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⑱  

     평양에 나흘간 일정으로 출장을 온 이틀째 되는 날 밤이었다.
    서문교회 목사 유수환의 거처인 교회당 뒷채 마룻방에 앉아있던 나는 문이 열리는 기척에 머리를 돌렸다.

    「오오.」
    그 순간 내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방으로 들어선 사내는 김일국이다. 김일국이 누군가?
    워싱턴 대한제국 공사관의 통역으로 있다가 만주 땅으로 건너간 열혈청년. 워싱턴에 있을 때는 내 보호자겸 수족이 되어 인도해 주었던 애국자가 아니던가?

    나는 김일국에게 다가가 두 손을 마주 쥐었다. 김일국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었다.

    「박사님,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김일국의 입에서 박사 호칭은 처음 듣는다.

    나는 김일국의 두 손을 흔들면서 물었다.
    「만주 땅 어디에 있는가?」
    「본부는 지안에 있습니다.」
    지안이면 집안(集安)이다.

    유수환이 밖을 지켜주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마룻방 의자에 마주보고 앉았다. 김일국을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평양 일정을 나흘이나 잡았다.

    김일국이 털모자를 벗고 모피 코트도 벗자 양복 차림이 드러났다. 돈 많은 일본인 무역상같다.
    만주 벌판을 횡행할 때는 털가죽 저고리의 마적(馬賊) 차림이리라.

    「박사님, 조선 땅 안에서 일본놈과 싸우기는 이제 어렵습니다. 간도나 연해주로 물러나 중국과 러시아와 연합해서 일본놈을 공격해야 합니다.」

    김일국이 한마디씩 힘주어 말을 잇는다.
    「조선 땅에서 민중을 교화하여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탁상공론일 뿐입니다. 이제 박사님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민중이 일본화 되어 간다는 것도 느낀다.

    완이의 아버지 정기준의 외침이 지금도 귀에서 생생하게 울린다. 처형 장면을 남의 일처럼 모여서서 구경하는 동포를 보고는 저주를 퍼붓지 않았던가? 그것이 대다수 민중이다.

    조선 백성은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도 폐인이 된 임금을 그리는 민중이 많은 것이다.
    자신들을 종으로 만든 임금을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명해야 할 것인가?
    누구는 그것이 조선 백성이 당해야 할 숙명이니 놔두라고 한다. 죽은 정기준처럼 분한 마음에 그럴 것이다.

    머리를 든 내가 말했다.
    「조선 땅에 남아있는 인사들이 용기가 없어서 뛰쳐나가지 못한다고 생각지 않아. 그들은 동포와 함께 견디는 거야.」

    그리고는 내가 길게 숨을 뱉았다.
    「차라리 밖으로 뛰쳐나가 싸우는 독립군 동지보다 남아있는 애국자들이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그럼 박사님도 남아계실 겁니까?」
    김일국이 정색하고 나를 보았다.

    나에게 만나자는 김일국의 연락이 온 것은 한달 반쯤 전이었다. 인편을 통해 김일국은 간도 땅에서 같이 독립운동을 하자고 적극 권했다. 살 집까지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다. 지금 김일국은 독립군 2백여명을 거느린 별동대 대장이다. 박무익과도 교분을 맺었다고 했다.

    김일국의 시선을 받은 내가 입을 열었다.
    「감시가 점점 심해지는데다 내가 조직한 독립회 모임이 내부에서 변절자가 생기는 바람에 위험한 상태가 되어있네. 하지만 견디는데까지 견딜꺼야.」
    「위험하지 않습니까?」

    얼굴을 굳힌 김일국이 묻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 위험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미국 땅에서도 암살 위협을 받았지 않은가?」

    그것은 김일국도 같이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