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식민지(植民地) ⑤  
       

     내가 부정한 것은 임금이지 대한제국이 아니다.
    나는 외세에 침몰되는 대한제국을 구하려고 계몽활동을 했던 것이다. 임금은 그 계몽활동에 비판적이었으며 그것이 왕권을 위축시킬까봐 억압했다.

    모든 일에는 결과가 있으며 책임을 질 사람이 있다.
    나는 대한제국 멸망이 무능한 군주, 임금에게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환경이나 시대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YMCA 총무 겸 한국인 교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내 강연은 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많이 몰렸는데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자주 내려갔다. 물론 YMCA 주최의 강연이었고 서양 문명과 기독교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자주 한계를 벗어났다.

    1910년 12월 중순, 나는 수원에서 2백여명의 청중을 향해 강연을 했다.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이렇게 철저하게 타 민족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불쑥 이렇게 말해버렸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말이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릇의 물이 엎질러진 것처럼 쏟아진 것이다.
    그곳은 교회당 안이었는데 교인보다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이 많았다. 미국 박사라고 해서 어려운 말만 늘어놓을 줄 알았다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 같다.

    심호흡을 한 내가 말을 이었다. 내친김이다.

    「몽골군이 40여년간 한반도를 유린했을 때도 우린 나라를 지켰습니다. 강화도에 조정을 옮긴 채 끈질기게 투쟁을 한 것입니다. 3백년전 일본이 7년동안 조선 땅을 침략했어도 우린 견디어 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말을 그친 내가 청중들을 보았다. 모두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특히 나이든 남녀 교인들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고 담당 목사는 나에게 머리까지 저어 보인다.
    나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우리는 이 난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알아야 됩니다.」

    나는 거기까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 목사가 다가와 찬송가 제창을 권했기 때문이다.

    강의를 마치고 목사실로 들어갔더니 두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복 차림이었지만 헌병이다. 군 헌병이 경찰 역할도 맡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씨, 우리하고 같이 헌병대로 가십시다.」
    하고 사내 하나가 조선어로 말했다. 조선인 헌병 보조원이다. 다가선 사내가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20대쯤으로 건장한 체격이다.

    「당신은 반란을 선동했어. 악질이야.」
    「그래, 갑시다.」

    내가 선선히 머리를 끄덕였을 때 방으로 들어온 목사가 달래듯이 말했다.
    「이놈아, 정구야. 그러지 마라.」
    「목사님은 나서지 마시오. 다 들었지 않소?」
    사내가 소리치듯 말했을 때 이번에는 60대쯤의 사내와 여인이 들어왔다.

    「이놈아, 차라리 나를 잡아가거라.」
    하고 60대가 눈을 치켜떴고 여인은 사내의 팔을 움켜쥐었다.
    「너 이놈아, 우리가 동네 사람들한테 따돌림 받는 꼴을 보려고 이러느냐?」
    「놔, 어머니!」

    그 순간 나는 그들이 사내의 부모인 것을 알았다. 사내는 고향에서 현병보조원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목사와 부부 덕분으로 헌병대에 끌려가지 않았다.

    어디 이런 경우가 한두번인가? 식민지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