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⑥  

     박무익이 나를 찾아온 것은 내가 귀국한지 두달 쯤이 지난 1910년 12월 말이었다.
    YMCA 사옥에서 혼자 기거하고 있던 나는 늦은 밤에 문에서 울리는 노크 소리를 들었다.

    나는 혼자 서적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내가 문을 열었더니 코트에 모자까지 쓴 장신의 사내가 서 있었다.

    「누구시오?」

    나는 YMCA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일본 군경인 줄 알았다. 불빛이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공, 저 박무익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내 가슴이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세차게 뛰었다.

    「아니, 박공.」
    얼결에 손을 잡은 내가 와락 다가서서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맞다. 박무익이다.

    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굵은 선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더 중후해졌다.
    나는 박무익의 손을 잡고 서적실 안의 의자에 마주보고 앉았다.

    모자를 벗은 박무익의 모습은 마치 산에서 내려온 호랑이처럼 느껴졌다. 촛불을 가깝게 대면 금방 폭발할 것 같은 폭약 덩어리 같기도 했다.

    「이공께서 박사가 되어 귀국 하셨다는 소문은 만주 땅에도 다 퍼져 있습니다.」
    박무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응시한 채 말을 잇는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군자금도 모을 겸 이공을 뵈려고 직접 이곳에 온 것입니다.」
    「박공은 지금 어디 계시오?」
    「만주 땅에서 풍찬노숙을 하고 있지요.」
    했지만 박무익이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그리고는 박무익이 똑바로 나를 보았다.
    「내 수하의 독립군이 3백여명입니다. 비록 지금은 산과 들판을 거처로 삼고 있지만 어느 날에는 압록강을 넘어와 빼앗긴 내 강산을 되찾을 것이오.」
    「장하시오.」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더니 박무익이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묻는다.
    「이공, 학생과 교인들에게 교육시킨 효과가 언제 나타나겠습니까?」

    말문이 막힌 내가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그렇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계몽활동을 했지만 번번이 좌절당했다.
    황제는 일본 세력까지 끌어들여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을 막은 것이다.

    그리고 보라.
    이제 일본에 합방된 식민지 치하에서 계몽 활동은 얼마나 효력이 있겠는가?
    대한제국 시절보다 백배, 천배 통제를 받는 중이다.

    내 시선을 잡은 박무익이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나는 이공이 이 실상을 겪어 보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 땅 안에서는 아무리 기를 써도 일제의 억압을 뚫고 나올 수가 없다는 현실을 말입니다.」

    머리를 든 내가 천정을 향해 다시 숨을 뱉았을 때 박무익이 말을 잇는다.
    「그래서 당장 같이 가시자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오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때까지 무사하셔야 되오.」

    내가 겨우 그렇게 말했을 때 박무익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믄요. 우리가 강산을 되찾을 때까지 기어코 살아남아야지요.」

    그러더니 문득 눈을 치켜떴는데 불빛에 비친 눈이 번들거렸다.
    「태산이는 잘 묻었지요?」
    「필라델피아에 있습니다.」
    「그곳 땅이 좋은가요?」
    「아늑하지요. 자주 꽃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무익이 다시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산이 명까지 오래 사셔야 합니다.」

    아버지하고 같은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