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⑭  

     그래서 나는 정기준의 아들 정완(鄭完)을 맡게 되었다.
    내가 협동총무인 브로크만(Frank M Brokman)에게 부탁하여 종로 YMCA 건물의 숙소에서 기거하도록 해준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들의 잔부름을 시켰는데 영리한데다 성실해서 금방 귀여움을 받았다.
    완이는 학구열도 뛰어나 강의도 열심히 들었고 틈이 나면 영어 공부도 했다. 나는 완이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으므로 몇 명만이 완이 집안 내력을 안다.

    이구치의 통역 노석준이 나를 찾아왔을 때는 밤 10시쯤 되었다.
    더운 날씨여서 반쯤 열어놓은 문 안으로 소리 없이 들어선 노석준이 길게 숨부터 뱉는다.
    노석준은 그날 이후로 보름에 한번쯤은 나를 찾아와 정보를 주고 간다. 알고 보았더니 노석준은 만민공동회 회원으로 내 연설을 거의 다 들은 사람이다.

    앞쪽 자리에 앉은 노석준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내 숙소는 3층이어서 시원한데도 그날은 몹시 더웠다.

    「박사님, 직원중의 몇 명은 총독부의 정보원입니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노석준이 목소리를 낮춰 말을 잇는다.
    「이곳 YMCA 내부 정보는 물론이고 교인들의 정보가 경무총장에게 직보되고 있습니다.」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놀랄 일도 아니다.
    내가 독립운동이나 반일(反日) 행동을 하는 분위기만 보였더라도 나는 YMCA에서 쫓겨났을 테니까.

    재작년인 1909년, 서울 YMCA의 선도로 1백만명 구령(救靈) 운동이 개시 되었는데 그 행동강령은 통감정치의 정책에 위반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엄격히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킨 것이다.

    이번에 안명근이 체포된 것도 그렇다. 안명근은 사촌형 안중근의 마지막 고해성사를 받은 빌렘(Willem) 신부에게 군자금 모집 사실을 털어놓았고 놀란 벨렘이 그 사실을 서울 대주교 뮤텔(G. C. Mutel)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뮤텔이 바로 경무총장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에게 직보했기 때문에 체포 된 것이다.

    노석준이 상반신을 나에게로 굽히더니 목소리를 더 낮췄다.
    「박사님, YMCA 유급직원 중에 고종덕이란 사람이 있습니까?」
    놀란 내가 숨을 멈췄다. 고종덕은 내가 조직한 7인 독립회원인 것이다.

    내가 머리만 끄덕이자 노석준이 말을 잇는다.
    「고종덕의 처남 조명수가 이번에 군자금 사건에 관련되어 해주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고종덕이 사흘 전에 헌병대에 불려간 후에 어제 조명수가 석방되었습니다.」
    「......」
    「이구치가 부하에게 일본어로 지시하는 것을 제가 옆에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종덕이 불려간 것도 알고 조명수가 석방된 것도 압니다. 고종덕과 경무청이 뭔가 합의를 한 것이지요.」

    나는 굳어진 얼굴로 어금니를 물었다. 고종덕이 타협을 했으니까 조명수가 풀려났을 것이다. 그러나 고종덕에 대해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고문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상황인 것이다.

    길게 숨을 뱉은 내가 노석준에게 말했다.
    「고종덕은 나와 자주 만나는 사람이요. 아마 합의를 했다면 나와 내 주변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했겠지.」
    「그렇습니까?」

    긴장한 노석준이 머리를 젓는다.
    「그럼 야단났는데요. 이구치는 박사님을 목표로 고종덕과 협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행동으로 옮긴 일은 없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나머지 다섯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들도 모두 위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