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⑦  

     1911년 정월 중순, 오산 교회로 강연을 내려갔던 나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남녀가 몰려가는 것을 보았다. 정오 무렵이었는데 햇살은 환했지만 추운 날씨였다.

    내가 동행한 선교사 해리슨(Harrison)에게 말했다.
    「여보, 해리슨씨, 저 사람들 따라 가봅시다.」

    조선에 온지 두어달밖에 되지 않은 젊은 선교사 해리슨이 두말 않고 머리를 끄덕였으므로 우리는 군중의 뒤를 따랐다.

    오산 교외의 대로는 갈수록 군중이 많아졌는데 나는 문득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웃고 떠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도 입을 꾹 다물고 뛰듯이 걷고 있다. 내가 그중 나이 지긋한 양복쟁이 사내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사내가 힐끗 나를 보더니 이어서 해리슨까지 훑어보고 말했다.
    「처형이오.」
    그 순간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다시 물었다.
    「누굴 처형한단 말이오?」
    「독립군.」
    그리고는 사내가 서둘러 앞장서 갔으므로 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무슨 일입니까?」
    해리슨이 물었지만 나는 잠자코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앞쪽 산기슭에는 이미 수백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고 벌려선 일본군과 말을 탄 기마병까지 오가고 있다. 내 대답을 기다리던 해리슨이 그쪽을 보더니 서둘러 앞장서 간다. 나와 해리슨은 인파를 뚫고 앞쪽으로 나와 섰다.

    그러자 나무 기둥에 묶인 여섯명이 보였다. 그중 넷은 조선옷을 입었지만 둘은 양복 차림이다. 여섯 앞에는 총을 쥔 일본인 10여명이 서 있었는데 제각기 이야기를 나누거나 구경꾼들을 둘러보는 것이 한가한 모습이었다. 마치 무술 시범을 보이려는 교관 같았다.

    그때 뒤쪽에 선 일본군 장교 둘이 이쪽 군중들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중 나이든 장교가 머리를 젓는 것은 조금 기다리라는 시늉 같았다. 묶여있는 여섯은 모두 머리가 헝크러졌고 얼굴은 때에 절었다.

    그 중 둘은 머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지친 것 같다. 그러나 양복쟁이 하나는 자꾸 이쪽을 보면서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린다. 그때였다. 그가 버럭 소리쳤는데 거리는 20미터도 안되어서 선명하게 들렸다.

    「이놈들아! 그저 구경꺼리로만 보느냐! 이 짐승같은 놈들아!」
    목청이 컸으므로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늘어졌던 둘도 머리를 든다.

    사내가 다시 외쳤다.
    「내가 너희들같은 짐승놈들을 위해 독립운동을 했단 말인가! 이놈들아! 한놈도 분한 얼굴을 짓는 놈이 없구나!」

    추운 날씨였다. 나는 그 추운 날씨보다 그 사내의 처절한 외침이 비수처럼 내 피부를 베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에이, 일본놈 종이 되어 자자손손이 살아갈 놈들아! 내가 그 꼴 안보고 일찍 가게 되어서 다행이다!」

    그때 통역으로 보이는 양복장이의 말을 귀를 기울이며 듣던 나이든 일본군 장교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허리에 찬 권총을 뽑으면서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타앙!」

    오산 교외의 산기슭에서 총성 한발이 울렸다. 장교가 방금 소리 지른 사내의 머리를 권총으로 쏜 것이다.

    산기슭 주위는 조용해졌고 수백명 군중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구역질이 났으므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한웅큼 오물을 토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