 괜한 불만을 쏟아냈다가는 정규직 전환도 못한 채 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다.

    마포구 B 버스회사에서 만난 촉탁직 기사 K(36)씨는 “버스회사 정규 기사가 되면 큰 사고만 없다면 정년까지 직장이 보장돼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신규 버스기사들은 여기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며 “버스 회사들이 이런 사정을 이용해 약자인 신입 직원들에게 무리한 근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쓸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