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⑬  

     합방이 되어 총독정치가 시작된 1910년과 1911년의 정국은 살벌했다.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반란의 씨를 처음부터 근절 시킨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식민지의 기반을 굳히려는 정책이다.

    나는 YMCA 소속으로 종교 활동만 하도록 제한을 받고 있었지만 그것을 일본 당국이 믿을 리가 없다.

    안명근의 군자금 모집 사건인 일명 안악사건으로 김구, 김홍량 등 160여명이 일제에 체포되었고 1911년 7월의 공판에서 안명근은 종신형, 김구, 김홍량은 15년형을 받았다. 죄목은 부잣집을 습격하여 강도, 강도 미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독립군의 무장투쟁 지역은 간도나 연해주 지역으로 옮겨져 있었다. 조선 땅에서 동포들의 적극적인 동조, 응원을 기대했던 독립군 조직은 자주 내부 배신과 비협조를 겪은 반면에 일본군의 세력은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나는 머리를 들었다.

    벽시계가 오후 세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방금 강의가 끝난 복도는 어수선한 소음으로 덮여져 있다. 대부분이 학생들인 터라 목소리가 맑다.

    곧 문이 열리더니 양성삼과 함께 나이든 여자가 들어섰다. 뒤를 10대 소년이 따른다.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양성삼부터 보았다. 그때 노파가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말했다.

    「지가 정기준의 에미입니다. 지난번 밤에 오셨을 때 뵈었지요.」
    「아아.」

    놀란 내가 노파에게 자리를 권했다. 오산 교외에서 처형당한 정기준의 모친이다. 그 후에 내가 양성삼과 함께 수원성 밖의 집으로 찾아가 두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것이 반년쯤 전이다.

    그때 양성삼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갑자기 저를 찾아와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셔서요.」
    「잘오셨습니다.」

    내 시선이 이제는 노파 옆에 붙어 앉은 소년에게로 옮겨졌다. 그러자 노파가 소년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인사를 해라. 아버지가 생전에 존경하셨던 어른이시고 은인이시다.」

    그러자 소년이 일어서더니 굽신 절을 했다. 흰 얼굴에 눈이 맑다. 그러나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고집스럽게 보였다.

    내가 소년의 눈을 바라본 채 말했다.
    「잘 왔다. 아버지를 닮았구나.」

    문득 태산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얼굴 윤곽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태산이 살았다면 이만큼 자랐을 것인가?

    「몇살이냐?」
    「예, 열다섯입니다.」
    소년이 또렷하게 대답했다.

    머리를 끄덕인 내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태산이가 살아있다면 열셋이 된다.

    소리죽여 숨을 뱉고 난 내가 노파를 보았다. 그러자 노파가 말했다.
    「지난달에 아이 엄마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폐병이 심해서 얼마 살지 못합니다.」

    노파가 한마디씩 힘주어 말을 잇는다.
    「아이가 아버지 원수를 갚겠다면서 독립군이 되겠다고 밤낮으로 저를 조릅니다. 그래서 은인께 다시 이렇게 찾아와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노파가 두 손을 모으더니 나를 바라보며 빌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비비면서 말하는 것이 마치 주문을 외는 것 같다.

    「비옵니다. 이놈을 독립군이 되게 해줍시오. 그래서 제 소원대로 제 아비 원수를 갚게 해줍시오. 이 할미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이놈 에미는 지난달에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에미의 한도 풀어줍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